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등포 1-12구역 재개발조합 ‘수상한 입찰’ 논란
[단독] 영등포 1-12구역 재개발조합 ‘수상한 입찰’ 논란
  • 한원석 기자
  • 승인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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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누리장터 입찰가와 설계자 선정 안건 입찰가 달라
B건축사무소 “조합, 입찰 하루 전 PT자료 요구” 주장... 조합 “이틀 전 구두로 요청” 반박
“분양세대수 많을수록 조합원 부담이 줄어들어”... 조합 “제일 넓은 분양면적 세대 많은안 선택”

서울시내 한 재개발 사업에서 수상한 입찰 계약이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쟁입찰 과정에서 조합측이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달 6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영등포 1-12 재정비촉진구역’ 재개발정비사업을 위한 조합 창립총회가 개최됐다. 이 사업은 지난 2005년 12월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따라 구역지정이 이뤄졌지만 진통 끝에 10여년 만에 조합이 설립된 것이다. 이날 제1호 안건인 ‘설계자 선정 및 계약체결 위임의 건’을 두고 일부 조합원들과 선정에서 탈락한 건축사무소 측이 반발하고 있다.

영등포 1-12 재정비촉진구역 건축배치도. (자료=영등포구청)
영등포 1-12 재정비촉진구역 건축배치도. (자료=영등포구청)

 

조합 재량 용역에 뒤바뀐 입찰액
조합에서 배부한 책자에 따르면, 설계 용역 입찰 금액은 A건축사무소가 33억468만원, B건축사무소가 34억7189만원이었다. 약 1억 6천여만원의 차이로 A건축사무소가 저렴해 더 유리하다.

하지만 같은 책자 바로 뒷장에 실린 세부 내역을 보면 이와 다르다. 서울시 누리장터에 투찰한 금액은 A건축사무소가 23억 5968만원으로 22억 7689만원을 써낸 B건축사무소보다 약 8300만원이 더 많았다. 한 조합원은 “앞에 눈에 잘 띄게 나온 노란색 종이에 써진 총액만 봤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원인은 세부 용역업무에 있었다. 설계자 용역업무의 범위는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누리장터에 입찰하는 금액에는 필수 용역업무 두 가지만 들어가기 때문이다.

용역업무 ①은 설계도 작성 그 자체와 관련된 사항, 용역업무 ②는 문화재지표조사나 석면예비조사, 소방설계업무 등 설계와 밀접한 사항이다. 용역업무 ③은 교통영향분석이나 환경영향평가 등 수행 여부가 조합 재량에 맡겨진 사항이다.

서울시 누리장터에서는 필수 수행 업무인 용역업무 ①과 ②에 지출되는 입찰 금액만 받기 때문에 이런 ‘입찰가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B건축사무소 측은 “이런 ‘눈가리고 아옹’식의 표시가 입찰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조합 관계자는 “설명회를 할 때 용역업무 ③이 비싸면 우리가 할 수도 있다고 조합원들에 동의를 구했다. 가정치를 낸 것”이라고 밝혔다.

입찰총액이 각각 A건축사무소 33억원, B건축사무소 34억7천여만원으로 인쇄된 앞부분(왼쪽)과 A건축사무소 23억 6천여만원, B건축사무소 22억 8천여만원으로 인쇄된 세부내역(오른쪽). (사진=영등포1-12재개발정비사업 자료)
입찰총액이 각각 A건축사무소 33억원, B건축사무소 34억7천여만원으로 인쇄된 앞부분(왼쪽)과 A건축사무소 23억 6천여만원, B건축사무소 22억 8천여만원으로 인쇄된 세부내역(오른쪽). (사진=영등포1-12재개발정비사업 자료)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용역업무 합치는 것은 조합 임의대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용역업무 ③까지 묶어서 입찰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울어진 운동장 의혹
B건축사무소 관계자는 또 다른 의혹도 제기한다. 창립총회 하루 전인 5일, 조합측은 갑자기 B건축사무소에 PT(프리젠테이션)를 요구했다. 시간이 촉박해 B건축사무소 측은 부랴부랴 원래 가지고 있던 판넬로 PT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입찰 당일 A건축사무소 PT 동영상을 준비해 조합원들에게 선보였다. B건축사무소 관계자는 “A사무소가 하루 만에 동영상을 제작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원래 현상설계는 이런 과정이 없는데 의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조합측은 “PT 시행을 두고 ‘당연히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나와, 두 회사 똑같이 서류로는 하루 전, 구두로는 이틀 전에 PT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A건축사무소에서 제안한 설계안보다 B건축사무소의 설계안이 더 조합원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제안설계안을 비교하면 A건축사무소의 세대수는 총 719세대(임대 110세대 포함), B건축사사무소의 세대수는 802세대(임대 139세대 포함)이었다. 재건축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분양세대수가 많을수록 조합원들의 부담이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설계에서 1억 6천여만원을 조합이 더 부담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B건축사무소의 설계안이 총 금액으로 보면 조합원에 더 이득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립총회 당일 이를 지적한 한 조합원에게 조합 관계자는 “설계는 차후에 변경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설계 변경시 관할 지자체에 다시 변경안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설계에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완공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지적에 대해 조합 관계자는 “A건축사무소 설계안은 제일 넓은 분양 면적인 84㎡가 289세대, B건축사무소는 244세대여서 조합원들이 A안을 더 선호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설계 변경에 대해서는 “현재 사업구역에 영등포 1-14구역이 빠졌다. 1-14구역은 동의율이 68%에 달해 바뀔 수 있는 가설계”라고 했다.

이에 대해 B사무소 측은 “84㎡를 제외하고 다른 면적에선 우리 설계안의 분양 세대수가 훨씬 많다. 영등포 시장과 연계해 지하 판매시설을 활성화하는 취지에서 판매시설 분양면적도 우리 안이 더 넓다”고 반박했다. 이어 “나중에 바뀔 것을 가정해서 입찰을 하는 것은 현상설계가 아니다”며 “(조합측 주장대로 1-14구역이 포함될 경우) 다시 설계를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달 16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정비사업 조합운영 실태점검’에 착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113조에 따라 공무원 및 전문가로 점검반을 구성해 현장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주요 점검 내용으로는 ▲정비사업비 범위 내 용역계약 체결 여부 ▲용역업체 선정시 입찰지침서 준수 여부 ▲홍보설명회 개최 및 총회관련자료 적정성 여부 ▲입찰제안서 따른 계약의 적정성 여부 ▲정비사업비 항목 적정 여부 등이다.

국토부는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개포시영 등 7구역을 점검해 124건, 반포주공 1단지 외 5구역에서 76건, 대치쌍용 외 4구역 107건의 부적정사례를 각각 적발했다. 이 가운데 각각 6건, 13건, 16건이 수사의뢰 등 조치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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