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22화 ‘소파 승진을 아세요?’
[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22화 ‘소파 승진을 아세요?’
  • 이상우
  • 승인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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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 두 시가 넘도록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와인을 마시자 이제 술이 떨어졌다. 그러자 박민수가 밖으로 나가 맥주 열병을 다시 사왔다. 두 사람은 거의 흐트러진 상태였으나 술을 계속 퍼부었다.
박민수는 이제 팬츠만 남기고 다 벗은 상태이고 조민지도 속옷 바람이 되었다.
“오빠!”
조민지가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말을 했다. 혀가 꼬부라져 발음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조 차장. 부르셨습니까? 명령만 하십시오.”
“뭐야? 조 차장? 내입에서 개자식 소리가 나와 봐야 하냐? 오빠!”
“그래 나는 조민지의 개다. 명령을 내리시오.”
조민지는 들고 있던 맥주잔을 다 마신 뒤 잔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인사불성 직전의 상태까지 갔다. 서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오빠. 너 뭐야? 김영호가 그러는데 너한테 무슨 비밀이 있다며? 뭐야? 오빠가 명예회장네 식구야? 재벌 후계자 위장 취업이야? 오빠, 아니 박민수 대리 정체를 밝혀라.”
조민지는 비록 술이 취해 인사불성에 가까운 상태지만 마음에 새겨둔 말을 마침내 내뱉었다.
“김영호? 부사장 말이야? 그 명예회장 집 개가 무엇이라고 했는데?”
“오빠는 특별한 임무가 있어서 사표 못 낼 것이라고 하던데? 뭐야? 어느 집 개야?”
박민수는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흔들어 도리질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싶은 모양이다.
“김영호 개가 그런 소리를 했다고? 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사랑의 집 고아 출신이라는 걸 너도 알잖아? 그런데 내가 그 집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야?”
박민수의 얼굴이 약간 긴장 된 것 같았다.
“명예회장이 젊을 때 바람피우다가 생긴 아들을 집에 데려 올 수 없어 고아원에 맡겼다가... 뒤늦게 찾아서 회사 후계자로 삼기 위해 몰래 입사시키고 일 배우게 한 뒤...”
“너 지금 막장 드라마 쓰고 있니?”
“드라마?”
“그래. 그거 티비에서 하는 막장 드라마 제일 흔한 줄거리잖아.”
박민수는 낳은 지 두 달도 안 되어 홀로된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사랑의 집’에서 자랐다. 알바로 대학을 나왔다. 성적이 뛰어나 대기업에도 취직 시험에 합격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중소기업에 불과한 영종유지에 입사했다.
조민지가 알고 있는 박민수의 신상정보였다.
“내가 김영호 부사장의 동생이나 아들이라도 되는 줄로 알았느냐?”
박민수가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옷 다 입기 전에 오빠 그 팬츠 한 번 내려 봐.”
조민지가 엉뚱한 주문을 했다.
“왜? 내 잠지 보려고? 하하하. 번개 여영진이 페니스를 봤다고 했지? 그냥 보기만 했겠나? 맞나 안 맞나 넣어 보았겠지. 하하하. 여영진과 조민지라  잘 어울릴 거야. 여영진도 수석 연구원이라는 공식 명함을 가지고 있지만 조민지 처럼 우리 회사의 차장급이야. 차장 대 차장. 차장 대 대리보다는 훨씬 잘 어울리지. 하지만 나는 함부로 아무 여자한테나 그런 걸 보여줄 수가 없어.”

조민지는 자기가 차장이 된 것에 몹시 충격을 받은 박민수를 느낄 수 있었다. 불쌍하기도 했다.
“이 시간에 어디로 가려는 거야? 여기서 그냥 자고 가지요.”
조민지가 걱정이 되어 말리려고 했다.
“아냐? 나 집에 갈 거요. 여자 상사와 한 방에서 자고 나왔다고 소문나기 전에 꺼져야죠. 조 차장한테 먹혔다느니, 얌전한 박 대리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갔다느니 조민지가 두 다리 걸쳤느니 하는 소문 쫙 퍼질지도 몰라요. 조 차장님 그렇지 않습니까?”
조민지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비틀거리면서 현관문을 나서는 박민수의 뒤통수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은 편하지 않았다. 박민수의 비틀거리는 모습이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했다.
이튿날 조민지는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자말자 사내 인사발령 난을 보았다.
‘박민수. 영종 인프라 연구위원’
“어 이게 뭐야?”
조민지는 깜짝 놀랐다. 수석 연구위원이야 대리급에서 부터 부장 급까지 있다. 그러나 대리인지 차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민지는 내용을 알아보러 총무과로 가다가 휴게실 쪽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야 거 참 재미있다 얘. 소파승진이라고?”
“얘 부사장 소파가 얼마나 푹신한지 아니?”
“호호호. 너도 가서 누워 봤니?”
“ㅋㅋㅋ...”
“누워 보긴? 앉아 보지도 못했어.”
“그래 조민지가 김 부사장님 차타고 들락날락 하더니 차 안에도 소파 있는 거 아니니? 호호호...”
“얘. 홍 사장 소파는 어떻고...”
“나도 소파승진이란 영화는 보았지만 우리 회사에서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말조심 해. 네가 본 것도 아니잖니.”
“회사 안에 소문이 쫙 인데..”.
조민지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분명히 자기 이야기였다. 손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모함하고 헐뜯어도 분수가 있지. 저렇게 사람을 짓이기고 난도질해도 된단 말인가. 이 일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다. 꼭 캐야한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조민지는 부글부글 끓는 심정으로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참으로 세상 살기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구나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조민지는 점심시간에 피용자를 데리고 나갔다. 피용자는 얼마 전까지 자기와 같은 또래의 동료였던 조민지가 한참 높은 자리로 올라가서도 자기를 아껴준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난 조민지가 입을 열었다.
“피용자씨 혹시 소파승진이라는 말 들어 보았어요?”
“예. 그 영화 말이죠? 아니...”
피용자는 얼른 대답하다가 그게 무슨 뜻인가를 눈치 채고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다.
“들어 봤어요?”

조민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자 피용자는 겁에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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