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 제28화- 신비로운 첫사랑
[기업소설] 제28화- 신비로운 첫사랑
  • 이상우
  • 승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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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시 수컷은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지. 그 중에도 기생충 같은 것이 총배설강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 그래서 수컷들은 독충을 잡아먹어서 장 소독을 하지. 장 속의 기생충을 싹 쓸어내려다가 자기가 중독되는 수도 가끔 있어.”
“대단하군요. 자기 종족을 퍼뜨리려는 숭고한 노력이네요.”
“느시가 뭐 그런 숭고한 사명감이야 알겠나. 쾌감을 좇다가 보니까 그렇지.”
“새머리니 닭대가리라고 얕보기만 했는데...”
“세상의 수컷들이 쾌감이 없으면 왜 목숨을 걸고 그 짓을 하려고 하겠나. 사람도 마찬가지야.”
“회장님도 그런 경험 있으세요?”
조민지가 돌연 궁금하게 여기든 질문을 했다. 백 회장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일이 없었다.
조민지의 돌연한 질문에 백 회장은 대답을 하지 않고 차창 너머로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우리 여기 좀 쉬었다가 갈까?”
백 회장은 바다가 잘 보이는 도로변 넓은 곳에 차를 세웠다. 죽왕면 어느 해변 같았다.
“나도 젊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사랑한 여자가 있었지.”
한참 만에 백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 얘기 좀 들려주세요. 아이 재미있어. 회장님이 목숨 건 애인이 있었다니 정말 믿기지 않네요. 회장님의 애인은 학인 줄 알았는데.”
“맞아. 내 애인은 학이야. 내가 목숨 건 애인은 학이 되었지.”
“예? 애인이 학이 되었다고요?”
백 삼식 회장의 본 이름은 박운혁이었다. 등기상으로는 본명을 쓰지만 평상시에는 백삼식으로 통한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서 태났지만 아버지 고향인 전라남도 순천에서 자란 백삼식은 대학 시절 어느 겨울 방학 때 고성 이승만 별장과 김일성 별장이라는데 수학여행을 갔다가 송지호반에서 예쁜 여학생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송지호반을 산책하던 박운혁은 호수에서 보트를 타던 여학생이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물에 빠져 허덕이는 것을 보았다. 같이 보트를 탔던 남학생은 헤엄처서 나오는데 여학생은 수영을 못하는지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그 때 박운혁이 옷도 벗지 않고 급히 호수로 풍덩 뛰어 들었다. 가까스로 여학생을 구해서 호수변으로 끌고 왔다. 그러나 여학생은 숨을 쉬지 않았다. 박운혁은 주저하지 않고 여학생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추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보람이 있어 여학생은 숨을 쉬기 시작했다. 여학생 양현숙은 서울 명문 여대에 다녔는데 방학 때 고향인 고성 죽왕면 집에 왔다가 동네 남자 친구들과 보트 놀이를 하다가 변을 당했던 것이다.
이 인연으로 양현숙이 박운혁의 고향인 순천만에 보은 여행을 왔었다. 양현숙은 박운혁의 집에 머물면서 며칠을 보냈다. 꿈같은 재회의 시간이 가고 양현숙은 고성으로 돌아갔다.
서로 떨어진 두 사람은 이틀이 멀다하고 편지를 교환했다. 처음에 안부만 묻던 두 사람 의 편지는 마침내 연애편지로 바뀌었다.
그해 겨울 방학 때는 박운혁이 고성으로 갔다.
또 그다음 여름 방학 때는 양현숙이 순천으로 왔다.
그들의 연애는 마침내 뜨거운 사랑으로 변했다.
송지호반과 순천만은 공통점이 많았는데 그 중에도 갈대숲과 함께 같은 종류의 철새가 온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순천과 송지호를 오가며 철새와 함께 사랑을 익혔다. 특히 그들이 좋아한 것은 두루미 과의 새들이었다. 머리에 빨간 벼슬이 아름다운 단학을 좋아했다.
“나는 죽으면 새가 될래요. 새 중에도 학이 될래요.”
양현숙은 평소 이런 농담을 좋아했다. 두 사람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순수한 사랑을 자랑했다.
“우리 타락하지 맙시다. 결혼식 올리는 날까지 서로 순결을 지켜요. 오빠, 자신 있지요?”
양현숙은 순결을 특별히 강조했다. 평소 박운혁의 스킨십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 때 키스부터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둘은 장래를 약속했다. 그러나 사랑의 신은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어업을 하던 양현숙의 아버지가 동해서 실종되어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 함께 간 선원 가족과 회사 빚쟁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혼자 남은 어머니는 양현숙을 데리고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박운혁은 백방으로 양현숙을 찾았으나 도저히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실의에 빠져 전국을 헤매고 다니던 박운혁은 마침내 결핵에 걸려 중환자의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70년대 까지도 폐결핵은 완치되기 어려운 병이었다.
박운혁은 남은 생애를 양현숙을 기다리며 살겠다는 결심으로 송지호 부근으로 갔다.
그때부터 철새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학을 좋아했다. 양현숙이 죽으면 학이 되겠다고 한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박운혁은 학이 나르는 곳은 식음을 전폐하고 쫓아다녔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민지는 백 회장을 다시 보았다. 여느 기업인들과는 다른 신비하고 낭만 넘치는 사업가라는 데 존경심이 다시 생겼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한 백 회장은 갑자기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해 떨어지기 전에 송지호 철새 관망 센터 까지는 가야지.”
“남은 이야기는 언제 들려주실래요?”
“다음에 하지.”
“송지호에는 고니 말고 어떤 새가 오나요?”
“고니, 느시, 두루미, 넓적다리 황새, 오목다리 종달새, 원앙, 청둥오리 같은 새도 있지.”
“원앙은 정말 평생 일부일처로 사나요?”
“아니야. 가장 풍기가 문란한 새 중에 하나지.”
“그런 새들도 회장님이 피리를 불면 날아오나요?”
“물론이야. 대개는 내 말을 알아듣지.”
“어떻게 그런 걸 알게 되었어요. 정말 신기해요.”
“새들도 자기들 말이 있단다. 다만 인간이 알아듣지 못할 뿐이지.”
“회장님은 어떻게 알아듣게 되었어요?”
“옛날 애인이 도와주었지.”
“양현숙이라는 옛날 애인 말씀인가요?”
그 말에 백 회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조민지의 손을 꼭 쥐었다.
“나는 민지한테서 현숙이의 향기를 느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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