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칼럼]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 성공한 적이 없다
[이원두 경제칼럼]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 성공한 적이 없다
  • 이원두 고문
  • 승인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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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장관이 거의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던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결국 한걸음 물러섰다. 물러 선 것이 아니라 물러 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번 국토부의 강경한 입장이 꺾인 것은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남겨 준 교훈을 가볍게 봤거나 아예 무시한 데 원인이 있다. 역대 정부가 전개한 부동산 정책은 공교롭게도 전정권이 규제를 강화한 경우 그 뒤 정권은 그 후유증을 수습한 이른바 규제와 완화의 반복 순환이라는 특징을 보여 왔다. 80년대 후반 노태우 정권은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로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동시에 투기를 잡기 위해 토지 공개념 3법을 통한 규제도 강화했다. 김영삼 정부 5년간(1993~1997)은 주택공급 확대와 규제완화를 통해 보기 드문 부동산 안정기를 이루었으나 정권말기 외환위기라는 사상  유례없는 국가부도사태를 유발, 수습을 다음 정부로 넘겼다. 이를 물려받은 김대중 정권 5년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집중적인 경기부양 덕분에 부동산 규제도 상당부분 완화되었다. 이로 인한 투기열풍은 노무현 정부로 넘어가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비롯한 각종 강력한 규제가 총 동원되었으나 투기를 잡는 데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역대 정부가 규제와 완화를 순환적으로 전개 해 온 것은 경제정책, 그 가운데서도 부동산 정책의 어려움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시장과 가격을 안정시키는 핵심은 수요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다. 경제정책의 핵심 역시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부동산의 경우는 공급이 부족하다고 해서 대량생산을 통해 단시간에 공급을 늘일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수요 공급과 가격 움직임을 비롯한 시장동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된다. 역대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한 이유다. 다시 말하면 부동산 정책은 그 기반이 되는 시장 상태를 명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책 효과 또한 당초 기대에서 크게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현미 구토부가 재정기획부를 비롯한 다른 경제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강행함으로써 기존 아파트 값에 불을 지른 것 역시 시장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자연과학이든 인문과학이든 유효한 연구의 출발점은 합리적인 가설이다. 정책 입안의 경우 이 가설은 시뮬레이션으로 바꿔 부를 수 있다. 정책을 입안 할 때 그 정책이 불러 올 긍정적 효과와 함께 부정적 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사전에 면밀히, 시뮬레이션을 통해 점검해야 한다. 문제는 주택시장의 경우 표본조사부터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정책당국이 장담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바로 표본조사 자료와 사전검토가 그만큼 부실했다는 뜻밖에 안 된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고 일컬을 때의 ‘경제’는 바로 ‘시장’을 의미한다. 살아 움직이는 시장을 허술한 사전 점검에 바탕을 둔 탁상공론으로 규제 하려 들 때 그 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다. 경제에서 시장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로 레닌의 일화가 자주 입에 오른다.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레닌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장원리의 일부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실행에 옮기기 전에 사망함으로써 그 이후 70년간 소련 경제는 시장과 담을 쌓고 버티다가 결국 체제 붕괴로 막을 내렸다. 중국 역시 등소평의 개방과 개혁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제적 성공 또한 기대할 수 없는 꿈이었을 것이다.

시장을 등지고 성공한 경제정책은 없다. 정치체제가 어떻든 간에 경제는 시장 친화적이라야 경쟁력이 생기고 성장의 탄력을 확보할 수 있다. 역대 정권이 부동산 시장을 잡는다고 규제와 완화를 반복한 것이 가장 실감나는 증거가 될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를 대표되는 김현미 국토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말해서 정부가 만간제품의 가격을 통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가격 보증을 통해 평당 단가를 규제하고 있는 현실에서 상한제까지 실시한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주택건설 자체가 얼어붙을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HUG의 ‘보증가격’도 시세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차액을 노린 투기가 확산되고 있음을 국토부만 모른다면 이야 말로 요즘 유행하는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연기를 계기로 보다 합리적으로 시장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일시적인 미봉책으로는 결코 부동산 시장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역대 정부의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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