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언체인' 정성일, "조각난 기억을 찾기위한 두 남자의 이야기"
[인터뷰①] '언체인' 정성일, "조각난 기억을 찾기위한 두 남자의 이야기"
  • 조나단 기자
  • 승인 2019.0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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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가 있을 것"
마크와 싱어는 톰과 제리같은 존재

 

친절하진 않지만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치밀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 호흡에 빠져드는 연극이 대학로에 올라왔다. 마치 영화 <메멘토>를 보듯, 아니면 영화 <파이트 클럽>을 보듯 매력적인 두 명의 배우들이 나오는 작품이다. 연극 <언체인>은 마치 앞서 말한 두 편의 영화를 무대 위로 옮긴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지난 2017년 초연으로 무대를 가졌던 연극<언체인>은, 영화<메소드>와 동시 기획 및 제작, 상연을 통해 '무대와 스크린의 절묘한 크로스오버'로 화제를 모으며 성황리에 공연된 작품이다. 연극 <언체인>은 배역들에 더욱 집중된 이야기를 가지고 2년 만에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극중 조각난 기억 속 파편들을 맞춰나가며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마크 역을 맡은 정성일 배우와 연극 <언체인>과 마크,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에 대해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Q. 반갑습니다.

A. 안녕하세요. 전 정성일입니다. 지금은 <언체인>에서 마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주로 연극을 해온 배우입니다.

Q. 공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A. 네, 이제 한 달 정도 지난 것 같네요. 제가 공연을 하면 보통 잘 긴장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첫 공연을 올리기 전에 오래간만에 긴장했던 것 같아요. 한 6년 만인 거 같아요. 첫 공 전에 잠을 못 잔 적은요. 그만큼 부담도 조금 있었고 설레는 작품이었죠.

Q.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A. 저는 사실 초연을 봤었어요. 작년에 했던 초연을 봤었고, 처음 공연을 봤을 때 <메멘토>라는 영화를 떠올렸었거든요. 제가 그 영화를 너무 재밌게 보고 좋아했던 작품이라 공연을 보면서 그 영화를 많이 떠올렸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처럼 우리 연극에서 기억의 파편들을 찾아나가거든요. 그때 승호가 하는 공연을 봤었는데 정말 인상 깊었어요. 너무 매력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는데 제가 직접 할 줄은 몰랐어요. 개인적으로 2인 극을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대표님이 저한테 연락을 주셨어요. 공연을 다시 올리게 됐는데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죠. 그래서 무조건하겠다 너무 재밌게 좋게 본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바로 참여하게 됐어요

Q. 초연이랑 가장 많이 바뀐 점은?

A. 일단 제가 보기에 가장 많이 바뀐 점은 선명함인 것 같아요. 재밌게 본 작품이긴 했지만 제가 작품을 맡고 처음 대본을 읽어봤을 때 뭔가 했었거든요. 그런데 초연 때랑 비교해서 읽어보니까 조금씩 선명해지더라고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나 관계도, 그리고 사건들 속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엄청 선명해졌죠. 그리고 스토리의 흐름도 입체적으로 만들어졌어요. 초연 때는 무대서부터 현실의 어느 부분이 아닌 어떠한 가상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초연 때랑 지금이랑 가장 많이 바뀐 부분, 차이점이 있다면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들끼리 하는 장난 섞인 이야기로 완전히 다른 극이라고도 말하곤 했어요.

Q. 가장 공들인 장면

A. 저는 특별한 어떤 장면을 위해서 신경을 많이 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마크라는 인물이 가지는 혹은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많이 신경 썼어요. 그 인물과 싱어와의 관계에서 시작해서,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건과 이야기들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줄까라는 부분들요. 특별한 장면은 어떻게 보면 전부고 볼 수 있죠. 연기를 하면서 어떻게 이 안에서 펼쳐지는 감정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었거든요. 굳이 꼽아보자면요? 그럼 아무래도 월터씬을 조금 더 집중한 것 같아요. 감정이 극과 극으로 치닫거든요. 제일 많이 웃지만 가장 어려운 장면이에요. 그래서 상대 배역을 맡은 배우들과 제일 집중해서 연습한 것 같아요.

 

Q. 왜 이 씬일까

A. 공연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일단은 동성애가 등장해요. 제가 갖지 못했던 어떤 감정들을 표현하고 전달해야 하는 부분들에 있어서 처음엔 감을 잡지 못했죠. 그래서 일단 이성적인 감정을 가지고 와서 연기하는데 사용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이게 정말 어색해지더라고요. 극에서도 극 안에 있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정말 많이 고민하고 준비했죠. 이성이 아니라 동성이지만 사랑하는 관계가 어색하지 않은 커플처럼, 진심으로 사랑하는 관계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었어요. 이 장면을 연습하면서 정말 많이 생각했고 정말 많이 신경 썼었어요. 우습게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Q. 맡은 배역에 대해서, 마크는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혹시 참고를 했다거나 누구를 오마주 하지는 않았나

A. 일단 마크는 처음 봤을 때 너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대본을 읽어보고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이 인물을 너무 단순하게 그려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다 보니까 단순하게 텍스트에 나오는 인물에서 입체적인 느낌이 들었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마크도 앞에서 보이는 이미지 말고도 다른 이미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Q. 어떤 이미지일까

A. 일단 이 인간이 가진 부족함을 봤죠. 이 인간은 뭐가 부족했을까를 많이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이 인간이 왜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은 완벽한걸 추구했을 거고, 그리고 자기에 대한 자존감 또한 높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에 대한 잘못은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밀어버리게 되죠. 그런데 그 또한 자신의 모습 중에서 죄, 그리고 죄의식을 다 떨쳐보내지 못 했던 거예요. 죄가 있으면 누군가는 그 죗값을 치러야 되잖아요. 마크는 자기 자신에게 가면을 씌우고 그 죄에 대한 죄책감을 넘겨요. 그렇게 쌓이고 쌓이는가면 속에 죄의식을 미뤄 넣죠.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게 계속되는데, 이걸 연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크가 못난 인간이면서도 동정이 가는 인물로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사이코패스만으로 보이는 인물이기 싫어서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를 보일 수 있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잔인한 면도 있고, 부족해서 누군가가 도와줘야만 해야 될 것 같은 모습, 인간적인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담으려고 했어요.

 

Q. 공연을 보고 나서 본지는 무대 위 장면을 마크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마크가 가지고 있는 장소의 의미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장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A. 일단 마크에게 그 장소는 자기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 것 같아요. 마크 본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요. 마크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곳과 직업적으로 있어야 되는 공간, 사랑들과 어울리는 공간을 따로 분리하고 있거든요. 대본상에는 '지하실일수도 있다'고만 표현되어 있는데, 마크 입장에서는 마크랑 전혀 상관없는 공간이어야 하죠. 그리고 마크의 입장에서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전혀 상관없는 장소여야만 했었죠.

제가 생각하는 그 공간은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고, 싱어라는 사람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장소죠. 여기서 마지막이란 건 일종의 마지막 종착지 같은 느낌이에요. 싱어한테는 너무나 좋고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공간이지만 마크한테는 가장 저 밑, 한 귀퉁이에 숨겨진 공간일 수도 있다는 그런 느낌말이죠.

 

Q. <언체인> 작품 속에서 마크만이 문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그 장소의 통제권은 마크가 가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싱어가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을 통해 문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마크의 통제권을 싱어가 가져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어떤 것 같은지

A. 통제권, 주체 다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저도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 장소들이 마크의 머릿속에서 계속 돌고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기자님이 말씀하신 거랑은 다르게 저는 그 주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어쨌든 계속 돌아가는 이야기고 다양한 해석이 오갈 수 있는 엔딩이거든요. 저는 해석에 차이를 뒀어요. 어떤 점이냐면 공연이 시작됐을 때가 처음이 아니라 이미 앞에서 많은 사건과 이야기가 벌어졌고,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이 이야기의 끝은 종착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뫼비우스의 띠처럼요. 우리 작품이 시작할 때 '누구냐라고 물어요.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애매모호해지거든요. 그러나 마지막까지 주도권은 마크가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단지 싱어가 가진 것처럼 보일뿐이죠.

Q. 톰과 제리 같은 느낌도 들었다.

A. 그런 기분도 들기는 해요. 마크가 극을 이끌어가지만 어느 순간에는 끌려가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깨진 조각들을 모아가죠. 마크가 고군분투하는데 제가 연기를 할 때도 그렇죠. 그리고 배우들마다 그려내는 싱어가 다 다르기 때문에 여러 느낌을 받아요. 특히 어느 순간인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싱어에게 끌려가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 내가 지금 놀림당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든 적이 있죠.

 

Q. 시작, 그리고 마지막에 모래시계를 돌린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A. 일단 연출님께선 프레스콜 때 수직적인 시간과 수평적인 시간이라고 말씀해주셨었는데요. 공연을 하고 있는 저한테는 조금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그 모래시계가 마크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이게 뭐냐 하면 싱어 같은 경우에는 메트로놈이 싱어를 상징하는 의미라면 마크는 모래시계가 그를 상징하는 거죠. 모래시계 속 모래들이 마크가 가지고 있는 죄와 죄책감을 나타내는 것 같았어요. 위에 있는 모래들, 즉 마크가 가지고 있는 죄를 싱어에게 전가하죠. 계속 나의 죄와 죄책감을 싱어에게 전가하는데 마지막에 싱어가 다시 그 시간을 돌려버려요. 모래시계를 뒤집으면서 마크는 죄라는 굴레 안에 갇혀있다는 걸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자신이 만들어낸 죄라는 틀 안에서 계속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공연을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공연을 소개해보자면?

A. 우리 공연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무심코 지나갔던 이야기들을 되돌려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보시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 아깝지 않은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연에 임하고 있어요.

Q. 내가 생각하는 언체인의 의미는? 살면서 풀어보지 못한 게 있다면?

A. 질문에 대한 맥락이 다를 수도 있는데, "누구야"라는 지문이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죠.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면서 누구냐고 묻지 않잖아요. 저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저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넌 누구냐고, 내가 생각하는 나 정성일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게 됐죠.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이 맞을까, 혹시 나도 내가 알지 못하는 저 마음속, 생각 속 어딘가에 숨겨진 내가 있지 않을까라는 부분이요. 살면서 저도 제가 모르게 어떤 일들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누가 저보고 "너 그랬대"라고 말하면 저는 "어 내가? 그랬어?"라고 답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끝까지 생각나지 않았어요. 제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떻게 말을 했는지를요. 그래서 저 또한 마크처럼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공연을 준비하면서 "난 왜 그랬을까" 혹은 "진짜 내가 한 게 맞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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