[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16화 -  인생의 반이 무너지듯
 [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16화 -  인생의 반이 무너지듯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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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하는 곳이 이 근방인 모양이지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도산 선생은 저희 외가 할아버지 벌 되는 분입니다. 그래서 자주 이곳에 오지요.”
“훌륭한 가문 출신이군요. 지금도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그냥 월급이나 받고 다닙니다. 선생님의 소설은 학교 다닐 때 몇 권 읽은 일이 있습니다. 직접 뵈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성우의 첫 말은 권익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 같았다.
“실은 소설을 쓰는데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핑계고요...”
“예? 그럼...”
유성우가 조금 주춤하는 표정이었다.
“실은 어떤 사람에 대해 좀 알아보려고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거짓말 한 것 용서하십시오.”
유성우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경청 하겠습니다.”
그가 웃었다.
“토마스 제퍼슨 고교를 나오셨지요?”
“그렇습니다.”
유성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서울에 동창들이 좀 있지요? 모두 전문 업종에 종사하는 것 같던데...”
유성우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몹시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만...”
“한수지 씨를 아시죠?”
“예?”
유성우는 깜작 놀랐다.
“한수지 씨를 잘 아는 군요.”

유성우는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얼굴이 충격에서 차차 슬픔으로 변해갔다.
마침내 눈에 물기가 서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평정을 찾고 조용히 물었다.
“수지 씨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나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저는 수지 씨를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로 해서 오랜 친구처럼 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수사경찰이 나의 친구입니다. 사건이 워낙 기묘해서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친구는 내가 추리소설 작가니까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이 사건을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인이 된 한수지시와 관련이 있는 분들을 만나 조그만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유성우 씨를 만난 것입니다.”
“그렇군요.”
유성우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면서 대답했다.
충격에서 슬픔으로 변해가는 자기의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 지내던 동창생을 잃은 충격이 컸겠습니다.”
내가 그를 위로한답시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야 옳았다.
“참 좋은 여자였습니다. 국가적으로 귀한 인재를 잃은 것이지요. 장차 우리나라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국가라는 입장에서 한수지를 평가하려고 했다.
“물론 국가적으로 첨단 과학자를 잃은 손실이 있겠습니다만, 동창생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생의 반이 허물어진 것이지요.”
“예? 그렇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인생의 반이라면 배우자로 생각했다는 말인가?
“한수지는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많은 개인적인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정문제에서 부터 회사의 얽히고설킨 인관 관계도 괴로워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나한테는 비교적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의논했습니다. 대부분이 내가 비밀을 지켜주어야 할 일 들이었습니다.”
“뛰어난 인물에다가 세계적인 두뇌의 주인공도 속으로는 고민이 많았군요. 누가 봐도 부러운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까?”
“수지는 세상을 보는 가치가 남달랐습니다. 인간의 행복, 인간의 목표를 보는 눈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습니다. 결혼이나 행복한 가정 같은 것은 가치의 맨 밑바닥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수지를 괴롭힌 것은 그 밑바닥의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한수지 씨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절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여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누군가에게 살해 되었다고 생각하는군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주 유치한 방법으로 자살을 예고 한 것 같은 메시지를 남기는 짓 따위는 한 여자의 죽음을 희화적으로 세상에 알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희화적으로 알린다고요?”
“매스컴과 대중심리를 잘 아는 사람이 기묘한 죽음으로 만들어 동기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소설 독자가 소설이 전달하는 작가의 중요한 메시지는 보지 않고 말단 신경을 자극하는 관능적인 장면 묘사만 즐기는 것과 같은 심리라고나 할까.”
“누구의 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그것을 알면 가만 두었겠습니까? 하지만 앞으로 제가 꼭 범인을 찾아 낼 것입니다. 나하고 약속 한 것이 있거든요.”
“예? 수지 씨와 약속 한 것이 있다고요?”
유성우는 그냥 씩 웃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한수지씨를 처음 만난 것은 토마스 제퍼슨 과학 고등학교에서였습니까?”
“아뇨. 버지니아 중학교에 다닐 때 부터였습니다.”
“중학교도 동기 동창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요. 한수지 씨는 저보다 두 살 아랩니다. 고등하교 졸업 연도는 같지만요.”
“선생님을 뵈니까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그때 얘기를 좀 들려주시지요.”
잠깐 생각하던 유성우가 결심한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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