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4-자매의 남자들)
[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4-자매의 남자들)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0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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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지의 동생 한영지는 사이가 좋았나요?”

우리는 포장마차 집을 나와 다시 생맥주집에 들렸다.
시간이 벌서 12시에 가까웠고 꽤 많은 술을 마셨으나 나나 오민준은 아직 정신이 그렇게 흐려지지는 않았다.
“오 팀장, 혹시 수지의 동생한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가?”
“관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남자가 예쁜 여자를 보고 왜 관심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동생 보다는 수지한테 더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회사에서 수지한테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오 팀장 말고 또 누가 있나요?”
“나 말고는...”
오민준은 생맥주 3백 CC를 단숨에 마신 뒤에 말을 이었다.
“나 말고는 사장이겠죠. 사장은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순전히 한수지의 손에 달렸으니까요. DNA 융합 기술이란 잘만하면 엄청난 부를 창출 할 수 있는 알라딘의 램프거든요.”
“부자가 되는 것 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도 얻게 되지 않겠어?”
“물론이지요.”
“그런데 회사 직원이나 임원이 그런 제품을 개발했을 때 개인에 대한 공적은 어느 정도 인정해주나?”
“그건 회사에 고용된 사람이 회사 돈으로 개발한 것이니까 전적으로 회사가 성과를 독차지 하게 되겠지요. 다만 사장이 개인적인 공헌도를 참작해 줄 수는 있겠지요.”
“그렇겠군.”
“선생님은 살인 사건을 주제로 추리소설을 많이 쓰셨는데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많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이런 경우 살인의 동기가 대개 어디 있다고 보여지나요?”
오민준이 눈동자가 좀 풀린 것 같았다.
“소설을 재미있게 만들자면 애정 문제나 재산, 때로는 신념이나 명예를 살인 동기로 삼지.”
“그런데 한수지 사건은 애정 문제나 재산 문제를 동기로 볼만한 것이 없잖아요?”
“가족 간의 갈등이 범죄의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아까운 인재가 죽었어요. 정말 사랑했는데...”
오민준이 갑자기 침통한 얼굴로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사랑한다고 고백 한마디 하지 못했다면서?”
“임팩트를 주려고 힘을 모으고 있었죠. 수지 같은 여자는 한 번에 넘어뜨려야지, 두 번, 세 번 찍을 수 있는 여자가 절대 아니거든요. 얼마나 고고하고 깔끔한데요.”
오민준은 이제야 술기운이 전신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사내에도 한수지를 은근히 짝사랑하는 남자들이 있었을 텐데.”
“남자라면 모두 한번은 마음에 두었겠지요.”
“그날 연수원에 같이 간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 없었나?”
“남의 속을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남자라면 한수지를 탐내는 속마음이야 없었겠어요?”
“누구? 변 사장?”
“그건 아니죠. 선배의 딸일 뿐 아니라 한수지가 없으면 산삼 프로젝트가 안 되는데...”
“산삼 프로젝트는 거의 마무리 단계라서 한수지가 없어도 지장이 없었겠던데...”
곽정 형사로 부터 들은 말이었다.
“아버지 대에서 부터 얽힌 우리가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는지도 모르잖아.”
“선생님은 현실과 소설을 혼동하시는 군요.”
“다음 장주석씨는 어떤 편인가?”
“에이, 그 뚱뚱이 자기 처지는 생각 안하고 한수지를 은근히 탐내고 있긴 했어요.”
“처지라니?”
“키가 185나 되는 거구에 몸무게가 120킬로예요. 그런 괴물을 좋아할 여자가 있겠어요?”
“장주석씨는 키가 커서 체중만 좀 줄이면 좋을 텐데... 다이어트 같은 걸 안하나?”
“게을러서 그래요. 그렇게 뚱뚱하고 둔하게 생겼는데도 마음은 아주 섬세해요. 유전자 융합에는 나노의 세계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DNA 세계를 다루는 데는 특별한 기술과 인내력이 필요하거든요.”
“장주석이 자기가 독자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없었나?”
“그 사람은 창의력이 제로예요. 남이 하는 일을 돕는 기술은 뛰어난데 자기가 개발을 하지는 못해요.”
“항상 자기의 기술과 한수지의 창의력이 합치면 이상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그러면서 슬쩍 자기가 한수지와 결합만 할 수 있다면 뛰어난 수재가 태어날 것이라고도 하고. ㅋㅋㅋ.”
“한수지는 장주석을 어떻게 보았는데?”
“아마 사귀자고 접근했다면 귀싸대기 감이었을 겁니다.”
“아니, 장주석이 혹시 남몰래 사귀자고 접근했다가 따귀 얻어맞고 원한을 품은 건 아닐까?”
“선생님 정말 소설 쓰시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지. 그럼 이정근 이사와 한수지의 관계는 어땠어?”
나는 처음에는 오 팀장에게 존대 말을 하다가 어느새 반말로 바뀌었다.
내가 나이 조금 많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정근 이사는 경리를 담당하고 있지만 좀 덜렁대는 편이지요. 회사의 자금이나 회계를 맡은 책임자는 대개 꼼꼼하고 빈틈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이정근 이사는 얼렁뚱땅 잘하고 좀 엉성한 데가 있어요.”
“그러데 어떻게 경리를 맡게 되었나?”
“사장이 처음 회사를 일으킬 때 돈 심부름 했다는데, 그 뒤에 이사에 까지 오른 사람이예요. 낭비벽이 심해 작년에 이혼까지 당하고 혼자 살아요. 한번은 술이 취해 한수지에게 수작을 걸다가 혼이 난 일도 있어요.”
“한수지가 특별히 자주 만나는 외부 사람은 없었나?”
“사교 모임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딱 한군데, 미국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 한국 동창회에는 자주 갔어요. 거기 동기 동창 중에 몇 사람과 친하거든요.”
“그 중에 제일 친한 사람은 누구데?”
“권익선 씨, 그다음은 유성우라고 공무원이예요.”
“유성우? 공무원?”
“아마 정보기관 어디에 근무하는 것 같아요. 키가 크고 잘 생겼어요. 체격이 운동선수처럼 단단해요. 실제로 토마스 제퍼슨 시절에 수퍼 볼 선수를 잠깐 했거든요.”
나는 마음속에 유성우를 잘 기억해 두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오민준도 토머스 제퍼슨의 동창인데 자기는 아닌 척 했다.
나는 오민준으로 부터 회사에 대한 개요를 대강 파악했다.
그리고 그날 함께 연수원에 간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만큼 알았다.
그러나 딱 떨어지게 의심 가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이튿날 나는 곽정 형사와 함께 바이오 컴퍼니를 방문했다.
한수지의 연구실과 바이오 융합 배양실도 방문했다.
한수지의 연구실에서 그날 주스와 함께 먹었다는 산삼 캡슐에 관해서도 직접 이것저것을 알아보았다.
“여기 먹다 남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변하진 사장이 한수지의 연구실에서 담배 갑 같은 통에 담겨 있는 산삼 캡슐을 가리켰다.
하얀 색깔의 조그만 캡슐 수십 개가 담겨있었다.
“이걸 한수진 팀장이 직접 만들었단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산삼 가루는 한 팀장이 직접 만들고 캡슐은 우리 제약 공장에서 만든 것입니다.”
“전에도 이걸 자주 드셨나요?”
“물론 입니다. 거의 매일.”
“그날도 직접 한 팀장이 집어서 나눠 주었습니까?”
“아니 그날은 한 팀장이 돌아서서 얼굴 립스틱을 바르는 중이라서 내가 상자에서 꺼내 나눠 줬습니다.”
“이것 성분 분석에 특별한 것은 없었나?”
내가 곽정 형사를 보고 물었다.
“성분 분석을 해 보았는데 산삼에서 나올 수 있는 성분즉, 다량의 샤포닌과 파낙시톨 성분 같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군.”
“독극물 성분은 없었단 말이지.”
나는 캡슐을 하나 집어 들고 사장에게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곧 비서가 물 한 컵을 가져와서 내가 직접 먹었다.
만약 여기 독약이 들었다면 나는 1~2분 안에 죽을 것이다.
“그날 연수원으로 떠나기 전에 이 방에서 주스와 산삼 캡슐을 먹고 떠났단 말이죠?”
내가 변 사장을 보고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때 시간이 2시 15분께였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연수원에 다 모였을 때가 3시 반쯤 이고요.”
“그렇습니다. 보통 40분쯤 걸리는데 그날은 토요일 오후라서 시간이 좀 더 걸린 것 같습니다.”
“그때 분명히 한수지 팀장은 아무 이상이 없었단 말이죠. 어디가 아프다든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 산삼 캡슐이나 여기서 마신 생수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뜻인데... 그날 거기서 마신 주스도?”
내가 곽정 형사를 쳐다보았다.
몇 번이나 들어서 아무 이상이 없었단 이야기를 또 확인하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사장의 안내로 산삼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DNA 융합 배양실로 갔다.
엄중하게 보안 장치가 되어 있어서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해야했다.
신발을 벗고 얇은 비닐 양말에 마스크, 그리고 귀까지 덮는 모자와 가운을 입어야했다.
방안에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이 몸을 오싹하게 했다.
“여기는 일정한 온도와 습기를 항상 유지하는 항온항습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무균 실입니다.”
“저게 무엇입니까?”
나는 벽 쪽으로 싱크대 같은 것이 있고 그 위에 현미경 같은 것이 있는 장치를 유심히 보았다.
“저건 전자 현미경입니다. 연구실모니터에서도 볼 수 있는데 보안 유지를 위해 폐쇄하고 직접 현장인 여기서만 볼 수 있습니다. 저기 올라서서 현미경을 통해 인큐베이터 속에 있는 DNA가 자라고 있는 모양을 직접 볼 수가 있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이상 여부를 관찰 합니다.”
나는 너무 오래 머물고 있으면 오염될 염려가 있다는 말에 얼른 배양실을 나왔다.
“저 연구는 한수지 씨가 직접 진행하고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장주석 연구원이 관찰 보고를 하루에 한 번씩 하고 있습니다.”
“사내의 다른 사람은 저 프로젝트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여기 있는 사람 외에는 깊은 내용을 잘 모릅니다. 이제 실험은 거의 끝나고 시험 제품 단계만 남았습니다.”
나는 회사를 둘러보고 나오며 머리는 더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단서라고는 눈곱만 한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회사 문을 나서자 요란한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최저 임금제를 지켜라!”
1백 명은 될 것 같은 사람들이 플랭카드와 확성기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저건 뭐지?”
내가 곁에 따라오는 곽정 형사를 돌아보고 물었다.
“임금 협상 중인 회사 노조원들인가 봐. 벌서 2주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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