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평 시사논평] 혁명과 개혁만으로는 씻기지 않는 부패의 묵은 때
[양문평 시사논평] 혁명과 개혁만으로는 씻기지 않는 부패의 묵은 때
  • 양문평 고문
  • 승인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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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인 조국은 물론이고 장검과 면도날을 움켜쥔 채 그에게 망원경과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는 윤석렬도, 그리고 이들의 상좌에 앉아 있는 문재인도…

물론 황교안도 빡빡머리를 아무리 굴려 봤자 뚜렷한 그림을 얻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이 글은 그런 어려운 문제에 겁 없이 아는 체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조국 사태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우선 그 입을 다물고 역사를 통해 그 비슷한 사례들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그보다 몇 배나 심한 일도 많이 일어났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촛불혁명’이 아니라 ‘총칼혁명’이나 “대포나 폭격기를 무릅쓴 혁명‘을 거쳐도 부패는 다시 잡초처럼 번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개혁이나 혁명이 바닷가에 밀려온 폐선 조각 같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라면 한 민족의 부패 풍토는 그 바닷가 갯바위에 수십 년 간 붙어있는 굴 껍질이나 이끼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은 짧고 부패는 길다”는 짝퉁 명언이 나와도 비웃을 수는 없다. 그 좋은 예가 1927년부터 1949년까지 22년에 걸쳐 장제스(蔣介石)와 마오쩌둥(毛澤東) 군이 벌인 ‘국공내전’이자 ‘중국 해방 혁명’이다. 세계적으로 좌파건 우파건 그 혁명의 웅장함과 비장함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중국이기에 오늘날 중국에는 부패가 없을까? 물론 그것은 너무 썰렁한 질문이다.

오늘날 ‘중국’이라면 ‘대국’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부패’나 ‘부조리’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대국’으로도 불렀던 청나라의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20세기 내내 중국 대륙을 뒤흔들었던 그 총포 소리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하는 의문이 솟는다. 오늘날 중국의 부패가 19세기의 부패, 다시 말해 청나라 시대의 부패보다 더 비극적으로 보이는 것은  부패와의 싸움이기도 했던 그 해방전쟁의 영웅들이 이제는 ‘적군’ 편에 있는 듯 한 점이다.

그것은 해방투쟁 영웅들의 후손들이 이제는 ‘태자당’이라는 기득권층의 상좌에 앉아 있어서다. 마오쩌둥 탄생 119주년을 맞았던 2012년 블룸버그 통신은 8대 혁명 원로의 2세와 3세 및 그들의 배우자 103명이 중국의 부를 독점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 원로들도 이를 비관했다는 소식들이 난무했다.

바로 그 8대 혁명원로 가운데 하나인 왕전(王震) 전 부주석은 1990년 자본가로 변모한 아들 왕쥔(王軍)을 두고 “난 그 애를 내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라고 병석에서 넋두리를 하기도 했다. 왕쥔은 기업가로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지만 중국 골프의 대부로도 행세했다. 해방전쟁의 영웅과 골프광 아들-. 그것은 어딘지 중국 혁명 영웅들과 그 자녀들(태자당)의 모습을 압축한 그림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 홍군의 대장정을 다룬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홍군의 대장정 중에 한 국민당 군(장제스 군) 병사가 포로로 잡혔다. 홍군이 그 포로를 심문하려 해도 아편중독자인 그 포로는 아편을 오래 동안 피지 못한 금단현상으로 아무 말도 못하는 상태였다. 이에 주더(朱德)와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홍군의 수뇌들이 적군에게서 탈취한 아편을 주라고 지시한다. 포로는 그 아편을 서둘러 받아서 피우자마자 황홀경에 빠진 듯 되살아났고 저우언라이 등은 그 모습을 부처가 중생을 내려다보듯 지켜보았다.

그 장면은 홍군의 위대함과 국민당군의 한심함을 압축한 그림이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중국에서는 아편재배가 성행했고 그 배후에는 군벌들이 있었으며 그 군벌들이 대부분 국민당 군에 합류한 바람에 장제스 군에는 아편환자가 많았다. 따라서 홍군이 통일을 완성한 1949년은 중국이 수백 년 만에 “아편중독자 0명”을 선언한 해이기도 했다. 발표는 없었으나 “부패 관료 0명”도 선언된 셈이다.

하지만 그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개방과 더불어 중국은 아편만이 아니라 히로뽕 등 새 마약들이 밀려와 ‘21세기의 마약 전쟁’에서도 승산이 없다. 그러는 동안 부처 같기도 했고 초인 같기도 하던 혁명 원로들의 후광은 사라지고 그들의 낯익은 성을 딴 거부 권력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등장했다. 그런 현상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중국의 삼황오제 등 건국신화 시대부터 부패는 갯바위에 붙어 자란 굴 껍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해 왔고 그 전통들이 혁명이라는 ‘동면기간’이 끝나자 상호교배를 통해 무한정 번식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중국은 만리장성이나 진시황릉이 보여준 찬란한 문화의 그늘에서 또한 찬란한 부패의 문화도 성숙해왔다.

뇌물이 없는 나라야 없으나 황금으로 장기판과 장기 알을 만들어 선물하는 수준은 또 다른 차원의 ‘문화수준’이자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상 최고 명군으로 꼽히는 강희제(康熙帝)나 중국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구축해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룩한 건륭제(乾隆帝)시대에도 저변에는 끔찍한 부패가 만연했다. 어찌 보면 강희제와 건륭제는 그런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외치에 힘을 써서 그런 업적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사회 밑바닥의 실태에 관심이 깊어 ‘개혁’의 칼을 들이댔다면 성공하기도 힘들고 자칫 반동의 칼을 맞았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의 황제가 사회의 부패와 싸우는 것은 티베트족이나 위글족과 싸워 그들의 영토를 빼앗기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중국의 그 현상은  부패(腐敗)의 부(腐)자가 말해주기도 한다. 그 글자는 관청을 뜻하는 ‘부(府)’자 밑에 고기 ‘육(肉)’자로 합성돼 지난날 관리들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관행을 보여준다.

혁명이 일어나도 그 문자는 고쳐지지 않듯  나라살림도 결국은 관료들에게 맡겨야 하고 그들은 고기를 좋아한다. 다만 그 글자가 너무 낡은 시대의 현상을 반영한 것이어서 현대화해야 한다는 농담은  있다.

지난날에는 고기가 대단해서 관리들에게 뇌물로 주기에 알맞았으나 요즘 중국 관리들은 고기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여자나 금은보석을 좋아하니 府자 밑에 ‘女’나 ‘金’자를 합성시키는 게 현실적이라는 징그러운 우스개가 그런 것이다.

그것이 어찌 중국만의 경우일까.

중국보다 더 본격적인 계급 혁명을 거친 러시아도 그랬다. 제정러시아의 비정함을 상징하는 시베리아 유형소가 소련시대에서도 남아 있듯이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힌 사회악은 그대로였다.
나아가 블라디미르 푸틴의 재산이 224조원으로 세계1위 부자로 통하는 빌 게이츠를 능가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크레믈린의 주인이 호칭만 ‘차르’에서 ‘대통령’으로 바뀐 것 같다. 모두들 저주하는 그 부패의 풍토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사회구성원 대부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기심을 영양으로 해서 자라난 것이다.

물론 한국인도 포함된 풍경이다.

정치가 깨끗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한국인은 드무나 자기네 지역구 국회의원과 만나  면 식사를 대접받고 싶고 그것도 되도록 이면 고급스럽기 바란다. 그런 심기는 당사자가 ‘촛불혁명’에 참가 했는가 여부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다만 그 유권자가 의원에게 개인적인 민원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풍경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사법부가 공정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도 없다. 그러나 자신의 동창인 어느 검사가 폭력사건에 걸린 자신의 아들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그 검사와는 절교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석이라 할 수 있다.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조선조 시대부터 이어져온 병역기피의 전통을 보면 한국인들은 위험에 빠진 애인(국가)를 위해 피를 흘리는 데는 무관심해 왔다. 그런 무관심 덕에 석연찮은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이들이 대통령이 되고 또 희한한 피부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이가 대통령 자리를 노릴 수 있는 관대하기도 하고  넋이 없기도 한 사회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4·19혁명과 6·29를 거쳤으나 그 전통은 흔들림 없다. 한마디로 정의는 인간들이 어렵게 배워야 하나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가르침’은 조물주가 입력시킨 것이기에 훨씬 위력적이고 영구한 생명력이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우선 국민들이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는 훈련부터 해야 하나 그것은 너무 쉽고도 너무 어렵다.
그것은 기독교의 십계명 같기도 하다.

 ‘거짓말 하지 말라’나 ‘도둑질하지 말라’는 등의 말처럼 알아듣기 쉬운 말도 없으나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이들을 보면 경외감에 앞서 두려움이나 경멸을 느끼는 이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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