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32화-제품에 스토리 입히기
[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32화-제품에 스토리 입히기
  • 이상우
  • 승인 2019.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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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숙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세속화 되었다고나 할까. 생활에 찌들어 깡마른 악만 남은 사람 같았다.
양현숙은 그 후 꼭 일주일 동안 박운혁의 임시거처에서 생활 했다. 그러나 딱 일주일 되던 날 자고 나니까 현숙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박운혁은 백방으로 찾아 나섰으나 또 다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편지 한 장도 없었어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조민지가 물었다.
“나는 아직도 양현숙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나 아무래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왜요?”
“내가 송지호에서 새들과 지내고 있던 시절에 짝 잃은 학 한 마리를 보았는데, 그 학이 양숙현이라고 나는 생각했어. 다른 새 보다 특별히 처량해 보였어, 어쩌다 짝을 잃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독신으로 살기를 결심한 새 같았어, 나는 그 학을 현이라고 불렀어, 현숙의 이름 첫 자를 딴 것이지. 현아! 현아! 하고 부르면 나한테로 왔어, 내가 다른 새를 불러 모을 때도 현이는 멀리 떨어져서나마 나를 지켜보고 있었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조민지는 백 회장이 정말 첫 사랑을 잊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사람이라고 느꼈다.
백 회장이 이끌고 있는 강원 그룹은 전국 재벌 그룹 랭킹 100위 이내에 들어가는 큰 기업이지만 문어발식의 다른 재벌과는 전혀 달랐다.
우선 강원 그룹이 거느린 모든 업체는 자연을 거슬리는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합성 소재를 사용한 제품은 하나도 없다.
순수하게 목재만을 사용하는 가구회사, 천일염 소금과 버섯, 천연 향료를 사용하는 조미료 회사, 자연 섬유로만 만든 패션 의류.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업’이라는 사훈이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회장님, 저도 요즘 우리 회사를 위해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는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송지호 철새 관찰을 끝태고 돌아오는 길에 차 속에서 조민지가 마음에 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음~ 우리 민지가 새로운 사업 구상을 하고 있단 말이지. 무엇이든 말해 보아 내가 도와 줄 테니. 민지가 누군데?”
조민지는 평소에 생각하던 골프채 이야기를 꺼냈다.
“골프채는 무엇으로 만들어요?”
“골프? 민지가 골프를 배우나? 그거 괜찮은 취미야. 사냥이나 낚시는 생명을 앗아가는 취미생활이지만 골프는 자연을 다치게 하지 않거든.”
“골프채는 무엇으로 만드냐니까요?”
조민지의 말이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졌다.
“그건 합성 소재를 보통 쓰는데, 탄력성이 강한 카본 같은 소재로 만들지.”
“그건 샤프트, 즉 대를 말하잖아요. 샤프트가 아니고 헤드의 경우는 어때요?”
“응, 그건 보통 메탈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합성 소재야. 샤프트와 마찬가지로 탄력을 요구하지.”
“제 아이디어는요....”
백 회장이 그윽한 눈으로 조민지를 돌아보았다. 백 회장은 아주 천천히 안전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제 아이디어는 회장님의 철학에서 배운 것인데요. 골프채를 나무로 만들면 어떨까 해서요. 우리 회사가 요새 레저 산업에 투자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로...”
“굿 아이디어. 골프채가 처음 나왔을 때는 나무로 만들었지. 샤프트는 물푸레나무로, 헤드는 박달나무나 감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었지.”
“자연을 그대로 활용하니 좋지 않아요?”
“하지만 성능이 문제지. 합성 소재의 샤프트나 메탈은 공을 엄청나게 멀리 보내지만 나무로 만든 것은 성능이 훨씬 떨어지거든.”
“그러니까 샤프트는 그냥 기존 제품을 쓰고 헤드는 나무로 만들면 어떨까요?”
“2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감나무로 헤드를 만들어 수출한 기록이 있어. 일본의 다이와나 독일의 미첼 같은 큰 레저용품 회사에서 우리 헤드로 완제품을 만든 일이 있지. 그러나 성능이 메탈을 따라 갈 수 없어 사라졌단다.”
“꼭 성능만 보고 골프채를 사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기념품으로 만든다든지, 희소 가치를 살려서 헤드에 조각을 한다든지... 뭐 그런 특수한 가공을 할 경우, 다시 말씀드려 제품에 스토리를 입힌다는 뜻입니다.”
“음, 아주 기발한 생각이야. 그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시키면 물건이 되겠는데...”
백 회장은 차를 갑자기 세우더니 두 손바닥을 펴서 내밀었다. 조민지는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차리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하이, 파이브.”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백회장과 함께 송지호를 다녀오면서 조민지는 자연을 이용한 레저용품 개발이라는 명제를 굳혔다.
나무로 골프 헤드를 만들어 세계 명품 시장에 내 놓는다는 꿈을 다듬기 시작했다.
조민지는 우선 소재 공학의 전문가인 성혜린 박사를 찾아갔다.
연구소에 다다라 노크를 했다. 응답이 없었다. 기다리다가 다시 노크를 했으나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조민지는 문을 열어 보았다. 문이 쉽게 열렸다.
“박사님 계세요?”
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여자의 신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조민지는 호기심에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는 가리개가 있어서 앞쪽이 바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의 신음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혹시 섹스를 하고 있나?’
조민지는 성혜린의 취미생활을 잘 아는지라 이 생각이 얼른 머리를 스쳤다. 수석 연구원인 번개 영진과는 섹스 파트너가 아닌가.
그런데 신음 소리가 여자 두 사람의 음성으로 들렸다. 남자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남녀가 사무실에서 대낮 정사를 벌이는 일은 가끔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자 목소리만 들리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조민지가 가리개 뒤로 고개를 드밀었다.
-아니!
조민지가 놀란 것은 여자 둘이 벌거벗은 채 엉겨서 서로의 거시기를 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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