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언체인' 김유진 "처음부터 끝까지, 쉽지 않았던 작품"
[인터뷰] '언체인' 김유진 "처음부터 끝까지, 쉽지 않았던 작품"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0.0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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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체인' 세 번째 시즌, 마크 역으로 캐스팅된 연극배우 김유진


연극 <언체인>이 올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연극 <언체인>은 잃어버린 딸 줄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크’가 줄리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는 ‘싱어’의 흐릿한 기억을 쫓아가며 조각난 기억들을 맞춰 가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진실과 거짓이 첨예한 대립을 이루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동안 무대 위에 울려 퍼지는 일정한 속도의 메트로놈 소리는 그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지난 2017년 초연으로 무대를 가졌던 연극<언체인>은 영화<메소드>와 동시 기획 및 제작, 상연을 통해 '무대와 스크린의 절묘한 크로스오버'로 화제를 모으며 성황리에 공연된 작품이다. 연극 <언체인>은 배역들에 더욱 집중된 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지난해 연극 <톡톡>에서 보이지 않는 세균조차 견디지 못하는 질병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블랑슈 역을 맡아 새로운 매력을 선보였던 김유진 배우는 올해 연극 <언체인>에 캐스팅됐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기억 속 파편들을 맞춰나가며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마크’ 역을 맡았다.

아래 인터뷰는 연극 <언체인>과 관련해 배우 개인의 해석과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사진 이미지훈스튜디오 배경훈 사진작가
사진 이미지훈스튜디오 배경훈 사진작가


Q. 반갑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연기하는 김유진입니다. 연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 연기를 잘 하고 싶고, 끝까지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Q. 연극 <언체인> 알고 있던 작품일까

A. 네, 저는 초연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초연을 세 번 정도 봤었어요. 사실 세 번 보면서도 이해를 잘 못했던 작품이었거든요. 보면서도 '아, 진짜 어렵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할 줄은 몰랐죠. 재연 공연은 못 봤었고, 이번 작품 섭외가 들어왔을 때 '초연에 비해서 엄청 쉬워졌다'라고 해서 그럼 하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쉬운 거지 <언체인>이라는 작품 자체가 워낙 독특한 작품이라서 이해하고 풀어 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던 것 같아요.


Q. 지난해 공연을 봤을 때는 마크의 머릿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올해 공연에서는 또 다른 느낌이 들더라.

A. 이걸 구축하는데 모든 배우들이 머리를 모았던 것 같아요, 제가 구축한 세계관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조금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판타지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꿈' 그리고 '지옥'의 어딘가로 봤죠. 어쩌면 순간순간 새로 태어난 세계 같은, 그 어딘가의 순간들이라고 느꼈어요. 그렇게 제가 구축한 곳은 사후 세계의 지옥 속이었어요. 마크라는 인물이 지은 죄로 인해 반복되고 있는,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고 있는 시간의 텀이라고 생각했죠. 싱어도 여기서 보면 아버지를 살해한 인물인데, 어쩌면 마크와 비슷한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더욱더 서로에게 엮여있는 것 같더라고요. 두 사람은 비슷한 죄를 가지고 있지만, 죄를 맞닥뜨리고 있는 방법이 달라요. 한 사람은 자기의 걸로 껴안고 있어서 자기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려고 하는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죠. 이들은 단순하게 선과 악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인물들인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던 가장 큰 키워드는 마지막에 전복된 싱어가 다시 무대 위로 들어오는 모습이었어요. 그때 마크라는 인물로 분했던 제가 느낀 건 "아, 여기가 지옥이었구나"라는 거였어요. 그 순간, 깨닫게 되죠. 이 지옥 속에서 계속해서 내가 지은 죄만큼 벌을 받고 있구나라고 느꼈죠. 그런데 이 지점까지 정립하는데 많은 워딩이 필요했고 연습이 필요했죠.


Q. 지난해는 여러 지점에서 마크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처럼 느꼈는데,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A. 배우마다 다 달라서 이게 뭐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생각한 세계관은 이런 세계관이었고,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만든 세계관을 인지하고 제가 하는 연기를 보시면 조금 더 쉬워질 수 있지만, 이게 정답이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완벽하게 만들어진 숲 속이지만 미로처럼 어느 순간 막힌 벽을 마주할 때가 있거든요.


Q.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이 나오는 작품인 것 같다.

A.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블리치>라는 일본 만화가 생각나더라고요. 그 만화 속에서 이치고라는 주인공이 영적인 장소로 넘어가거든요. 그래서 자기 이면에 있는 공간 혹은 영적인 공간인가라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고 연기를 해봤는데 이어지는 부분들이 없어서 다시 또 생각해야 했어요.


Q.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A. 사실 잘 보시면 끝나지 않는 영원한 사이클이 지속되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마크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자세히 보시면 약간 힘이 빠져있거든요. 스스로 잘 모르겠지만 이미 알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상황이 반복됐어요. 마크는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인데, 왜 나는 지쳐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는 진실을 찾기를 원하지만, 기억 속 드러나는 진실을 외면하려고 해요. 그의 감각들은 총소리와 이명소리 등을 통해 그의 감각들을 일깨우지만, 본인 스스로 계속해서 외면하려고 하죠.


Q. 기억의 편린을 찾고자 하는 게 아니었던 걸까

A. 그날의 기억, 이 부분에서부터 다른 배우들과 해석이 달랐어요. 저는 줄리를 사랑하지 않거든요. 제가 그린 마크에게 줄리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싱어와의 대화가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죠. 내가 듣고 싶은 건 줄리가 어디 있냐는 게 아니고 싱어 스스로 '내가 죽였다'라고 말하는 거였거든요. 줄리의 생사보다 싱어의 '증언'이 중요했어요. 이건 마크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마다 정도가 달라요. 다른 세 명의 배우님들이 그리고 있는 마크는 경우에 따라 사랑하고 있고, 가슴 아파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린 마크는 '그릇이 작았던' 인물이었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줄리가 중요해지지 않았어요. 단지 줄리는 나라는 인물, 마크에게 모든 변명거리가 되는 거죠.


Q. 명분이나 타탕성을 가지고 싶어 하는 걸까

A. 그렇죠. 이후에 연기를 하면서 줄리를 지금보다 더 사랑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줄리의 생사보다 싱어에게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게 더 우선순위에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마크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을 거거든요. 작품 속 인물들은 외국에서 살고 있고 물론 가족관계가 다를 수도 있지만, '아빠'가 아닌 '마크'라고 불리는 것이 마크에게는 도화선이 됐던 것 같아요. 마크는 마음속으로 줄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줄리가 자신을 부정했을 때 드디어 뒤집혀요. 밑바닥이 드러나죠. 저는 개인적으로 '반성해'라는 대사가 마크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아빠라는 게 정서적으로 한국인에 더 다가오는 면이 있기는 하다

A. 한국에서 공연되고 있고, 한국 관객들에게는 정서적으로 통하는 말인 것 같아요. 이 부분에서 마크의 가장 큰 목적은 싱어가 '내가 죽였다. 내 잘못이야'라고 자기의 죄를 떠안아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 지점을 집중했던 것 같아요.


Q. 마크는 본능적으로 싱어가 진짜 싱어가 되는 걸 느끼고 있던 것 같다

A. 맞아요. 싱어는 싱어일 때 가장 약하거든요. 그래서 싱어를 계속해서 불러요. 그런데 싱어는 자기가 스스로 약하다는 걸 아니까 자신의 자아 속으로 숨어들죠. 그래서 마크는 계속 되뇌었어요. "난 아니야, 난 완벽해. 나는 줄리를 너무 사랑해"라고요. 하지만 이 속은 비어있죠. 연습 과정에서 너무 힘들어서 연출님에게 말했더니 책을 한 권 추천해 주셨었어요.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책이랑 <엔젤하트>라는 영화였어요. 이 작품들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물들이 마크와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감각적인 이미지를 심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사진 이미지훈스튜디오 배경훈 사진작가
사진 이미지훈스튜디오 배경훈 사진작가


Q. 극 중에 여러 오브제들이 나온다.

A. 먼저 장소부터 봐야 할 것 같아요. 이 장소는 처음 들어온 마크가 직접 만든 장소죠. 이 장소의 목적은 오롯이 싱어의 자백을 받기 위한 장소에요. 이 세트장에서 마크는 싱어의 자백을 받으려 하죠. 이 속에는 여러 오브제들이 나와요. 칼은 싱어가 아버지를 상기시키게 만드는 기폭제고 메트로놈은 싱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따뜻했던 기억, 안정적인 기억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메타포가 됐죠. 이들은 서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벌을 받고 있는 거였어요. 마크는 제일 마지막에 메트로놈을 딱 한 번 만지거든요. 그때 만족스럽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돼요. 마크는 자신이 싱어를 절벽 끝으로 밀어 넣었고,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억의 편린을 만지면서 따뜻한 느낌을 받아요. 역설적으로 이 메트로놈이 반복되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Q. 반복

A. 네, 마크는 스스로 생각해요. "이제 모든 게 끝났어. 나는 너무 만족스럽다. 너는 이제 죽었고, 나는 네가 마지막 말을 할 수도 없게 만들었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메트로놈을 만지지만, 메트로놈은 "너는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어, 너는 모를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거든요. 싱어의 행복했던 기억을 마크가 가져가게 되는 것 같아서 섬뜩하기도 해요.


Q. 재연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을 꼽자면 '통화'가 달라졌던 것 같은데.

A. 맞아요. 통화를 하는 것도 달라졌죠. 이 통화라는 것 자체도 시간 텀이 있거든요. 마크는 본인 스스로 지금 이 일들이 30분 안에 일어났다고 믿고 있고, 모래시계는 그 시간대로 흘러가요. 그런데 실은 이 공간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사실 통화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게 되는 거죠. 마크가 "30분 전쯤에 구급차를 불렀다"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은 그것도 맞지 않는 말이었던 거였죠. 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해요. 클레어의 전화도 진짜 목소리라고 믿고, 나는 아내를 걱정하고 있어라는 걸요. 그리고 무대 위에 자루가 있는데, 이 자루는 죄의식의 덩어리였어요. 마크가 가지고 있는 줄리에 대한 죄의식 덩어리, 클레어의 죄의식 덩어리, 그리고 마지막은 윌터에 대한 죄의식 덩어리가 자루로 되어있어요.


Q. 결국 마크의 가장 큰 목표는, 싱어에게 자신의 '죄의 전가'인 걸까? '결백하다'라는 걸 믿고 있고, 그걸 인정받으려 하는 것 같다.

A. "나는 결백해, 그건 너무 당연한 거야. 네가 잘못했고, 그러니까 너의 잘못을 인정해. 그래야 나는 나의 완벽한 삶이 유지될 수 있어"라는 거죠. 예전에 <끝까지 간다>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그 영화를 보면 한 번 어그러진 거짓말이 계속 커져서 나중엔 붙잡을 수 없어지거든요. 그것처럼 사소한 균열, 스타킹에 올이 나가듯, 핸드폰 액정에 금이 가듯이 사소한 균열을 용납할 수 없는 마크지만 결국 그 균열이 시작된 순간 이미 더 큰 사건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거였어요. 너무 큰 죄였거든요.


Q.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A. 가장 애써서 고생해서 만든 장면은 마크의 일들이 밝혀지는 장면들인 것 같아요. 많은 시간이 걸렸고, 어떻게 해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이 모습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리고 이 두 사람들이 계속 데자뷔처럼 같은 동선을 그어가면서, 겹쳐지고 분해되는 그런 모습들을 다 보여줘야 했었거든요. 마치 <지킬앤하이드>에서 'confrontation' 장면처럼요.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형식이 아니라 연극의 구조 속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싱어와 월터, 마크를 분리하면서 그 안에서 또 이들이 서로의 모습 안에 갇혀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크가 총을 버리고 나서 "절대 죽을 수 없어"라고 말한 뒤부터 싱어의 각성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리고 엔딩 전까지, 저는 마크의 불행이 시작되는 그 순간을 가장 신경 썼고, 가장 고생한 장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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