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펀스' 최수진, "첫 연극, 부담감은 없었어요"
[인터뷰] '오펀스' 최수진, "첫 연극, 부담감은 없었어요"
  • 조나단 기자
  • 승인 2019.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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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최수진이 선택한 연극 '오펀스', "워낙 좋은 작품으로 소문나 있었어"
"가족에게 하기 어려웠던 위로와 격려, 이번 작품 이후로 조금씩 하려고 노력 중"

 

 

2017년 초연돼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줬던 연극 <오펀스>가 다시 돌아왔다. 초연 당시 연출을 맡았던 김태형 연출이 다시 지휘봉을 잡아 당시의 감동을 지금 시대의 감성에 맞게 전해주고 있다. 연극 <오펀스>는 세상과 단절돼 살아온 고아 형제의 형 '트릿'과 동생 '필립'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평범이랑은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는 트릿과 필립 형제에게 어느 날 중년의 시카고 갱 '해럴드'가 끼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번 작품의 주 내용이다. 원작은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배우 겸 작가 라일 케슬러의 작품으로 198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매트릭스 시어터 컴퍼니에서 초연했다.


공연제작사 레드앤블루는 "케슬러 작가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세 인물이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외로움을 채워주며 서서히 가족이 돼 가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풀어낸다"라고 이번 작품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초연과 재연에 가장 큰 변화는 특정 역에 남녀 배우를 구분하지 않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다. 중년의 부유한 갱스터 해럴드 역은 박지일, 정경순, 김뢰하가 나눠 연기하고 있으며, 무책임한 아버지와 유년기를 보낸 형 트릿은 김도빈, 최유하, 박정복이 번갈아 맡았다. 마지막으로 트릿의 동생으로, 늘 형의 눈치를 보는 동생 필립 역에는 김바다, 최수진, 현석준이 트리플 캐스팅됐다.


본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하는 배우 최수진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녀 통해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연극 <오펀스>와 작품 속 필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해당 인터뷰에는 최수진 배우가 생각하고 있는 작품 해석과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Q. 반갑다. 본지와 첫 인터뷰인데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10년 차가 된 뮤지컬 배우입니다. 2녀 중 장녀이고, 강아지와 고양이들이랑 살고 있습니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고, 결혼을 하게 된다면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여자 배우입니다.


Q. 이번 작품, <오펀스>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A. 제 지인 때문에 초연 때 공연이 올라갔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공연을 자주 보는 친구가 있는데, 초연이 올라가는 공연을 보고는 저에게 너무 좋은 공연이 있는데 같이 보자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되지 않아서 보지 못했던 작품이었어요. 제가 공연에 대한 부분들을 잊어버릴 때쯤 저한테 제의가 왔어요. 초연도 보지 못했고 잘 알지 못했던 작품이지만 워낙 좋은 작품이라고 소문났었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했어요. 그리고 젠더 프리 캐스팅이 흥미롭기도 했고요.


Q. 최근 작품들에서 젠더 프리라고 하면 남녀 페어가 섞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남자 페어와 여자 페어로 확연하게 갈린다. 공연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느낌이 남다를 것 같은데.


A. 남다른 부분이 있기는 하죠. 제가 원 캐스트로 했던 부분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한 캐스팅이 고정돼서 해본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보통의 경우 상대 배우가 계속 바뀌니까 연습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작품을 올라가서도 호흡적인 부분에서 많은 노력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연습 과정에서부터 공연에 올라가기까지 합을 꾸준하게 맞추다 보니까 척하면 척으로 눈빛만 봐도 알아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정말로 편한 것 같아요.


Q. 다른 작품을 할 때보다 조금 더 편하거나, 집중이 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A. 아무래도 그런 부분들이 있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연습 때도 저희끼리 모여서 따로 연습했거든요. 연습실에서도 하고 선배님들 집에 가서 할 때도 있었고요. 루프탑 카페에 가서 연습을 하기도 했어요. 시간만 맞으면 주말에도 연습실에 나오거나 서로 만나서 연습하기도 했죠.


Q. 확실히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작품 이야기를 더 들어가 보자. 맡은 배역 필립은 어떤 인물인가


A. 사실 앞서 말했던 친구를 통해 들었던 필립은 '자폐아'인 친구였어요. 공연을 봤던 친구는 필립이라는 인물을 자폐아로 바라봤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바라본 필립은 전혀 달랐어요. 대본을 보고 생각했을 때 자폐아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절대 그런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바라본 필립은 미성숙한 친구일 뿐이지 어떠한 계기와 변화를 통해 성숙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굉장히 순수하고 영리한 친구였었거든요. 전 그렇게 바라봤어요.


Q. 본지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본 것 같다. 본지는 그런 부분들보다 트라우마를 마음속 깊게 가지고 있는 인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필립의 형이 그걸 계속 건드려가면서 필립을 가두는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A. 제가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연출님이 뭔가 좀 특이한 걸 많이 바라셨었어요. 연출님은 남자 페어들과 여자 페어와의 차이를 이야기해주셨어요. 등장인물인 해롤드나 트릿, 필립이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표현하는 데 있어서 차이점을 두었으면 했었나 봐요. 남자 페어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세기 때문에 오히려 귀엽게 깎아야 하는 부분들을 이야기했고, 여자 페어들은 조금 더 희한하고 더 특이하고, 더욱 강한 모습을 원하셨어요. 나중에 덜어내더라도 이런 부분들에 대한 디렉팅을 요구하셨죠. 그래서 어떤 부분들은 더욱 폭력적이고 세게 움직여야 했어요. 저한테도 말투든 뭐든 자폐아 적인 성향을 가져와도 상관이 없다고 하셨었어요.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저는 그런 부분을 배제하고 싶었거든요. 물론 다양한 책과 조사를 통해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찾아보기도 했었지만요. 그런 과정에서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게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이게 뭐냐 하면 애착관계가, 부모와 자라날 때 제대로 된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굉장히 자폐와 비슷한 성향을 띤다는 병명이었어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얘가 자폐아인가 싶을 정도로 헷갈려 해서 병원에 자주 오간다고 하더라고요.


Q. '반응성 애착장애'의 치료법도 있었나


A. '반응성 애착장애'는 앞서 부족했던 애착관계가 채워진다면, 다시 정상으로 모든 게 돌아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런 부분을 필립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들과 다 헤어지고, 그리고 어떠한 사건을 통해 더 큰 트라우마도 갖게 됐죠. 그 상황에서 필립은 자기만의 세상에 자기 자신을 가둬요. 그의 형 트릿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동생을 지키기 위해 그를 가두죠. 사실 이런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워낙 탄탄한 대본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남은 부분을 채웠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누가 공연을 보러 와서 '최수진이라는 배우가 장애인의 요소를 담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굉장히 싫어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영화는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지만 공연은 매번 살아 숨 쉬는 배우들을 보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상한 부분들을 차용하거나 가져오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Q. 필립의 형 트릿에 대한 이야기도 빠져선 안될 것 같다. 본지가 바라봤던 트릿은 필립에게 강요를 하거나 폭군이 되기도 했다가 형이자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필립은 트릿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A. 저는 사실 저희 엄마 생각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저는 굉장히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 엄마가 가정교육을 너무 잘 해주셨어요. 그런데 가정교육과는 별게로 엄마와 저와의 사이에는 시대의 흐름이 다른 부분들이 있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그런 부분들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고요. 그리고 제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나고 있다가 성인이 되고 온실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부딪히는 부분들이 생기더라고요. 필립도 그랬을 것 같았어요. 필립에게 트릿의 이야기는 정답이고 신이 하신 말과 똑같거든요. 필립은 트릿을 그렇게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행동들에 대해서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형이 때리는 것도 아파서 무서운 게 아니라, 정말 절대적인 말이라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고 무서워하는 게 있잖아요. 그런 부분인 것 같았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이게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필립이 알고 있었다면 굳이 형의 말을 믿고 집 안에만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 같아요. 필립은 트릿을 순수하게 믿었기 때문에 그를 따랐고, 그게 아니란 걸 알았지만 그를 탓하는 게 아닌 "형 그게 아니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순수함을 가진 인물이에요. 필립이 억눌려있던 삶을 살았다면 현실을 깨닫고 트릿에게 그걸 쏟아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필립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형에게 이야기해요. "나는 형을 믿었어, 나도 맞았고 형도 맞았어. 우리는 다 알고 있었어"라고요. "형이 말했던 이건 아니었어, 그래도 나는 정말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필립이 정말 착하고 순수했고, 그만큼 정말로 형을 믿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트릿이 2막에서 필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A. 사실 저는 유하 언니가 연기하고 있는 트릿만 만났잖아요. 그래서 다른 트릿들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언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처음 연습과 공연에 들어갔을 때보다 확실히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제스처를 이어가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1막에서 로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2막에선 제가 로퍼를 신고 있어요. 사실 이 뒤에서 유하 언니는 대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사소한 부분들에 대한 디테일을 늘려가고 있더라고요. 2막에서 트릿이 필립이 신고 있는 로퍼를 보고 놀란다거나 화를 낸다거나, 상황에 맞게 다른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됐어요. 그 과정에서 저를 째려보거나 화를 내는 부분들도 생겼고요. 2막 후반부에 해롤드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유하 언니가 대사마다 다 반응을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도 조금씩 사소한 부분들을 체크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극중 해롤드가 등장하면서 트릿-필립 형제에게 많은 변화가 생긴다. 바로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1막과 2막에서 보여지는 무대 배경이었던 것 같다. 필립에겐 어떤 부분들이 가장 많이 변화했을까

A. 일단 발을 잘 내딛고, 서있을 수 있다는 거요. 그리고 소파에 앉을 때도 제대로 앉지 못했고, 바닥을 많이 밟지 못해서 가구를 타고 다녔던 필립이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고, 가구를 뛰어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게 변했어요. 그리고 자세나 행동거지도 변했죠. 한 가지의 음식만 먹어야 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다양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모르는 걸 알아가는 즐거움도 생겼죠. 그래도 일단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변화는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 같아요.


Q. 1막에선 의자들을 뛰어다니는데 움직이는 데 있어서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A. 사실 힘들다는 생각을 안 하면 안 힘들어요.(웃음) "나는 저기까지 뛸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뛰면 뛰어지더라고요. 그런데 가끔 '아, 먼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 멀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공연을 하면서는 이런 생각을 안 하고 뛰어다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샹들리에를 타는 것도 생각보다 쉬웠어요. 공연을 보신 관객분들이 팔 근력이 좋으신 것 같다고들 이야기하는데 저는 정말 체력장 때도 팔굽혀펴기를 못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매달릴 수 있는 걸 보면 어려운 건 아닌 것 같아요. 아 단지, 1막에선 신발 끈이 길게 늘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뛰어다니다가 그걸 밟고 의자에서 살짝 떨어졌던 적이 있어요. 그런 문제가 아니고선 생각보다 재밌게 뛰어다니고 있습니다!(웃음)


Q. 연습하는 과정이나 공연 중 넘어지는 사고도 발생했다고 하는데,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나.


A. 일단 저는 자잘한 것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의자가 조금 밀린다거나 방금처럼 신발 끈에 걸려 떨어진다거나 그런 자잘한 실수요. 아 그것보다 해롤드 역을 맡은 경순 선생님이 의자에 묶여서 움직이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 무대에 올라갔을 때 움직이다가 완전 뒤로 넘어지셔서 다들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 침 맞고 무대에 올라오시고 하셨었죠.


Q. 그래도 공연을 할 수 있게돼 다행이다. 작품 속 해롤드의 등장 이후 트릿-필립 형제에게 격려를 해주는 부분이 눈에 띄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배우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A. 일단 전 형의 과보호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잖아요. 제가 칭찬을 받을 때면 형이 제 머리를 쓰다듬어줬죠. 그래서 해롤드의 격려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필립은. 트릿의 뭔가 뒤틀린 보호를 받고 있지만 그게 잘못될 방향일지언정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필립은 해롤드가 전해주는 격려를 받을 준비가 돼있었고 흔쾌히 받아들이죠. 그런데 트릿은 안 그래요. 그는 무언가를 해야 되고, 자기 자신과 동생인 필립을 먹여살려야 하는 입장이죠.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고, 돈을 벌어서 먹을 걸 사기 위해 쏟아내야 되는 입장이었죠. 트릿은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해롤드의 격려를 꺼려 했던 것 같아요.


Q. 평소에 누군가를 격려해준 적이 있나


A. 사실 저는 격려를 한다는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진짜 잘 못해요. 특히 "엄마 수고했어, 사랑해"이런 말은 정말 못하죠.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요즘에는 억지로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는 격려하는데 어렵지 않게 잘 할 수 있겠는데, 가족들한테는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미안한 점도 있어요. 사실 저도 선배님이나 지인들이 공연을 보러 와서 제가 잘한다거나 좋다고 이야기해줄 때 기분이 너무 좋아지거든요. 이런 한마디가 이렇게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건데 가족들한테는 왜 이런 걸 못할까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 열심히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격려를 해준다기 보다 받는 게 편안한걸까.


A. 사실 제가 연애를 할 때는 연인에게 엄청 퍼주는 편이었어요. 사랑을 주고 격려해주는 걸 기뻐하죠.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 그에게 이런 부분을 되돌려 받고 싶어서 먼저 건내주고 있나'라는 거였어요. 돌아오는 게 없었지만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Q.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빨간 하이힐과 책, 그리고 지하철 노선 등 오브젝트에 담긴 의미들이 있을까.


A. 사실 지도는 관객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소품인 것 같아요. 그리고 빨간 하이힐, 하이힐에 관련해서는 조금 다양한 의견들이 있더라고요. 필립과 트릿의 대화 때문에 더욱더 그런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빨간 하이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엄마 하이힐이야', '아니, 엄마 하이힐 아냐', '어디서 찾았어', '소파에서 찾았어'라는 대사들이 오가거든요. 제가 결론을 내리자면 이 하이힐은 필립이 트릿 몰래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는 증거였어요. 그래서 필립이 이 하이힐을 정말 소파 밑에서 찾은 것도 아니고 트릿 몰래 밖에 나가서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아니면 길 어딘가에서 정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이힐을 가지고 온 거죠. 그 부분에서 트릿은 은연중에 필립이 밖을 나가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트릿이 필립을 더욱 몰아치죠. 이게 어디서 나왔냐고 고함쳐요. 사실 이렇게 이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한 분도 없는 것 같아요. 대다수의 관객분들이 하이힐을 두고 엄마와 연관시키는 부분이 많죠. 그래서 은연중에 필립도 그걸 계속 가지고 싶어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필립에게 빨간 하이힐은 밖으로 나갔다 왔다 할 수 있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힌트들이 많이 없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해주시는 분들이 없다고 생각해요.


Q. 본지는 엄마와 많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립을 추궁하는 트릿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다가왔었는데,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어 놀랍다.


A. 맞아요. 사실 많은 모멘트들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트릿과 필립의 세상이 변했다는 거죠. 그런데 그 부분들에 있어서 하이힐은 중요하지 않거든요 사실. 그래서 연습을 할 때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오갔었어요. 누구는 이걸 명확히 해야 된다고 말했고, 누구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입장이었죠. 결국 그냥 두기로 했고 지금 공연되고 있어요. 나중에 트릿이 다시 하이힐을 발견하고 필립을 추궁하거든요. 트릿이 밖으로 던졌던 하이힐과 똑같은 하이힐을 발견했다고 필립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인데, 거기서 트릿이 은연중에 '나 네가 집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거 알아!'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죠. 사실 그런 부분들을 더욱 확실하게 살릴 수도 있지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설정한 부분인 것 같아요.

 

 


Q. 확실히 보는 사람에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엔 조금 번외 질문인데, 참치와 마요네즈가 섞인 샌드위치 실제로 먹어본 적이 있을까


A. 너무 좋아해요. 참치마요는 누구나 좋아하잖아요. 여기에 오이랑 양파까지 들어가면 정말 맛있어요. 예전에 만들어 먹어본 적도 있죠. 마요네즈가 들어간 건 사실 다 맛있는 것 같아요.(웃음)


Q. 그리고 2막에 나오는 음식이 있는데, 뭔지 궁금하다


A. 그건 하이라이스입니다. 하이라이스를 묽게 만들어서 부야베스의 느낌이 나게 한 거죠. 그런데 정말 맛이 없어요. 그 장면이 그 요리를 맛있게 먹는 연기를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맛이 없어서...


Q. 마지막 신 이후로 트릿과 필립 형제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A. 저는 이들이 헤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각자 제 갈 길을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사실 프레스콜 할 때 질문지를 조금씩 받아봤었거든요. 그 질문지 중에 필립의 10년 후 모습은 어땠을까요 라는게 있었는데, 저는 해롤드에게 받은 걸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핍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이 받지 못한 사랑의 결핍 혹은 무언가에 대한 결핍을 채워주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돈을 벌어서 고아와 불우이웃을 도우고 있지 않을까요? 해롤드는 필립과 트릿에게 천사와 같이 다가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은 그에게 받은 사랑을 베풀면서 살았을 것 같아요. 너무 착한가요? 전 해피엔딩이 좋거든요.(웃음)


Q. 유명한 동생이 있다. 작품과 연관시켜서 보자면 최수진이라는 인물은 필립 같은 스타일인가 아니면 해롤드나 트릿 같은 인물인가


A. 굉장히 복잡하네요. 딱 하나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게, 제가 동생 같은 언니이면서도 언니인 부분이 있고, 때로는 친구 같기도 하거든요. 4살 차이가 나는데 동생이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저보다 더 어른 같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또 얘는 저를 너무나 절대적으로 언니로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뭘 한 것도 없는데도 언니가 하는 이야기는 다 맞고 저를 지지해주고 제 생각들 들어줘요. 어떤 부분에선 굉장히 많이 따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조금 복합적인 것 같아요.


Q.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나 장면이 있다면?


A. 저는 2막에서 필립이 해롤드 선생님한테 하는 대사를 좋아해요. 필립이 해롤드 선생님이 건네준 지도를 보면서 "선생님, 저 이거 제가 가져도 돼요?"라고 묻거든요. 이 대사가 지금도 제일 끌어 오르는 대사에요. 그리고 선생님이 지도를 건네주고 필립에게 "너는 절대 길을 잃지 않을 거야. 내가 표시해줄게"라고 말하는 게 정말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고 대사에요. 필립은 정말 용기를 내고, 선생님이 안돼라고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품고 정말 고심하고 고심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순간에 정말 많은 감정들이 오가요. 사실 필립 자체에게 있어서 그들 형제의 집은 정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거든요. 형이 항상 마요네즈를 사 오고 장난감도 많았고, 모든 게 그들 형제의 세상이었잖아요. 그런데 그것들 중에 정말 필립이 원해서 가지게 된 건 없었어요. 그래서 필립이 이 모든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까지를 하게 되는 용기에 사무치는 뭔가가 있어요. 사실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대사거든요. 그런데 저한테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정말 뭉클한 대사입니다.

Q. 마지막으로 아직 공연을 관람하지 못한 관객분들에게 우리 공연을 소개해보자면?

A. 지금 홍보가 되기로는 격려와 힐링이 먼저 나오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격려가 되고 힐링이 되는 작품은 아닐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분명히 느낄수 있는 부분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냥 마음을 비우시고 공연을 보러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어떤 공연이고 어떤 내용이니까, 우리 공연을 보고 이걸 느끼고 가세요. 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냥 공연을 보러 오시면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경험만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게 긍정적인 부분이면 좋겠어요. 저도 사실 처음 대본을 읽었을때, "어? 끝이야?라고 몇 분을 가만히 있다가 막 울었거든요. 우리 공연을 보시면서, 혹은 보고나서 집에 가시는 길에서 다시 되돌려보시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만드는 공연이니까요. 꼭 와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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