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20화 ‘동정? 사랑?’
[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20화 ‘동정? 사랑?’
  • 이상우
  • 승인 2019.0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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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지는 찬바람이 쌩 불도록 스커트 바람을 일으키며 사장실을 나왔다.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사표를 받아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왜 박민수 대리를 위해 사표까지 걸고 모험을 해야 하지?
-혹시 내가... 박민수 대리한테 썸타는 것일까?
-사랑? 동정? 오기?
조민지는 자기가 왜 그런 경솔한 짓을 했는지 후회스럽기도 했다.
‘조그만 일에 목숨을 걸지 말라’
어떤 사람의 책 제목이 생각났다.
어쨌건 조민지는 초조한 하루가 저물었다. 그러나 사장실에서는 조민지 차장을 부르지 않았다. 조민지는 점점 초조해졌다.
-내가 너무 경솔했어. 박민수, 그게 뭔데? 쩨쩨하고 용기 없는 월급쟁이. 야망도 능력도 없는 진짜 월급쟁이.
조민지는 박민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박민수를 무시하고 싶어도 마음 한켠에 그의 모습이 도사리고 있었다.
-맞아. 나 때문에,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월급쟁이의 목숨을 팍 집어던진 것 아닌가. 내가 돕는 것은 당연 한 거야.
그러나 터무니없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도와야 했던가? 아니 전혀 거짓말은 아니다. 강원 그룹 백 회장에 대한 정보를 준 것은 틀림없지 않은가.
퇴근 무렵이 다 되었을 때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조 차장. 나 김영호인데 시간 있으면 잠깐 오실래요?”
“예. 지금 가겠습니다.”
조민지를 부른 김 부사장은 약간 긴장한 것 같았다.
“조차장, 박민수씨를 차장으로 승진시키지 않으면 회사 납품 건을 못하겠다고 한 것이 사실인가요?”
“정확하게는 차장 자리를 반납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묻지 않겠어요. 동정인지, 배려인지, 혹은 애정인지 아니 그 말은 취소.”
“동정이나 애정은 아닙니다. 더구나 애정은 아닙니다. 저의 상사였습니다. 저 때문에 사표를 낸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유능한 선배의 앞길을 막은 것 같아 잠이 오지 않습니다.”
말을 해놓고 조민지는 자기의 심정을 정말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박민수 대리는 조 차장이 걱정 할 만큼 불쌍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그가 이 회사에 말단으로 들어와 특이한 일을 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박민수가 아무리 사표를 내도 수리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하세요. 조 차장은  우리 회사의 떠오르는 별입니다.”
조민지는 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부사장실을 나왔다.
박민수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특이한 일을 한다? 사표가 수리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 회사의 대주주이고 창설자는 김강석 명예회장이다. 그리고 제2인자는 상속자가 될 김영호 부사장이다. 홍 사장도 중요한 결정은 부사장의 결심을 받는다.
그렇다면 박민수는 성이 박씨니까 오너 일가와는 관계가 없지 않은가? 외사촌? 누나의 아들?
그러나 그런 이야기도 들은 일이 없다.
조민지가 차장 발령이 나자 사원 두 명만 모이면 쑥덕거렸다.
“능력만 있어봐, 차장 아니라 부장도 되지.”
“무슨 능력?”
“여자만 가진 무기를 사용하는 그런 능력 있잖아.”
해도 너무 했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심드렁한 사원들의 반응에 신경 쓸 조민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조민지를 당혹하게 만든 것은 박민수가 아닌가.
지금까지 상관으로 모시고 있던 박민수 대리가 갑자기 사표를 낸 것에 대해서도 뒷 담화도 많았다.
조바심이 난 조민지는 박민수와 동기생인 이규명 대리를 찾아가서 박민규를 좀 설득해 줄 것을 부탁했다.
“생각해 봐요. 여동생처럼 새카맣게 생각하던 후배가 갑자기 한참 올려다봐야 할 상관이 되어 군림 했는데, 아무리 취직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도 그냥 개길 수 있겠어요? 조민지, 아니 조 차장이 박민수 대리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겠어요?”
박민수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나마 들으려고 불러 낸 이규명 자재과 대리가 조민지 차장에게 해준 말이었다.
“잘 알겠어요. 제가 드린 말씀을 박 대리에게는 하지 말아 주세요.”
조민지는 우울한 기분으로 걸어 나왔다. 영업부 사무실로 돌아와 새로 마련한 차장자리에 앉았다.
그는 같은 사원이었지만, 선배인 피용자를 불렀다. 부하 중에 제일 만만했다.
“네, 차장님 부르셨어요?”
피용자가 긴장한 얼굴로 조민지 앞에 와서 섰다.

“박민수 대리 말인데...”
“예. 오늘도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박 대리는 우유부단하다고 윗사람들에게 야단도 더러 맞았지만 한번 결심하면 꼭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믿을만한 남자지요.”
“누가 인물평 하라고 했나요?”
“아, 죄송합니다. 그냥...”
“박민수씨가 명예회장의 친척이라도 되나요?”
“전혀 아닙니다. 박민수 대리는 어릴 때 사랑의집에서 자랐다고 하던데요.”
“사랑의집이 뭐야?”
“고아원 같은 곳입니다.”
피용자는 또박또박 경어를 쓰면서 말했다.
조민지는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보내고 퇴근을 했다.
조민지는 박대리와 자주 만나 말단 사원의 설움을 곧잘 하소연 하던 대학로 카페 ‘이풍진 세상’으로 갔다. 자욱한 연기 속을 휘 둘러 보았다. 혹시나 했으나 박민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 까짓 남자, 내가 왜 이러지...’
조민지는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조민지는 가끔 박민수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구석자리에 가서 앉았다. 맥주 한 병을 청해 마시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사표를 던진 박민수의 얼굴이 머릿속에 어른거려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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