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창업정신 사라진 現重 '갑질' 얼룩...하청회사 기술자료 빼앗아 경쟁사에 넘겨
정주영 창업정신 사라진 現重 '갑질' 얼룩...하청회사 기술자료 빼앗아 경쟁사에 넘겨
  • 이병철 기자
  • 승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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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톤 함께 국산화한 하도급 업체 '삼영기계'서 기술 자료 빼앗아 경쟁사에 넘겨 생산 이원화
공정위, 시정 명령 내리고 과징금 9.7억 부과...검찰에 동일 사안 고발해 이번엔 고발 안해
한국조선해양 홈페이지캡처
한국조선해양 홈페이지캡처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 회장 권오갑)이 공정위에 적발됐다.  하도급 업체 삼영기계의 기술을 탈취하고 이를 경쟁사에 넘기는 행위를 했다가 제재를 받았다. 고(故)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의 창업정신이 사라진 현대중공업이 갑질로 얼룩졌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통합법인이다. 오너는 정주영 창업주의 아들인 7선 국회의원 출신인 정몽준 고문이다. 현재 정 고문의 장남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현대중공업에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7000만원을 부과했다.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다. 검찰총장의 요청에 따라 지난 2019년 10월 같은 사안으로 현대중공업과 임직원을 고발했기 때문.

현대중공업은 ▲삼영기계의 기술 자료를 유용하고 ▲그 기술 자료를 정당한 사유 없이 요구했으며 ▲기술 자료 요구 서면을 주지 않았다. 모두 하도급법(하도급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단가 인하 목적 국산화 함께 한 하도급사 기술 빼돌려

현대중공업은 2000년 디젤 엔진을 개발한다. 여기에 쓰이는 피스톤을 삼영기계와 협력해 국산화에 성공한다. 현대중공업은 피스톤 국산화 이후 한국에서는 삼영기계로부터만 부품을 공급받아왔다.

2015년 3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제3자인 A사로 피스톤 공급처 이원화를 시도했다. A사의 피스톤 품질이 미비하자 삼영기계의 기술 자료를 제공한다. 이 자료에는 공정 순서, 품질 관리를 위한 공정 관리 방안 등 삼영기계만의 기술이 포함돼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이런 과정을 삼영기계에 알리지 않았다. 2016년 5월 이원화가 끝나자 삼영기계에 단가를 인하하라고 압박해 3개월간 약 11%를 낮췄다. 이원화 완료 시점으로부터 1년 이내에 삼영기계와의 거래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이와 관련해 현대중공업은 "A사에 제공한 기술 자료는 우리가 제공한 사양을 재배열한 것에 불과하고 단순 양식 참조로 제공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조사 결과는 달랐다. 기술 자료에는 삼영기계만의 기술이 포함돼 있었다고 본 것이다. 
 

[세종=뉴시스] 삼영기계와 A사의 자료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오탈자.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실제 현대중공업은 삼영기계에 자료 작성을 요청하며 빈 양식을 보냈다.  A사에는 삼영기계가 관련 내용을 모두 적은 양식을 보냈다. A사가 작성한 자료에서는 삼영기계가 작성한 것과 같은 오탈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現重 자료 요청 때"안 내놓으면 양산 승인 취소" 협박

현대중공업의 갑질은 이뿐 아니었다.  이원화 진행 기간 목적을 얘기하지 않고 삼영기계에 '작업 표준서'와 '지그(Jig·가공이나 조립 시 제품과 공구의 작업 위치를 지시하고 유도하는 데 쓰는 기구) 개선 자료'를 요구해 받아냈다.  삼영기계에는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양산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고 협박에 가까운 이메일을 보내기까지 했다.
 

[세종=뉴시스] 현대중공업이 삼영기계에 작업 표준서를 요구하며 양산 승인 취소를 언급한 이(e)메일 내용.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제공)

현대중공업은 "하자가 발생했을 때 대책을 세우기 위해 이런 자료를 요구했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의 요구에 하자가 발생하지 않은 제품에 관한 것도 포함돼있을 뿐만 아니라 하자 발생 제품 관련 요구도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또 2014년 10월부터 2016년 5월까지는 삼영기계에 '인력, 장비, 재료·부품, 공정'(4M) 관련 보고서와 검사 성적서, 관리 계획서를 요구하면서 법정 서면을 교부하지 않았다.

문 팀장은 "현대중공업은 기술 자료를 포괄적으로 요구하면서 '이를 제공하지 않을 시 별도로 조처할 수 있으며 향후 발주 물량을 통제하겠다'고 해 삼영기계가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고 알렸다.

◇공정위 솜방망이 처벌 논란..."최대 과징금…사건 심각하지 않아 고발 않은 것 아냐"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기술 자료 유용 행위에 부과한 것 중 가장 큰 규모.  과징금 기준 금액이 상향된 새 과징금 고시가 시행된 이후에 처음 부과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문종숙 공정거래위원회 기술유용감시팀장은 "현대중공업 과징금은 역대 최대"라면서 "사업자에게 경각심을 줘 기술 자료 유용 행위 근절에 상당히 기여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현대중공업을 고발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사건이 심각하지 않아서 고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했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앞서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도 시정 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까지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팀장은 이어 "삼영기계는 피스톤 관련 3대 업체이다. 하지만 대기업보다 열위한 지위에 있어 (기술 자료를 내놓으라는 등) 압박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기술 자료가 왜 요구되는지도 모른 채 줬고, 그 자료가 결국 경쟁사로 넘어가 단가가 낮아지고 거래까지 끊긴 안타까운 사례"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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