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직장의 신 제26화- ‘내가 남자 검색하는 여자도 아니고’
[기업소설]직장의 신 제26화- ‘내가 남자 검색하는 여자도 아니고’
  • 이상우
  • 승인 2019.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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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자 물건 검열하는 여자도 아니고 그런 걸 자꾸 물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조민지가 단호하게 말하자 여영진은 주춤했다.
“농담이었습니다. 조 차장은 그런 문제에는 이미 쿨하게 트인 사람 아닙니까?”
“그건 그렇고 게시판 악플 건은 해결 해 주시는 겁니까?”
“알았습니다. 오늘 중에 해답을 드리지요.”
조민지는 여영진과 헤어지고 박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게시판 악플은 지우셨나요?”
“아직... 출처를 좀 더듬느라고 그냥 두고 있답니다. 그런데 찾기가 쉽지 않네요.”
“내가 전문 해커한테 부탁 했으니 좀 기다려 보세요.”
“전문 해커? 혹시 번개?”
조민지는 뜨끔했으나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날 퇴근 무렵 여영진으로 부터 메일이 왔다.
- 악플 발신자를 대강 알아냈습니다. 역삼동에 있는 2호선 역삼역 부근이더군요. 아마 치맥집일 것입니다.
발신자가 이용한 서브를 찾아내서 추적했더니 핸드폰으로 보냈더군요. 핸드폰 위치 추적으로 그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여기 전화번호가 있으니 이제부터 조 차장님이 직접 찾아내세요.
010 2345 **43
조민지는 사내 사이트 인사 기록실로 들어가 이규명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찾아보았다. 사내 인사 기록은 비밀로 분류되어 있지만 차장 이상은 열람할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그 번호는 이규명의 전화가 아니었다.
조민지는 남의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통해 우리 회사 사이트에 접속하고 악플과 사진을 올렸으리라고 가정해 보았다.
조민지는 인사 기록 카드에서 이규명의 인물 사진을 다운 받았다. 직접 다니면서 찾을 생각이었다.

“역삼동까지 가서 맥주를 마실 이유가 뭔데요?”
퇴근 시간에 조민지에게 붙들려 역삼동 행 전철을 탄 박민수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지금 중요한 수사를 하고 있어요. 잠자코 따라와 봐요, 이게 다 우리 두 사람이 관련된 일 아닌가요? 공연한 사람 옥상으로 불러 성폭행 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겼잖아요.”
“성폭행?”
“꼭 강간 같은 것만 성폭행인가요?”
“그래도 그때는 황홀한 것 같던데?”
박민수가 놀리듯이 말했다.
두 사람은 역삼 역 근처의 카페와 술집 몇 군데를 찾아갔다. 평소 이규명이 역삼 역 근처서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술을 마신다는 정보를 박민수는 이미 수집해 있었다.
두 사람은 가는 카페나 술집마다 이규명의 인물 사진을 들이밀고 이런 사람 왔느냐고 물어 보았다.
다섯 번째 치맥 집에 들렀을 때였다.
“이 사람 편의점 김 사장 친구 아냐.”
주인 아줌마가 알아보았다. 여영진은 이 치맥 집을 알고 말한 것 같았다. 정말 놀라운 실력이다.
“수퍼 김 사장이 누구예요?”
“10번 출구 건너편에 있는 수퍼 주인이예요. 일주일에 두어 번은 이사람 하고 와서 맥주 마셔요.”
조민지는 그 치맥 집에서 맥주와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 알아야할 정보는 완벽하게 캐냈다. 주인 아줌마의 기억을 종합하면 범행(?)의 경위를 재구성 할 수 있었다.
이규명은 김 사장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다가 김 사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 두고 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기 핸드폰에 있던 사진 두 장을 재빨리 전송해서 김 사장 핸드폰으로 보내고 회사 사이트에 접속해 글을 올린 뒤 다시 핸드폰의 흔적을 지운 것이다. 김 사장은 자기 핸드폰이 범죄에 이용 된 것을 물론 알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오?”
박민수가 물었다.
“어떻게 하기는요.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지요.”
“어떤 벌을 주는데요?”
조민지는 박민수의 표정을 슬쩍 읽은 뒤에 말을 이었다.
“박 선배는 동기생이니까 입장이 곤란할 거예요. 그냥 빠지세요. 내가 알아서 처리 할게요.”
“명예 훼손 된 것 복구하는 정도로... 사과를 받아내던지 하면 되지 않을 까요?”
“그렇게 본전 정도 건지는 선에서 그만 둘 조민지가 아닙니다. 어쨌든 박 선배는 빠져요.”
박민수는 조민지가 워낙 강하게 말하는 바람에 뒤통수를 긁으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조민지는 우선 이규명 대리를 자기 자리로 불렀다. 자기 책상 앞에 앉혀놓고 따질 생각이었다.
“제게 뭐 시킬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이규명 대리가 비굴한 얼굴로 눈치를 보았다.
사내자식이 이렇게 비굴 할 수 있나. 면종복배라고 하더니 선배들 말이 그른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부로 가득한 언동을 하면서 뒤로 돌아 서서는 못된 짓을 서슴없이 하는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이런 사람이야말로 소시오 패스가 될 사람 아닌가.
“변명할 생각하지 마세요. 게시판에 올린 사진 직접 찍으신 거지요? 나한테 복수 하고 싶어서 그런 야비한 짓을 저질렀나요?”
이규명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조민지가 모든 걸 파악했다고 단정한 표정이다.
“이 대리 친구 역삼동 수퍼 김 사장에게서 다 확인 한 것이니까.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명예훼손에 모욕죄면 몇 년은 살아야 할 걸요.”
이규명이 갑자기 바닥에 넙죽 꿇어앉았다.
“제가 돌았었나 봐요. 술김에 그만 미친 짓을 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규명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남 보기 이상하니까 일어나 의자에 앉아요. 술김에 했다고 하는, 우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아요. 나를 미행하지 않으면 찍을 수 없는 사진 아닙니까? 나한테 그렇게 복수가 하고 싶었나요?”
‘아, 아닙니다.“
조민지는 다시 이규명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비굴도 아부도 없었다. 그냥 공포에 질린 것 같았다.
“우선 회사를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어요. 사내 사이트 게시판에 사과문을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보에도 사과문을 일단 올리세요. 그 다음에 회사를 떠나도 됩니다.”
회사도 떠나도 된다는 말에 이규명은 다시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회사서 쫓아내지는 말아 주십시오. 한번 만 용서해 주십시오.”
“한 번 용서 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겼잖아요. 우선 사과문 올리고 사보에도 사죄문을 실으세요. 이틀간 여유를 주겠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 교도소로 보낼 것인지 집으로 보낼 것인지 결정 하겠습니다. 이제 가 보세요.”
조민지가 먼저 일어나 버렸다.
이틀이 지나 뒤.
조민지는 구내 커피숍에서 이규명 대리와 마주 앉았다.
“이틀이 지나갔네요. 어떻게 되었어요?”
“근데 말입니다...”
“근데 뭐예요?”
이규명 대리는 이틀 사이에 입술이 터지고 얼굴이 초췌해졌다. 엄청 고민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조민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 남자가 불쌍하다고 해서 동정을 하다가는 내가 망하는 거야. 매몰찬 모습을 보여야 해. 이 남자를 짓밟더라도 내 갈 길에 장애물이 없어야 하거든. 내가 뭐 공연한 사람을 짓밟는 건 아니잖아?
조민지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 한 뒤 이규명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난 한번 한 말은 주어 담지 않습니다. 게시판에 사과문 낸 걸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큰 오햅니다.”
“근데 그게 말입니다. 사보 만드는 책임자에게 무,물어 보았더니...”
이규명은 말까지 더듬었다.
“그래서요?”
조민지가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런 내용은 사보에 실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정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광고로 내십시요.  광고요금이 모자라면 그건 내가 보태주겠어요.”
“우리 사보에 광고 난이 있습니까? 광고로 그걸 받아 줄까요?”
조민지는 일간 신문에 툭하면 사과 성명서를 내는 것이 생각나서 그렇게 말했다. 상표를 도용한 악덕업자들이 흔히 내는 사과 광고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보에서도 그런 광고를 받아 줄지 그것은 자신이 없었다.
“하여튼 광고를 내는 방법을 강구해 보세요. 사보 편집자가 정 안되겠다고 한다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지요. 하루 더 시간을 주겠습니다.”
조민지는 매정하게 돌아 서서 나오다가 다시 돌아 섰다
“잘 생각해 봐요. 감옥이냐, 하루 놀고 하루 쉬는 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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