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언체인' 홍승안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해 선택"
[인터뷰①] '언체인' 홍승안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해 선택"
  • 이지은 기자
  • 승인 2020.0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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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작품...재미있게 작업
기억을 잊어 조각을 맞춰가는 '싱어' 역 맡아
이전 시즌 본적 "없다"

많은 배려가 돋보였던 사람.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키가 작은 기자의 눈높이에 맞춰 매너 다리를 해주던 홍승안은 주문한 케이크를 들고온 직원에게는 감사 인사를 하던 밝은 청년이었다. 그날 자리한 사람들 앞에 일일히 포크를 놓아주던 그의 세심함은 연극 <언체인>에서도 진가를 드러냈다. 극 중 '싱어' 역을 맡은 그는 한순간 또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완벽한 연기로 보여줬다.

배우 홍승안. / 사진 이지은 기자
배우 홍승안. / 사진 이지은 기자

소개를 부탁하자 홍승안은 "연기를 하는 배우로 올해 서른이다"고 인사했다. "서른이라는 단어가 큰 의미도 새로운 건 없었는데, 나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고 기성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홍승안은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맞은 <언체인>을 본적 없었다. 한 번에 대본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신유청 연출의 해석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해 작품을 택했다. "대표님을 만나 대화를 많이 나눴다. 젠더프리로 만들어진 2인극이라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와 꼭 해보고 싶었다는"는 진심을 전했다.

연극 <언체인>은 잃어버린 딸 줄리를 찾는 '마크'와 줄리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는 '싱어'의 조각난 기억을 맞춰 가는 이야기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두 사람의 팽팽한 대립은 관객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난해한 파편처럼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어요. 연습하면서 느낀 건 떨어진 구슬 조각을 실로 잘 꿰다 보면 하나의 무언가 완성돼요. 목걸이, 팔찌인지는 배우마다 달라요.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작품의 파편들을 모으는 작업이 재미있었어요."

배우 홍승안. / 사진 이지은 기자
배우 홍승안. / 사진 이지은 기자

단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에 홍승안은 시점을 문제로 꼽았다. "연출님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본질적인 것에 대해 계속 질문 했던 거 같다. <언체인>의 매력은 본인 각자가 마크가 되고 싱어가 되는 거다. 때문에 내가 단정을 짓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조각으로는 살인, 가정폭력, 자극적이고 날카로운 단어들로 클리셰 범벅처럼 느껴졌다. 저 스스로 단순한 자극만을 위한 작품인가? 질문이 들었다"며 "함께하는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고 이유를 만들기 끊임없이 노력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신유청 연출은 정확한 루틴만 있다면 연기에 제약을 두지도 강요하지 않았다. 홍승안은 "배우들이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면 수용해주셔서 자유롭게 연습했다"고 말했다. 무대 좌측에 있는 거울에 대해 "굉장히 복합적인 의미다. 싱어가 클레어를 연기한다는 게 굉장히 이상하더라. 사실 둘은 만난 적이 없을 거로 생각해 반사되는 의미를 부여하도록 힘을 들였다. 전체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의미를 쌓아 해석해 만들어나갔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홍승안이 바라 본 '싱어'는 어떤 인물일까. "노력해도 안 되는 다른 사람에 비해 행복하지 않은 아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싱어는 시작점이 다르다. 불운한 환경에서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폭력을 당한 걸 보고 자랐다.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 그의 선택을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극이 됐으면 좋겠다"고 조명했다.

배우 홍승안. / 사진 이지은 기자
배우 홍승안. / 사진 이지은 기자

이번 공연에서는 인물들의 서사가 생겼다. 창작진은 '마크'와 '싱어'를 분명하게 다른 인물로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이전 시즌을 본 관객이 많이 친절해 졌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다. 단순히 인물 간의 감정만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대본에 힘을 줬다.

"같은 인물로 봐도 상관없어요. 저는 이들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공간이에요. 마크의 머릿속에 싱어가 살아있다는 전제로 이야기에 접근하기 시작했죠. 특정한 공간에 따라 싱어, 마크의 해석이 다르다 할지라도 연출님께서 맞힐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요. 관객이 봤을 땐 보이는 공간은 지하실이고 회색이지만 분명하지 않은 뿌연 의미가 있어요. 싱어가 표현하는 애매한 잿빛은 마크의 연옥이라고 생각했죠. 모래시계 역할은 연극용어로 주도권 게임 이미지로 사용한 거 같아요.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한다는 것보다는 같은 회색 공간의 변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예요."

<언체인>을 어려워하는 관객이 적지 않다. 이에 홍승안은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사실주의나 시대극이 아니다. 인물의 정서를 따라가는 게 힘들다면 잿빛 공간의 변화에 집중해서 보시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연출님이 노력을 많이 하셨다. 회색을 살리기 위해 잿더미라는 대사를 추가한 거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배우 홍승안. 사진 이지은 기자
배우 홍승안. / 사진 이지은 기자

지난 4월 7일에 개막한 공연은 중반부를 넘어섰다. 처음 달리 바뀐 부분이 있는지 묻자 "방향성은 같다. 단지 표현하는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전보다 편해진 거 같다"고 털어놨다. 완급 조절이 가능해졌다는 거다. "신경 쓰지 않아도 흘러간다. 처음에는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에 다음 감정을 만들기 위한 단추가 필요했는데 지금은 편하다. 함께하는 선배님들이 정말 훌륭해서다"고 웃었다.

홍승안이 싱어를 연기하는 데 있어 가장 신경 쓴 점은 마지막 독백 장면이다. "단순한 절규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장면은 가장 아프고 이쁜 순간이 섞여 있는 감정으로 싱어를 약간 대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흔히 감정을 쏟아낸다고 하는데 너무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이어 "메트로놈 외 생각의 흐름에 맥락은 없다. 싱어의 머릿속 전환 흐름에 대해 (정)인지 누나, (최)석진이 형, (신)재범이랑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재범이와 메트로놈 존재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하더라. 연출님은 두 가지 개념으로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랑 한 사람의 생각과 생각 끝의 시간이요. 시간이 만나는 수평적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하는데, 접점이 메트로놈의 균열적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연출님의 말이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두 개의 접점을 믿어보려고요. (웃음) 사실 마지막 싱어가 선택을 할 때 메트로놈이 켜져 있어요. 온전히 평화로움을 느껴요.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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