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비평] 통계의 증언… ‘경제정책, 시야 좁고 엇박자’
[이원두 경제비평] 통계의 증언… ‘경제정책, 시야 좁고 엇박자’
  • 이원두 고문
  • 승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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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소비‧ 수출’은 우리 경제의 3대 성장엔진이다. 이들이 제구실을 못하면 ‘저성장의 고착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19일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 성장률을 전망치(2.4%)보다 0.3%포인트 낮춘 2.1%로 제시한 배경이다, 작년 11월의 전망치가 2.8%였던 것에 비추어 볼 때 불과 10개월 만에 무려 0.7%포인트나 낮추어 잡은 것이다.

미‧중 무역마찰, 일본의 수출규제 등 예상하지 못한 악재가 돌출했다 하더라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연이어 낮추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일부에서 예측한 1%대 성장이 아니라 2.1%를 제시한 것만은 고무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IMF, OECD등 국내외 주요기관이 한국 성장률 정망치를 이처럼 짜게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뜻 밖에도 ‘등잔 밑에 웅크리고 있었음’을 최근 통계 당국이 밝혀냈다.

민관 경제전문가로 구성된 통계청 국가 통계위원회는 경기기준 순환일(경기 정점)을 2017년 9월이라고 발표했다. 국가 통계위는 수년 단위로 각종 경제지표를 분석하여 경기정점과 경기저점을 정한다. 경기 정점이 2017년 9월이면 그 이후로는 하강국면에 접어든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경기전환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다. 법인세 인상과 함께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시동을 건 시점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무 등 소주성의 핵심은 한마디로 친 노동 정책이라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반면, 기업에 대해서는 이른바 공정성을 앞세워 각종 규제와 반 기업정서 확산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이어졌다. 오죽했으면 대표적인, 그리고 법정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이 ‘우리경제는 버려진 자식 같다’며 공개적으로 탄식을 쏟아냈을까? 줄기차게 주장해 온 각종 규제개혁은 정부나 국회가 ‘립 서비스’로 시종하고 있으며 심지어 규제개혁의 시험대로 마련한 ‘규제 샌드 박스’조차 새로운 규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주 52시간 근무로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특정 업종과 분야에 대한 예외 조치조차 아직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인세를 올린 배경이 경제외적인 데 있다는 점까지 감안할 때 과연 정부는 경제 성장력 확보에 얼마나 합리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잘 나가고 있는’ 인도가 최근 경기 자극 효과를 노리고 2백 5억 달러 규모의 법인세 감면을 단행한 것과는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지금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 평화)시대에서 지정학 리세션(recession)시대로 빠르게 이행되고 있다. 이른바 자국 우선을 앞세운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가 활개를 치는 이유다.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하여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중동 사태, 중국이 남태평양 도서국가와의 수교확산 등등 ‘20년 만에 처음 겪는 지정학 리스크’라는 대기업 회장의 진단이 엄살이 아니며 그가 이런 상황이 앞으로 30년은 이어질 것이라는 것 역시 냉철한 판단이라고 봐야 한다. 과연 우리 정책 당국은 이러한 변화에 적절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거나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그 대답은 일단 부정적이다. 국내적으로 경기가 정점을 찍고 하강국면을 맞았는데도 오히려 낯이 선 소득주도 성장정책과 법인세 인상을 통해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은 것이 정부다. 그러면서도 ‘경제는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인식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매출 1천억 원 이상의 대기업까지 인건비를 포함한 판매관리비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와 올 상반기의 영업이익률이 6.2%(2018년 7.8%)로 낮아졌다. 우리 잠재성장률은 20년 만에 절반 수준(2%대)로 떨어졌다. 출생률은 이미 1을 밑돌고 있어 장기적으로 노동인구의 감소도 피할 길이 없다. 여기에 세계적인 전환점인 지정학적 리세션 대비도 결코 가벼운 과제가 아니다. 이 모든 것에 효율적으로 대비하려면 우선 현실진단부터 냉철하고 정확해야 한다. 재정으로 생산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노인 일자리 확대에 만족한다면 L자형 장기 침체를 넘어 수출경쟁력까지 매몰당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우선 소주성에 대한 기대와 실험을 접고 지정학 리스크 대책을 포함한 현실적인, 그리고 보다 시야를 넓힌 정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통계가 고발한 ‘경제정책의 잘못’을 씻는 도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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