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스트' 안재영 "친일파 역, 미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인터뷰] '미스트' 안재영 "친일파 역, 미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0.0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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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지은 기자
사진 이지은 기자

지난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열렸다. 시기에 맞춰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뮤지컬들이 대중과 만날 수 있었다.

뮤지컬 <미스트>는 이 시기 이전부터 준비된 작품이다. 앞서 지난 2016년 '아르코-한예종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AKAMA)' 쇼케이스 최종 선정됐다. AKAMA는 뮤지컬 창작 인력 지원과 육성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 산실과 연계해 우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프로그램이다. 이후 2017년 <조선귀족>이란 제목으로 쇼케이스를 진행했고, 2020년 <미스트>라는 제목으로 정식 무대로 올라오게 됐다.

창작 뮤지컬 <미스트>는 '1910년 8월 29일 제3대 통감 데라우치와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사이에 이뤄진 한일병합조약에는 황제의 비준 절차가 빠져 있었다'라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더해 제작한 뮤지컬이다. 동경 유학에서 돌아온 일급 조선 귀족 자제 김우영과 나혜인이 경성에서 아키라와 이선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네 사람이 깊은 안개로 뒤덮인 시대에서 펼쳐진다. 본지는 극중 일급 조선 귀족 자제 '김우영' 역을 맡은 안재영 배우를 만났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그 시대 경성은 어떤 느낌일까.

사진 이지은 기자
사진 이지은 기자

Q. 반갑다. 오랜만에 뮤지컬로 돌아왔다.

A. 맞아요. 지난해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랑 10월에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후에 올해 첫 작품입니다.

Q. 그 사이 좋은 일이 있었죠.

A. 맞아요, 결혼을 했습니다.(웃음)

Q. 결혼 전이랑 후,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A. 일단 결혼을 하면서부터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평생 처음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무언가 필요한 게 생기고, 그걸 제가 직접 알아봐야 하다 보니까 정말 어려웠던 것 같아요. 부동산에도 사실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된 부분들이 많아요. 그리고 가장 크게 배운 건 우리 둘만 좋으면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부모님도 신경 써야 되고 많은 부분들에서 어려웠던 점들이 있었어요. 이런 걸 경험하면서 어른이 되는구나 하는 부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부분은 아니지만 변한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우로서도 이런 부분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배우는 경험을 하고 상황을 겪고, 이해를 하면서 배우고 쌓아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고 전과 같은 텍스트를 봐도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조금 발전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Q. 그럼 2008년 처음 데뷔했을 때와 지금, 12년 차 배우로서 가장 달라진 점과 그때와 달라지지 않는 점이 있다면?

A. 일단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부연적으로 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요즘에는 시대가 바뀌는 텀이 짧다고 느껴져요. 가치관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변화도 많아지는 것 같고요.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분들도 달라졌죠. 그래서 공연을 하면서도 항상 고민하는 것 같아요. 내가 라이브로 하는 공연들이 이 시대상에 맞는 부분인가. 내가 표현하는 부분들이 맞을까란 고민도 하죠. 배우라면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연기 스킬이나 공연을 하는 부분들에 있어선 과거보다 성장했다고 보지만, 마음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 스스로 목숨 걸고 해보자고 하는 편이거든요. 조금 오해를 할 수도 있는 부분이겠지만,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하고 있어요.

 

Q. 이번 작품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을까

A. 사실 이번 작품은 제가 신혼여행 갔을 때 제안을 받았었어요.(웃음) 호주로 신혼여행을 갔었을 때 연락을 받았었죠. 오래전에 <비스티 보이즈>란 작품을 같이했던 적도 있었고 같이 작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던 이성원 연출가님이어서 연락을 받고 고민도 하지 않고 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이번 작품에 들어오게 됐죠.


Q. 이번 작품에서 맡은 김우영이라는 배역을 소개하자면?

A. 사실,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주 나쁜 놈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인물인데, 제가 하는 설명에 따라서 공연을 관람하시는 혹은 관람하신 관객분들이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하기 조심스럽네요. 그래도 말을 해보자면 김우영이라는 인물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지키려 하는 사람이에요. 원하는 걸 쟁취하려고 하니까 주변의 많은 것을 둘러보지 못하는 사람이죠. 그 시대에 그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잘못된 건 잘 못 된 거라 이해는 해보려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인물을 이해하고 연기하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나쁜 놈이네요.(웃음)


Q. 사실 김우영이라는 인물이 작품 속에서 서사가 가장 잘 보였다. 그래서 일까 본지는 나쁜 놈이지만 가장 이해가 잘 됐던 것 같다.

A. 김우영이라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제가 설득력이 있어야, 극중 '아키라'라는 인물과 '나혜인'이라는 인물이 더 설득력이 생긴다고 봤거든요. 저는 제가 한 가지에 몰입이 돼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관객분들의 입장에선 혜인이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과정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조금 과거에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강조했죠. 사실 저는 이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부분에서 변명이 될 수도 있고 우리에게 했던 만행들이 미화가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선들을 정말 많이 고민했고, 그 선을 넘어가지 않기 위해 정말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캐릭터 구성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있어서 다른 작품에서 참고한 게 있을까.

A. 아무래도 제가 맡은 배역인 김우영이라는 인물은 친일파, 쉽게 말해서 조선 귀족이잖아요. 그래서 이 부분을 많이 공부했던 것 같아요.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죠.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알 수 있다는 거였어요. 정말 분한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친일파, 당시의 조선 귀족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나, 그들이 했던 선택을 옹호하지 않아요.

사진 이지은 기자
사진 이지은 기자

 

Q. 그 시대, 독립운동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쉽지않았을 것이다.

A. 맞아요. 정말 지금의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암흑 같았을 시대였죠. 그래서 공부할수록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했어요. 


Q. 극 중 이야기를 더 해보자. 우영은 왜 끝까지 혜인이라는 인물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A.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어떤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정말 필요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꼭 가져야 한다는 어떤 인간의 욕망이랄까요. 한때는 정말 혜인을 좋아했죠. 혜인이를 바라봐왔던 만큼 그의 마음이 떠나는 것도 분명 알았을 거예요. 그가 내 옆에서 떠나갔는데, 그걸 포기하지 못해요. 어떻게 보면 최종 목표가 되어버렸다랄까요. 이 목표가 없어지면 살 이유가 없는 것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죠.


Q. 연습하면서 실수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너무 많아서 기억이 안 나네요. 아 제가 맡은 역할이 친일파 역할이다 보니까 배우들끼리 연습 과정에서 전형적인 친일파 흉내를 내면서 연습했어요. 예를 들어서 "혜인아, 이거 왜 여기 있어? 하면서 화를 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냥 연기 톤이 아닌, 전형적인 친일파 대사 톤 있잖아요? 그런 톤으로 연기하곤 했죠. 정말 진지하게 눈물 흘리면서 해야 하는데 빵 터져서 연습한 기억이 있습니다. (해당 대사를 텍스트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통탄한다. 어떤 느낌이냐면 '야인시대'라는 예전 드라마에서 '미와 경부'라는 일본인이 대사하는 톤이었다.)

 

사진 이지은 기자
사진 이지은 기자

 

Q. 우리 작품을 잘 표현해주는 넘버나 장면은?

A. 일단 제가 출연하는 장면은 아니지만 혜인이가 극중 부르는 '나를 찾아'라는 장면요. 그의 선택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선 귀족이고 친일파의 딸이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어떻게 보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넘버고 장면인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키라라는 인물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부분도 좋아해요. 저도 해보고 싶은데, 얍삽하게 하게 총만 쏘고 있습니다.


Q. 혜인이란 인물은 그다음 어떤 삶을 살아갈까.

A. 사실 칙서는 당시 일본에게 있어서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거였다고 생각해요. 그 칙서를 외국으로 가지고 가서 말한다고 해서 그 나라가 군대를 움직였을까요? 그만큼 당시 일본의 세력은 막강했죠. 그래서 혜인의 선택은 대단해요. 정말 암흑 속에서 아무런 미래가 보이지 않던 시대에 단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걸어나가잖아요. 사실 그가 그 뒤에 걸어나갈 길은 가시밭 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다가 죽을 수도 있고, 가더라도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죠.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을 것 같아요. 끝까지 독립운동을 하지 않을까요?


Q. 아직 공연을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일단 정말 모든 배우들이 최선을 다해서 공연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어떤 공연이던 마찬가지지만 정말 최대의 에너지로 어제보다 더 좋은 오늘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끝나기 전까지 꼭 공연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공연의 매력은 라이브로 진행된다는 거잖아요. 오늘 공연은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창작 초연이라 부족한 모습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만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공연을 보러 오셔서, 그 시대 경성의 한 귀퉁이에서 벌어진 모습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올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까

A.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맡은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를 하는 게 목표입니다. 한 가지 더 원하는 게 있다면 저라는 배우 자체가 작년보다는 나은 배우가 되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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