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주도할 일 아냐” 누리꾼, 靑 청원게시판 등서 비판... 日 언론 취재 시점 의혹도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이 6일 서울시청과 명동, 청계천 일대에 내 건 일본 제품 불매와 일본 여행 거부의 뜻을 담은 ‘노 재팬’ 깃발을 내리기로 했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설치를 철회한 것이다.
서 구청장은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배너기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일본정부의 경제보복에 국민과 함께 대응한다는 취지였는데 뜻하지 않게 심려를 끼처드려 죄송하다”며 “중구청의 노 재팬 배너기가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동일시해 일본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불매운동을 국민의 자발적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구청장으로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로 함께 하겠다”며 “일본정부의 부당한 조치를 향한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가 다시 하나로 모여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유 불문하고 설치된 배너기는 즉시 내리겠다. 다시 한 번 염려하신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관제운동 안돼’ 반발한 누리꾼
앞서 지난 5일 서울 중구청은 일본 불매운동을 상징하는 ‘노 재팬(NO Japan)’ 배너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뒤 누리꾼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됐다. 관이 개입할 경우 ‘관제 반일 운동’ 논란을 일으켜 일본에게 빌미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의 불매운동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서울 중구는 오는 15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와 함께 일본제품 불매와 일본여행 거부를 뜻하는 ‘노(보이콧) 재팬-No(Boycott) Japan :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배너기 1100개를 퇴계로, 을지로, 태평로 등 관내 22개 대로 가로등에 내거는 사업을 계획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5일 밝힌 바 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당시 이 사업의 배경을 “중구는 서울의 중심이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가는 지역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함과 함께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시민들의 여론은 차가웠다. 중구청 홈페이지에는 ‘노 재팬(No Japan) 배너 달기 사업을 중단하라’는 의견이 빗발쳤다. 중구청 민원게시판인 ‘구청장에게 바란다’에는 6일 오후 2시 기준 270여개의 반대글이 올라왔다.
반대글을 올린 시민들은 “시민들이 하는 일에 숟가락 얹지 말라”, “국민이 알아서 할테니 정부는 정공으로 가라”, “왜 일본한테 빌미를 주냐”, “일본인 관광객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등의 의견을 올리며 적극적으로 중구청을 비판했다.
누리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이날 올라온 ‘서울 한복판에 NO Japan 깃발을 설치하는 것을 중단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에는 올라온 지 하루도 안된 이날 오후 2시 현재 1만5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불매운동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서울 중심에 저런 깃발이 걸리면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모두 불쾌해 할 것이고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불매운동을 정부가 조장하고 있다는 그림이 생길 것이며, 이는 향후 정부의 국제 여론전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명에도 비판 확산
누리꾼들도 관련 기사 댓글에서 비판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 누리꾼은 “관은 이번에 노재팬 캠페인에 끼지 마라. 일본에 빌미만 줄 뿐이고 순수 민간에서 자발적 주도적 진행이 맞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들 일본 말고 국내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여름철 바가지 단속이나 좀 잘하고”라고 덧붙였다. 이 댓글은 1만개 이상의 추천을 받았다.
비판이 확산하자 서양호 구청장은 6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관군, 의병 따질 상황이 아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서 구청장은 “전쟁 중에는 관군, 의병의 다름을 강조하기보다 우선 전쟁을 이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발이 확산되고 비판 댓글이 올라오자 이 글을 삭제했다.
하지만 비판은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여기에서도 서 구청장을 성토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오는 등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 구청장의 전력을 들어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서 구청장은 과거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민주당 대표시절 비서를 지냈고,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시절 정무특보를 역임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배너 설치 시점을 두고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초 중구청은 7일부터 게시할 것으로 계획했으나, 이보다 하루 앞선 6일 오전 배너를 전격 게시했다. 문제는 일본 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취재해 자국의 오전 방송에서 보도한 점이다. 이 때문에 중구청이 시류에 편승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다 일본에게 먹잇감을 넘겨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