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김주연 "인생의 모든 것이 도전, 매번 한계 깨부숴" [인터뷰]
'데미안' 김주연 "인생의 모든 것이 도전, 매번 한계 깨부숴" [인터뷰]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0.0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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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을 가게 되더라도, 내 것을 잃고 싶지 않아. 잘못가게 된다면 늦더라도 되돌아설 수 있고싶어"
"좋은 제작진, 배우, 관객들. 이들이 지금 내가 옮은길을 걸어나가고 있다는걸 알려주고 있어"
"내 안에서 솟구치는 길을 따라 살고 싶었다. 그 길이 왜 이토록 힘들었을까"

뮤지컬 <데미안>이 지난 3월 7일 개막한 이후로 좋은 성적을 거두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뮤지컬 <데미안>은 젠더 프리 캐스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캐릭터에 구분을 없앤 '캐릭터 프리'라는 새로운 캐스팅 방식을 차용한 작품이다. 

고정된 배역과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까지 초월해 모든 배우들이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번갈아 맡고있다. 뮤지컬배우 정인지, 전성민,  김주연, 유승현, 김바다, 김현진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뮤지컬 <데미안>은 동명의 제목을 가진 독일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원작으로 재창작됐다. 온전한 자아를 찾아가는 싱클레어의 정신적 여정을 그리고 있다. 

본지는 뮤지컬 배우 김주연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뮤지컬 <데미안>과 그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데미안, 싱클레어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사진 배경훈 사진작가
사진 배경훈 서울문화재단 사진작가


Q. 본지와 첫 인터뷰,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반갑습니다. 저는 연극배우이자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김주연이라고 합니다.(웃음) 사실 자기를 소개한다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Q. 이번 작품 어떻게 알게 됐나.


A. 작년 말쯤에 피디님이 연락을 해주셨었어요. "같이 이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을 해주셨고 대본을 받았죠. 대본 첫 머리말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당신이 이 작품을 하게 되면 데미안과 싱클레어, 두 역할을 해야 한다. 힘들겠지만 대단한 여정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고 적혀있었죠. 그걸 보니까 이 작품이 지금 이 시기에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작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참여하겠습니다. 어렵지 않으면 참여하겠습니다"라고 말했죠. 사실 피디님이 예전에 연우소극장에서 했던 <소실>이란 연극에서 저를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잘 봐주셨던 것 같아요.


Q. "어렵지 않다면"이라고 말했는데, 공연을 보니까 대사량도 많고 어려워 보이던데


A. 맞아요. 싱클레어가 하는 독백이 엄청 많죠. 데미안도 되게 길어요. 피스토리우스에도 독백이 있고요. 대사량이 많아서 어려웠던 것 같고, 노래 부분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어요. 남자랑 여자의 음역대가 다르다 보니까 배우들이랑 감독님이랑 조율하면서 맞춰나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그리고 싱클레어와 데미안뿐만 아니라 데미안은 여러 인물들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 합을 맞출 때 조금 어려웠죠. 지금도 제일 많이 신경 쓰는 게 일단은 대사인 것 같아요. 독백이던 합을 맞추는 대사건 한번 틀리면 이후에 이야기들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제일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죠.


Q. 프레스콜 때 캐릭터 프리라고 했었는데, 동성 페어는 없던 것 같다. 동성 페어로 공연이 올라갔어도 매력 있을 것 같은데


A. 연습할 때 합을 맞춰보긴 했었어요. 일단 다른 배우들이 공연이 있거나 연습을 하고 있으면 남은 언니들이나 오빠들이 따로 연습하는 걸 보거나 같이 연습했거든요. 확실히 이성 페어도 좋은데 동성 페어도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연습 초반에는 이렇게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미 준비하고 있던, 혹은 준비했던 노래들 때문에 힘들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끼리 연습할 때 부르는 건 괜찮은데 기존의 곡들의 음역대와는 달라서 준비 기간도 더 길어지고 공연에 맞출 수 없을 거라고 하셨었죠. 만약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었으면 동성페어로도 공연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노래 없이 배우들끼리 합만 맞추기만 하면 되는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공연 시간도 그렇고 신경써야 되는 부분들도 많아서 결국 공연에선 볼 수 없게됐죠. 아쉽지만 연습할 때 정말 재밌게 느꼈던 부분인 것 같아요.

사진 배경훈 서울문화재단 사진작가

 


Q. 동성 페어도 있었다면 정말 '캐릭터 프리'라는 말이 잘 어울렸을 것 같다.


A.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이번 시즌 이후에 공연이 다시 올라간다면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요?(웃음) 개인적으로 다시 이 작품이 공연된다면 이성 페어뿐만 아니라 동성 페어도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꼭 그래야 한다기보다는 그런 기준조차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만약에 정말로 재연 공연을 올라가고, 제가 생각했던 캐릭터 프리를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지금 작품에 출연중인 모든 배우들이 다시 이 작품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구분이 없다면 저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저 또한 성장했을 테니까 또 다른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고요. 고전이나 명작의 매력이 그런 거거든요. 내가 겪은 만큼, 배운 만큼 나이 들어서 다시 보면 과거와는 따른 또 다른 이야기와 세상이 보이잖아요. 그때가 되면 지금의 제가 생각했던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길과는 다른 새로이 도전해야 되는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 여정에서 걸어나가는 길도 정말 행복하고 기쁜 길이지만, 나중에 걷게 될 그 길도 정말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Q.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이 걸려있지만, 노래나 대사에 함축적인 의미들이 많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A. 맞아요. 사실 음악감독님도 이 작품을 단순하게 뮤지컬로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었어요. 하나의 공연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노래가 있지만 뮤지컬이란 형식에 메여있을 필요는 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음정으로 말하고 노래 안에서 모든 걸 끝내야 한다는 형식이 없었죠. 그래서 뮤지컬과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들을 차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대사나 독백, 노래, 움직임, 춤을 통해서 관객들이 이야기를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모든 배우들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Q. 모든 배우들이 고민을 했다고 하는데, 모든 배우들이 모든 배역을 맡아서 연기하고 있다.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서 차용한 부분들이 있을 것 같다.


A. 정말 많아요. 얼마 전에 승현 배우님이랑 연습할 때도 많이 대화를 나눴었거든요. "넌 어떻게 생각해?", "난 이 부분은 이렇게 생각해", "여기는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서로 질문하고 답하고 좋은 부분들을 가져오고 가져가는 과정을 거쳤어요. 그리고 언니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이거 같이 좀 써도 돼요?"라고 질문했을 때, "이건 진짜 다 같이 공유하고, 좋은 것들 다 가져다가 자기 걸로 입혀서 해야 되는 공연인 것 같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아요. 배우들마다 성향이 다르고 표현하는 게 다르다 보니까 같이 연기를 하면서 혹은 연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져가고 싶은 지점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Q. 최소한 여섯 번은 봐야겠다.


A. 그렇죠? 전부다 보려면 최소한 열여덟 번은 보셔야 해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는 게 공연이 짧다 보니.... (웃음)

 

사진 배경훈 서울문화재단 사진작가

 


Q. 이번 작품에서 가장 와닿았던 대사가 있다면?


A. 사실 어릴 적에 데미안을 읽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뭔가 유명한 문구들보다 '어렵다'라는 부분이 강조됐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맡고 나서 책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예전에 쓰였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서 놀라웠던 것 같아요. 모든 배우들이 좋아했던 부분이 있는데 데미안의 서문에 "나는 이제 싱클레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라는 부분이요. 대사나 이런 부분에서는 지금도 대사를 할 때마다 울컥하는 부분인데, "내 안에서 솟구치는 길을 따라 살고 싶었다. 그 길이 왜 이토록 힘들었을까"란 부분이에요. 공연을 할 때마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대사예요. 저도 이렇게 살고 싶은데, 사실 말로는 뭐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제가 해야 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 대사를 내뱉으면서 행복한 기분과 함께 씁쓸한 느낌을 받고는 해요. 그리고 공연에서 봤을 때는 에바 부인 씬을 가장 좋아해요. 이 씬이 극중에서 관객분들이 가장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Q. 지금의 나는 좋은 이상향을 가리키고 있는 길 위에 서있을까


A. 지금 이 물음은 전 세계 어떤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다 모른다고 말하지 않을까요?(웃음) 일단 지금의 저는 확실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쉴 틈 없이 일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거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지금 공연을 하면서도 불안한 감정이 없다고 하는 건 거짓말인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이걸 잃지 않으려고 정말 동아줄을 붙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운이 좋게도 정말 좋은 감독님들과 배우님들, 관객님들을 만나서 이 어려움과 고난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미래를 바라봤을 때 저는 어떤 길을 가게 되더라도, 제 것을 잃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제가 가고 있는 길이 어긋난 길이 된다면 다시 돌아가 보자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하죠.

그리고 꼭 실현시키고 싶은 것들 중 하나는, 아직은 어렵지만 일 년에 한 번은 작은 소극장 무대를 올라가고 싶어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가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조그마한 꿈을 가지고 있어요. 기회와 시간이 된다면 여행도 가보고 싶어요. 올해 가려고 했는데 시기가 어려워져서 힘들지만 시간이 난다면 여행도 가보고 싶어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이상향으로 잘 가고 있냐는 말에 대답을 하자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일단은 제 이상향을 위해서 잘 걸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할수 있을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과 내가 지쳤을 때 쉴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는 것. 지금 이 두 개를 잃지 않는 다면 지치지 않고 걸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Q. 내가 가는 길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걸 인지하고 있는 것과 아닌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잘못된 길로 걸어가게 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거니까.


A. 맞아요. 앞서 말했던것 이외에 또 다른 한 가지는 급하게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부분은 제가 제일 잘 지키고 있는 부분이죠. 아직까지 급하게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일단은 저에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떄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거예요.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일을 끝 맞추어 나가다 보면 제가 더 바라는 이상향의 길과 맞닿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급하게 가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덧 스물여덟이네요...

 

사진 배경훈 서울문화재단 사진작가

 


Q. 나, 자신의 한계점을 느낀 적이 있을까. 혹은 내가 느꼈던 한계점을 깬 적이 있다면?


A. 사실 지금도 항상 한계점을 느끼고 있어요. 정말 항상 한계를 느껴요. 그래서 항상 저 스스로 작아지지 않으려고 되네이고 있어요.  왜냐하면 세상을 둘러보면 저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저보다 더 노래를 잘하고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있어요. 저는 어떻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운이 좋게 작품을 하고 있는데, 지금 제가 뮤지컬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고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시간이 날 때마다 레슨도 받고 공부도 하고 있어요. 저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걸 수도 있는데, 이 한계라는걸 깨기 위해서 그만큼 더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템플>이란 작품도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어요. 무용극이었거든요. 제가 몸을 정말 못쓰는데 자꾸 감독님이 '주연아, 할 수 있어. 아냐, 할 수 있어"라고 말씀하셔서 정말 포기도 못하고 매일 연습했던 것 같아요. 뒤로 텀블링도 하고 돌고래 자세도 해야 됐었죠. 정말 못하겠는데 계속할 수 있다고 하셔서 매일같이 연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결국 됐죠. 그런 거 보면 지금 제가하고 있는 인터뷰도 하나의 도전이듯이 인생에 벌어지는 모든 것들이 다 도전이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Q. 이번 작품 체력적으로 어려움은 없었나?


A. 제가 생각하는 저의 유일한 장점이 체력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제가 순간 집중력이 좋거든요. 그래서 작품에 들어가고 빠져나가는 부분이 확실하다보니까 체력적으로 점차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처음 작품을 맡아서 계속 그 작품에 집중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주위를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생겼죠. 장단점이 있었어요. 단점은 무대에 올라가기전 준비해야되는 시간이 길었던부분이죠. 무대 뒤에서 맡은 작품과 배역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준비를 할 수 있게 변했죠. 다른 배우들과 그들이 맡은 배역을 둘러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같이 대사를 맞추거나 말을 하고있다보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무대에 조금 더 집중해서 올라갈 수 있었거든요. 뭔가 확실한 변화 생겼다기 보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작품들을 하면서 많은 선배님들을 보면서 저도 조금씩 변한 것 같아요. 정말 힘들었을 때는 예전에 <시련>이란 작품을 할 때였죠. 너무 극에 집중을 했던 때였는데, 공연이 끝나면 그냥 죽을 것 같이 힘들었어요. 이번 작품도 마냥 쉽지는 않아요. 우선 싱클레어는  시작하고 나서 끝날 때까지 무대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거의  없거든요. 중간에 잠깐 나가는데 이게 나가서 뒤로 한 바퀴 돌아서 무대로 들어가서 집중을 풀 시간이 없죠. 그런데 정말 죽을 것 같고 힘든데, 그런 만큼 잘 끝냈을때 드는 행복함도 늘어나는 것 같아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최근에 제가 밥을 잘 못 먹고 싱클레어 역으로 무대에 올랐었던 적이 있었는데, 무대에 올라가서 연기를 하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고요. 그리고 손을 딱 뻗는 장면이 있었는데, 정말 힘이 안들어가서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떨렸던 적이 있어요. 사실 그때 잠깐 집중력이 깨졌었죠. 흔들리는 손을 바라보던 그 순간 잠깐 인간 김주연이 됐었다가 다시 싱클레어로 돌아왔었어요. 떨리는 손을 다잡고 싱클레어로 돌아갔는데, 그때의 기억 떄문에 그 뒤로 공연하기 전에 밥을 꼭 먹고 들어가고 있어요. 떨리는 손과 발에 집중력이 깨지기는 싫거든요.(웃음)

사진 조나단 기자

 


Q. 극한 직업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 같다


A.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웃음) 아무래도 데미안 역할은 다양한 배역을 하기 위해서 무대 밖을 오가는데, 싱클레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에 올라가있으니까요.


Q. 작품 속에서 데미안이 항상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에서 싱클레어가 먼저 손을 내민다. 어떤 뜻일까? 제대로 본 게 맞을까?


A. 그동안 데미안이 먼저 손을 내밀었죠.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선 싱클레어가 먼저 손을 내밀어요. 싱클레어한테 데미안은 이상형에 가까운 존재였죠. 누군가나 닮고 싶어 하는 존재가 있잖아요. 내가 닮고 싶었던 존재를 따라갔던 내가 과거의 싱클레어라면, 현재의 싱클레어는 내가 나아갈 수 있는 나아가야할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내가 앞서서 데미안에게 손을 내밀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Q. 성악설과 성선설 중에 어떤 걸 믿고 있는 것 같나. 이 작품 속에서 선악의 대비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항상 두 사람은 대칭점에 서있었다.


A. 개인적으로 이런 토론을 엄청 좋아하는 편인데 지금은 인터뷰니까 짧게 해볼게요. 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無)가 맞을 것 같아요. 그냥 존재 그 자체인 거죠.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어요. 뭔가 한 사람이 알을 깨고 나왔을 때 이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게 악이면 악으로, 선이면 선으로 가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은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가정교육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론을 말하자면 저는 중간, 혹은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나이지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하게 된다는 거죠.


Q. 작품을 바라봤을 때, 데미안은 악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는 인간에게 잘못된 길을 가게 하지 않으려는 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A.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던 건 둘 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데미안도 완성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누구보다 매력적인 데미안이지만, 데미안 또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서있는 인간들 중 한 명처럼 느껴지더라고요.


Q. 작품 속에서 데미안은 학급에서 누구보다 매력적인 학생이고, 싱클레어는 그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실제로 학창시절의 나는 어떤 인물에 가까웠나


A. 저요? 저는 누군가한테는 데미안일 수도 있고, 누군가한테는 싱클레어 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어렸을 때 저 자신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었거든요.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항상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들었던 적도 있었죠. 일반적이진 않았던 게 확실해요. 조금 특이했다랄까요?(웃음)


Q. <데미안>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대사나 넘버는?


A. 개인적인 취향이니까. 일단 '폐허 너머'나 '생존투쟁', '탄생을 위한 죽음', '이어진 꿈'을 좋아합니다. 한 곡을 꼽자면 '이어진 꿈'이요. 선율도 되게 좋은데 가사가 정말 와닿았거든요. "나는 너한테 가기 위해서 눈을 감고 꿈꾼다"라는 가삿말이 있어요.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해요. 이 부분은 모든 배우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비 얘기를 하는 부분도 좋아해요. "열 시간 넘게 날아간다, 그걸 의지라고 부른다"라고 싱클레어가 말하는데 그 순간 싱클레어 스스로 알을 깨게 되는 순간인 것 같았거든요.

사진 조나단 기자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A. 사실 정말 힘들거나 즐거워서 기억에 남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치열한 기억만 남아있어요. 이번 작품이 확실하게 메리트가 있는 건, 모든 배우들이 데미안과 싱클레어 역을 다 맡고 있으니까 한 역할로서만 편중되게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는 점인 것 같아요. 이런 작품을 모두 처음 접했기 때문에 정말 많이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노래를 부르는 지점들도 정말 재밌었던 것 같아요. 모든 대본을 외운다는 것도 정말 의미 있죠. 아 그리고 에피소드라기는 뭐 한데, 극 중에서 싱클레어가 물 마시는 타이밍이 정말 없어요. 무대 위에서 계속 올라가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다들 연습할 때 언제 물을 마셔야 할까라는 부분을 많이 생각했었어요. 대사량이 많다 보니까 정말 침이 마를 때가 생기곤 하더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까 지난번에 공연을 하는데, 대사 마지막에 숨을 고르다가 제 목에 먼지가 딱 걸렸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른 작품이면 모르겠는데, 이 작품은 제가 계속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해야 돼서 기침을 할 타이밍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정말 혼자서 남은 대사를 치면서 조심스럽게 기침을 했는데, 이게 평소엔 잘 내려갔거나 인식을 못 했을 텐데 연기 중에 이게 딱 걸렸다는 느낌이 드니까 계속 신경 쓰이더라고요. 그래도 그 뒤에 장면이 잠깐 무대 뒤로 가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물을 원 샷 했었거든요. 진짜 생명수 같았어요.(웃음)


Q. 평소라면 신경이 안 쓰였을 것 같다.


A. 마음대로 기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까 아무래도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잠깐 대사가 없을 때 안 들리게 '큼, 큼' 기침을 하기도 했었는데 안 내려가더라고요.


Q. 내가 생각하는 뮤지컬 <데미안>은?


A. 제가 생각한 <데미안>은 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옮겨놨다고는 할 수 없지만 90분이라는 시간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작품인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우리 여섯 명의 배우들의 색깔이 들어가 있는 <데미안>이 됐죠. 동명의 책이 원작이지만 대사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았거든요. 모든 작품들이 보는 관객들의 생각과 관점에 따라서 해석도 달라지지만 저는 이번 작품이 개인적으로 관객들 스스로의 삶에서 리프레시 되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일상에 지쳐있을 때 이 작품이 내가 가고 싶은 길,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 있었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에 임하고 있어요.

사진 조나단 기자
사진 조나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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