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평 시사논평] ’젊은 피‘에 쫓기는 ’경륜 있는 중진들‘
[양문평 시사논평] ’젊은 피‘에 쫓기는 ’경륜 있는 중진들‘
  • 양문평 고문
  • 승인 2020.0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가는 정신노동자일까 육체노동자일까? 너무나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요즘 우리 정치계의 모습 때문이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총선을 앞두고 여당에서나 야당에서나 ’젊은 피‘라는 말이 어지럽게 튀어나와서다. 그 ’젊은 피‘에 쫓겨 얼마 전까지 목에 힘을 주던 ’경륜 있는 중진‘들이 죄지은 사람들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느덧 ’경륜‘이나 ’중진‘이란 말이 우리 정치계에서는 ’전과‘나 ’결함‘ 같은 말처럼 들린다.

그런 광경을 보면 메이지 유신을 앞둔 일본에서 젊은 사무라이들의 기세에 나이든 기득권 무사들이 맥을 추지 못했던 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메이지 유신을 성사시킨 것은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의 젊은 사무라이들이었다.

그들의 중심으로써 메이지유신의 상징 인물이 된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는 28세에 막부 타도에 나서 메이지유신의 성사를 1년 앞둔 1867년 수구세력에게 암살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 32세. 그 나이에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및 오나 노부나가(織田信長)와 함께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3대 인물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 것과는 딴판으로 정치인들의 나이가 거론되다 보니 그들이 갑자기 체육인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뒤 돌아 보면 체육인으로써 정치에서 성공한 인물들도 많았다. 해방 국면에서 우익 학생들의 선봉장으로 당시 학원가에서 왕성했던 좌파학생들을 몸으로 제압하기도 했던 이철승(李哲承)이 좋은 예다. 그는 일찍이 고대의 역도부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 뒤 이철승은 대한체육회장(2대)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는 1970년대 초 김대중및 김영삼 과 나란히 ’40대 기수‘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체력은 정치력”이라는 어록이라도 나올 법 했다.

그 비슷한 사례는 외국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의 전설적 프로레슬러였던 안토니오 이노키도 참의원의원으로 독특한 활동을 해왔다. 전설적 프로복서였던 무하마드 알리와 격투기를 갖기도 했던 그는 막상 정치에서는 북한과 일본, 또는 한국과 북한간의 교류 등 평화와 화합의 정치로 두각을 나타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경우 전력이 영화배우였지만 그보다 앞선 전력은 세계적 보디빌더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정치인에게 체력은 그의 정신적 판단력을 뒷받침할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념이다.

20세기에서 손꼽히는 정치가의 하나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으나 머리는 마비되지 않아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루스벨트의 경우 정치가 확연한 정신노동임을 말해주었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나이에서도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2차 대전 당시 70대의 나이에도 원기왕성하게 영국을 이끌어 승리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 정계에서는 50대만 돼도 고려장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물론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젊음과 건강은 중요하다. 체력이 승부에 결정적인 체육은 말할 것도 없고 두뇌스포츠로 알려진 바둑에서도 나이는 중요하다. 아니 프로 기사에게 나이의 부담은 스포츠 스타의 그것을 능가하는 면도 있다. 지난해 이세돌이 32세의 나이에 은퇴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것은 일본의 전설적 중국계 야구선수로 우리나라에서는 ’왕정치‘로 알려진 왕전즈(王貞治·오오사다하루)의 경우와 대비된다. 그는 37세에 절정의 기량을 보여 미국의 홈런왕 행크 아론과 홈런 대결을 벌였다. 그 상대인 아론은 아예 40세였다. 체육이나 바둑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활동에서도 젊음과 건강은 요구된다. 하지만 인간은 나이가 늘어감에 따라 체력을 잃은 대신 경륜은 늘어나 결국은 그 나이와 경륜의 함수관계에서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고도의 정신노동이면서도 혹심한 육체노동을 겸해야 하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92세에 타계한 파블로 피카소의 경우 임종 한 달 반전에도 마지막 작품인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 정치계에서 젊은 피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가 특이한 비정상 상태에 빠져 있어서일까?

그 비정상이란 정치사를 통해 오래 쌓아온 원칙이나 경륜 같은 것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앞서 말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것도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였다. 유신 15년 전인 1953년 미국의 검은 철갑함인 ’흑선(黑船)‘이 쳐들어와 일본 당국에 개항을 하라고 협박해 일본은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그 군함은 사무라이들의 칼이나 재래군선의 화승총 같은 것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아 사무라이들의 정권인 막부가 멘붕에 빠졌고 그런 상황에서 ’연륜‘은 무의미한 것이 됐다. 그런 연륜보다는 서양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관심과 의욕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활발히 외국을 드나들며 견문을 쌓아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가 있었다. 쿠데타에 이은 군사독재 상황에서 정치학 교과서는 시골의 담벼락에 붙어있는 빛바랜 선거벽보 같은 것이 돼버렸다. 쿠데타 당시 내각책임제 하의 대통령이었던 이는 그 해가 가기도 전에 쿠데타 주역의 계급장을 소장에서 중중으로, 중장에서 대장으로 달아주는 것 외에 따로 ’경륜‘을 떨칠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기존의 정치계가 동면상태에 빠지자 경륜과는 담을 싼 젊은이들의 피어린 발자국 위에 또 피어린 발자국들이 겹치면서 군사독재는 멀어져 갔다.

그래서 소위 ’문민정부‘가 등장한지도 30년이 지난 시점에 느닷없이 젊은 피가 운운되는 것은 웬일일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나라 정치에서 경륜이란 게 그다지 필요 없는 장식품 같은 것이어서 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정치인들의 밥그릇 수가 참된 경륜으로 이어지지 않아서라고 볼 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고도의 경륜이 별로 필요 없이 굴러왔다고 혹평할 수 있다.

그것은 군사독재와도 무관한 현상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거수기‘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군사독재가 들어서기 전의 자유당 시절이었다. ’거수기‘라는 말이 나도는 상황에서 정치인의 머리는 ’머리 숫자‘를 채우는 구실로 족해 그 머리 속에 든 것은 셈에 들지 않았다.

자유당의 수뇌부가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해 개헌에 착수했을 때가 좋은 예다. 개헌안 표결에서 의결정족수는 재적의원(203명)의 2/3 이상이었으므로 개헌안이 가결되기 위한 충분한 선은 136명이어야 했다(재적의원 2/3는 135.33…명이므로, 자연인은 136명이어야 함). 그러나 찬성표는 135표여서 당시 사회자였던 부의장 최순주(崔淳周)는 부결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자유당은 수학적인 사사오입을 적용해 가결했으니 의원들의 ’머리 값‘은 비쌌으나 그 안의 경륜은 헐값도 못됐다.

그런 전통은 군사독재 시절이나 문민정부 시절에도 변함없이 이어진 셈이다. 특히 정치판도가 지역적으로 쪼개져 있어 어느 지역에서는 당 간판만 눈에 뜨일 뿐 그들의 능력이나 경륜은 그저 장식품 값이었다.

지금 거론되는 ’중진용퇴‘도 그런 공식을 반영한다. 어느 정치인이 땅 집고 헤엄치기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차 국회의원에 당선돼 어느덧 ’중진‘이 돼 봤자 생색을 내기는커녕 ’중진 용퇴‘라는 계산서나 받아쥐게 된다. 중진 용퇴의 다른 말인 ’험지 출마‘는 21세기 한국 정치판의 고려장으로 보면 알기 쉽다. 그래서 한국 정치인들에게 마감이 퍽 가혹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세상 모든 직업에는 마감이 있고 거기에는 나름의 공식이나 관행이 있기 마련이나 우리 정치판의 마감에는 이렇다 할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직장에서 통용되는 정년 규정이 있다. 물론 그 정년 규정도 직장 내부적으로는 말썽의 소지가 많다. 직장 말기에 승진을 하면 정년이 연장돼 이중의 축복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기회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과 치사한 마찰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예외적이다. 직장이 아닌 자유직의 경우 본인의 건강이 말해주니 더 합리적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계에서는 그 나마의 기준도 없다. 어떤 정치인이 고령으로 물러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경륜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도 없다. 그런 객관적 근거가 작용하지 않는 무대에서는 눈치와 억지가 기세를 잡는다. 그래서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물러나라고 소리치는가 하면 뒷마당에서는 낯간지러운 공작이 심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