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평 시사논평] 한국판 영웅론- 박찬주 소동을 보고
[양문평 시사논평] 한국판 영웅론- 박찬주 소동을 보고
  • 최남일
  • 승인 2019.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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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나라를 들썩이게 한 ‘박찬주’소동이 잠잠해졌다. 좋아할 일은 아니다. 어떻게 물이 끓다 못해 넘칠 것 같던 소동이 순식간에 없던 일처럼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을 한국인 특유의 ‘냄비 근성’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그만일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나 마음은 한심하다 못해 참담하다. 그 ‘냄비 근성’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요동칠 수 있는 체질이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 냄비 근성 말고도 이번 박찬주 소동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병리를 크게 부각시켰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영웅론이다. 어느 사회나 영웅이 되는 과정은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인 것만은 아니다. 영웅이 되는 데는 그 주인공의 영웅 됨 못지않게 주변의 우연이 많이 작용해서다.

그것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영화가 1960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유황도의 영웅’이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2월에 벌어진 미군의 이오지마(유황도) 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영웅’과는 인연이 없는 한 인물이 여러 가지 우연들이 겹쳐 영웅이 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는 이오지마 상륙작전 당시 해병으로 그 섬의 스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세우는 데 참가했다.  그 장면을 담은 사진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 사진을 보면 얼핏 총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성조기를 세우려는 해병들이 분전하는 모습 같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곳에는 이미 성조기가 세워져 있었으나 그것은  전투상황에서 세운 작은 기였다. 그 뒤 스리바치 산 일대가 안정되자 그 성조기를 더 큰 것으로 대체하게 됐다. 그 소식을 들은 AP통신의 사진기자 조 로즌솔은 성조기 작업을 하러 가는 해병들을 따라 갔다.

그는 왜 전투현장을 떠나 성조기를 바꿔 세우는 작업반을 따라 갔을까?

로즌슬은 해병들의 작업을 전투상황처럼 연출함으로써 세계 언론사에 남을만한 ‘대작’을 찍었던 것이다. 그 사진을 본 미국 사회가 열광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당국은 그 사진의 이면 사정도 알고 있었으나 당시 전시국채를 팔아야 할 형편이어서 모른 척 했다. 

그래서 ‘6인조 작업반’은 ‘6인조 육탄용사’처럼 영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행운’이 그처럼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이오지마는 섬이 넓어 그 성조기를 세운 뒤에도 전투는 계속돼  2명의 ‘이오지마 영웅’은 ‘이오지마의 혼백’이 됐다.

인디언 출신인 아이라 헤이즈는 더 비극적이어서 영화 ‘유황도의 영웅’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전우들이 사선에서 싸울 때 한낱 작업병으로 성조기를 세웠을 뿐인데도 영웅이 된 데서 심한 자괴감을 느껴 끝내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삶을 망친다. 하지만 그 사진은 아예 알링턴 국립묘지의 명소인 ‘해병기념탑’으로 자리 잡는 등 기념비적인 명작 사진이 됐고 조 로즌슬은 ‘영웅 사진기자’가 됐다.

‘유황도의 영웅’은 영웅과는 거리가 먼 인물도 사기성 순발력을 갖춘 기자를 만나는 우연에다 전시국채라는 우연이 겹치면  영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웅 탄생이 이처럼 주변 상황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종철이나 이한열 말고도 수많은 ‘열사’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부분 국민들에게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다. 박종철 사건이 나기 바로 1년 전인 1986년 5월20일 서울대 학생회관 4층에서 이동수(원예학과·83학번)가 민주화를 외치며 온몸에 석유를 뿌려 불을 붙인 채 투신한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런 극적인 장면을 한국일보 사진부 권주훈이 카메라에 담았다. ‘열사’의 탄생으로 그보다 더 멋있는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박종철은 고문하던 수사관들의 실수로 죽었고 이한열도 전경이 실수로 쏜  최루탄에 사망했다면 이동수는 자신의 죽음을 철저히 준비한 뒤 투신을 결행한 것이다. 더욱이 그 극적인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외신에서도 크게 다루었으니 영웅 탄생으로는 빈틈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거기엔 하나의 빈틈이 있었다. 그 때가 5공의 ‘말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박종철과 이한열 사건은  어딘지 5공 말기 같은 분위기에서 대서특필됐지만 이동수 사건은 국내 매스컴이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이동수는 지리(地利)와 인화(人和)를 갖추었으나 천시(天時)가 한 해 사이로 빗나가 영웅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순간적인 장면을 포착했던 권주훈도 초인적인 순발력을 발휘했으나 ‘영웅 사진기자’  서열에서는 마술쟁이 같은 사진기자에게 까마득히 뒤쳐졌다.

하지만 박찬주가 영웅처럼 부각된 것은 그런 영웅 탄생의 우연성과도 다르다. 거기엔 우연보다도 ‘필연성’ 같은 것이 비쳐서다. 그 필연성이란 “적의 적은 우리 편이다”는 논리가 병적으로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 풍토다.

많은 국민들은 제1야당 당수가 왜 그를 ‘귀하신 분’으로 부르며 총선에 선봉장으로 내보내려 하는지 의아해 했었다. 물론 그가 육군 대장까지 진급했으니 일단 군인으로써는 유능하다는 것을 몰라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육군 참모총장이나 심지어 국방장관을 거친 이들도 제1야당 당수가 ‘귀하신 분’이라며 모셔가려 했던 기억은 없다.

지금까지 무수히 배출된 4성 장군 가운데서 박찬주가 남다른  강점을 보인 흔적은  없다. 그에게서 굳이 남다른 면을 찾자면  다른 4성 장군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추문’으로 유명해진 점뿐이다. 그 말썽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재판 결과가 말해 줄 것이나 그것이 전부 허위가 아니라는 것은 박찬주 자신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안보를 장기로 내세우는 한국당이  장성 출신들을 영입하려 하더라도  그 우선순위에서 박찬주 같은 인물은 맨 하위권에 두거나 아예 논외로 치는 게 제대로 된 정치 풍토다.

그럼에도 그를 우격다짐 식으로 영입하려 한 것은 오직 “현 정권에 의해 고통 받은 이들은 우리 편이다”는 논리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 비판을 모면하려면 최소한 재판 결과를 기다리거나 박찬주 자신의 발언에서도 일부 드러난 갑질 정도는 면밀히 따져 보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그런 도덕성을 떠나서도 박찬주는 영입 대상으로는 최하위권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삼청교육대’를 운운한 것은 박찬주가 장군이나 정치인 이전에 한 교양 있는 시민의 상식이나마  갖추고 있는지를 의심케 했다. 박찬주가 한국당에 영입돼 총선 싸움에서 그런 식의 발언을 했더라면 그건 아군 전체를  비세에 빠뜨린 엉터리 작전이 됐을 것이다.

그의 언동은 한국당의 인재 영입 수준을 넘어 한국군의 진급 메커니즘이 제대로 된 것인지도 의문을 품게 했다. 그가 군인이어서 정치판의 사정을 잘 몰라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치판 사정을 모르니 너무 순수한 군인이라고 치켜세워서는 더욱 안 된다.

군인도 장군이면 준 정치인이다. 프로이센 군대의 건설에 이론을 제시한 전설적 군사평론가 칼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칼로 하는 외교고 외교는 말로 하는 전쟁이다”고 갈파한 바 있듯이 정치와 군사는 때로 동전의 양면 같은 면이 있다. 바로 그래서 황교안도 그를 영입하려 했고 그도 맞장구를 쳤으니 그는 이미 정치인임에도 그런 망발을 한 셈이다.

그 모습을 보면 새삼 평화시대에 군인의 자질을 검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나폴레옹의 일이 떠오른다. 나폴레옹이 파리 육군사관하교를 졸업할 때 성적이 중간 정도의 평범한 군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별을 하나도 못단 채 ‘코르시카 출신의 촌놈 군인’으로 끝났지 않았을까.

아무튼 황교안이 박찬주를 영입하려고 한 것은 그의 어떤 특출한 재능을 높이 사서라기보다는 그가 문재인 정권하에서 ‘특출한 수난’을 당해서란 느낌이다. 그 수난이 정당한지 아닌지가 규명될 겨를도 없이 황교안은 박찬주가 당한 ‘봉변’이 ‘박해’라고  규정해버린 모양새였다.

문제는 황교안의 그런 박찬주 영입 시도가 비난만 받는 게 아니라 찬사도 받았다는 점이다. 박찬주의 삼청교육대 발언으로 한국당이 그를 거의 내쳐도 왜 그를 모시지 않느냐는 댓글들이 홍수를 이루었다. 그 댓글부대의 논리는 우리 정치풍토가 ‘좌냐 우냐’, 또는‘진보냐 보수냐’는 진영만 있지 진실과 담을 쌓고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런 모습은 한국당 지지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남북 대결처럼 진영대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 남북 대결도 요즘이 아니라 한 세대 전의 수준을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 어느 시골 초등학교 담벼락에 어른들의 키만 한 글씨로 “찢어 죽이자 김일성!”이라고 씌어졌던 문구가 떠오른다. 그 담벼락 앞으로 많은 ‘영웅’들과 ‘역적’들이 거니는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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