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 직장의 신-제19화 ‘차장자리 반납 하겠습니다’
[기업소설] 직장의 신-제19화 ‘차장자리 반납 하겠습니다’
  • 이상우
  • 승인 2019.05.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대가 누구든, 남녀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내는가 하면, 같은 회사 여사원 앞에 발기된 무기를 자랑하듯 들이 밀고도 태연한 파렴치범 여영진. 이런 무례한 남자와 마주 앉아있지만 조민지는 어쩐지 밉게만 여겨지지는 않았다.
“남자란 참 이상해요. 사랑하지 않는데도 같이 자고 싶은가요?”
“재미있는 인생의 삼대요소, 즉 가장 사는 재미를 느끼는 세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
“뭔대요?”
“첫째 섹스, 둘째 도박, 셋째 골프, 또는 스키. 그 중에도 섹스가 제일이지.”
“후배 여자 앞에 못하는 말이 없네요.”
조민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사랑이라는 본질이 무엇인가요? 사랑이란 너무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지씨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이 모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여자들의 생각이지. 그러나 사랑은 폭이 무한대로 넓기 때문에 서로 스킨십이나 섹스로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일종의 사랑이지요. 다만 그 사랑은 얽매이지 않을 뿐이다.”
“그런 걸 궤변이라고 하던데요. 선배와 성 박사도 그런 사랑이군요,”
그 말을 하면서 조민지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혹시 질투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다.
“성 박사가 개발하는 신소재란 어떤 것인가요?”
조민지가 화제를 돌렸다.
“우리 그룹이 레저 산업에 진출하려고 하나 봐요. 레저 용품용 신소재를 찾고 있어요. 에를 들면 골프공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는 골프채를 만든다든지, 더 가볍고 불에 타지 않는 캠핑 텐트를 만드는 소재라든지 그런 걸 연구하고 있어요. 내가 필요한 것은 이질감이 전혀 없는 콘돔을 만드는 것인데...”
“소망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제 사무실에 들어가 봐야겠네요. 커피 맛있게 마셨습니다.”
조민지가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레저 용품 신소재 개발이라는 것을 새겨들었다.
조민지는 오후에도 박민수 대리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조민지는 회사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 박스에 가서 박민수 대리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회사 안에서는 핸드폰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았다.
조민지는 박민수 대리가 그만둔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민지는 사장실로 갔다. 비서가 조민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아, 우리 회사 보배 조민지 차장이 오셨군, 자자, 여기 앉아요. 그래 계약은 언제 체결 하나?”
홍 사장은 함박웃음으로 조민지를 맞았다.
“다음 주에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일로 사장님일 좀 뵈러 왔습니다.”
홍 사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조민지를 바라보았다.
“영업 팀에 있는 박민수 대리라고 아시죠?”
“알다마다. 아주 착실한 사원이지. 1년 전 회사에 화재가 났을 때 사원들이 모두 대피했는데 박민수가 보이지 않았어. 모두 걱정을 하고 있는데 타오르는 불더미 속에서 박민수가 튀어나왔어. 옷이 불에 그슬려 타죽기 직전의 모습이었어, 그런데 박민수가 안고 나온 것은 회사의 기밀이 담긴 회계서류였어.”
“놀랍네요.”
“아주 고지식한 친구야. 아니 고지식 하다기 보다 책임감이 강한 친구야. 그러나 회사는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회사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거든. 만약 박민수가 그 서류 때문에 타죽기라도 했다면 아주 골치 아플 번했지.”
조민지는 사장의 설명을 들으며 정말 못 말리는 사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목숨을 걸고 회사의 이익을 지켰는데 골치 아픈 사원이라고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사장을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그 박민수 선배가 사표를 냈답니다.”
조민지는 말을 던지고 사장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래? 존 데 간대?”
“그게 아니고요, 아무래도 저 때문에 사표를 낸 것 같아요.”
“그건 무슨 소리야?”
홍 사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새카만 여자 후배 사원이 자기 직속상관이 되니까 자존심이 팍 상한 거지요. 저 같아도 사표 낼 거예요.”
“허허허.... 못난 사내군.”
홍 사장은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내지.”
“그 보다는요...”
조민지가 한 템포 늦추어 말을 이었다.
“저와 같이 차장으로 발령을 내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홍 사장은 기겁을 한 듯 소리를 질렀다.
“뭐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박민수도 비누 5만 상자를 납품했어? 차장자리가 남대문시장 설렁탕 값인 줄 알아?”
“강원 그룹 비누 납품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정보를 나한테 주고 작업 방법을 코치 한 것은 박민수 대리였습니다.”
조민지는 준비하고 온 말을 쏟아냈다.
“강원 그룹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도 저는 몰랐고요. 강원그룹 백삼식 회장이 자연보호, 아니 조류 애호가라는 것도 모두 박 대리가 알려 주었습니다. 박민수 대리가 아니었다면 그 일은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도 차장은 안돼요.”
홍 사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바뀌자 조민지가 최후의 한마디를 던졌다.
“그렇다면 저도 차장 자리 반납하겠습니다. 그리고 납품 사업 중단하겠습니다. 사장님 안녕히 계십시오”
조민지가 벌떡 일어서서 꾸벅 절을 하고 홱 돌아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