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비평] ‘반도체’ 잘 못 건드린 아베…한일의 딜레마
[이원두 경제비평] ‘반도체’ 잘 못 건드린 아베…한일의 딜레마
  • 이원두 고문
  • 승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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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의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조치(7월1일) 34일 만에, 그리고  한국을 그룹 A(백색국가)에서 B로 한 단계 강등 시킨 직후 포토레지스트(감광제) 수출 허가를 내 주었다. 불화수소(에칭 가스)와 불화 폴리이미드(플렉시블 OLED 패널 핵심소재) 등 두 품목에 대한 움직임은 아직 없다. 그러나 당초 수출허가까지 90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던 것이 30일 만에 허가가 떨어진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칼자루는 여전히 일본 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에 언제 어떤 형식으로 다시 폭발할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오는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메시지가 하나의 분수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번 대한 수출규제 조치는 일본정부가 어떤 논리를 앞세우든 간에 결과적으로 경솔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장 뒤집을 수도, 그렇다고 계속 강행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당초에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가 ‘안보론’으로 대체했다. 한국으로 수출한 물량의 상당부분이 제3국(중국)으로 재수출된 정황이 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중국으로 재수출된 물량은 같은 그룹의 중국공장에 공급된 것으로 밝혀지자 이번엔 한국의 수출관리의 안일성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일본 국내 여론 은 이번 조치가 ‘한국에 대한 보복’으로 결론을 내림에 따라 아베 일본을 적잖게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반일감정 확산과 불매운동의 장기화도 아베에게는 감점 요인으로 작용, 이번 조치가 경솔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술대국 일본’은 80년대 자동차 대미 무한 수출과 잠수함 스크류 가공용 정밀공작기계를 소련에 우회 수출함으로써 대 공산권 수출 통제위원회(COCOM)규약을 위반,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당시 일본 외상이 현 아베 신조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였다는 사실이 이번 대한 수출규제조치에 묘한 여운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지금은 80년대와 다르고 반도체는 자동차나 공작기계와 성격이 전혀  다른, 대안이 없는 아이템이다. 각국이 4차 산업혁명에 국운을 걸고 있는 지금 기본 요소가 되는 반도체 수급을 특정국이 정치적으로 조절하려 든다면 세계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D램 수요의 75%(삼성전자는 45.7%)를 감당하고 있는 기업은 특정국 정부가 마음대로 흔들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정부가 마음대로 흔들지 못한다면 한국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정치권력이 마음대로 부릴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베가 반도체를 노린 것은 한국 경제의 목을 죄는 효과는 높지만 일본 국내 관련 기업과 세계 반도체 수요국의 반발을 불러 온 후유증에 직면한 이유다.

한국정부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요란하게 목소리는 높였으나 실속이 없는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만 계속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정부가 기업을 불러 모아 간담회를 여는 등 부산을 떠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1년만 참자’는 등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소재 부품 기술 개발은 관계 기업과 전문가가 은밀하게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다. 온 천하를 향해 떠들면서 기술개발을 하는 기업이나 나라를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이 점에 관한 한 정책당국은 깊이 반성할 대목이다.

이와 연관하여 이번에 카이스트 총장이 앞장을 선 ‘선택과 집중’을 통한 과학 장인 육성 시스템을 새로 짜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기술개발과 시장개척, 신상품 개발은 기업과 전문가에 맡기고 정부는 그 뒷바라지에 전력투구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 우리는 5년마다 경제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집히기나 바뀌어버린다. 그런 체제로는 글로벌 경쟁은 말할 것도 없고 4차 산업 혁명조차 큰 기대를 할 수 없다. 현재 아베가 맞고 있는 딜레마는 바로 우리의 딜레마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톱클래스 글로벌 기업을 보유한 국가답게 산업. 기술, 통상 정책의 유효기간과 격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감정적인 보복의 악순환에는 영원히 승자가 없는 패자의 싸움이라는 점도 대일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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