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고백] “세월호 5주기,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1824일’ 난 여전히 ‘기레기’다”
[기자 고백] “세월호 5주기,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1824일’ 난 여전히 ‘기레기’다”
  • 오혁진 기자
  • 승인 2019.04.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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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증권신문 정치사회부-오혁진 기자] 세월호가 침몰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세번째다. 지난 13일부터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시민들은 눈물, 분노 등을 감추지 못했다. 현장에 다녀온 기자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울지 않으려 했으나 울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5주기가 되면서 기자는 ‘양심 고백’을 하고자 한다. 

기자는 10대 때 ‘양아치’였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등의 질이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물건을 훔치기도 한 구제불능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고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사람이었다. 그럴 때마다 한 아이가 나를 말렸다. 2살이 어렸던 그 아이는 내 행동이 옳지 않다며 “정신 차리라”고 했던 또래였다. 이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안산으로 이사를 갔다. 이후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았고 만나지도 못했다. 가족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수업을 듣고 있던 난 뉴스를 보게 됐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였다. 난 “설마 아니겠지”라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연락했지만 전원은 꺼져 있었고 언론은 ‘전원구출’이라는 오보를 냈다. 이후 난 버스를 타고 팽목항으로 향했다. 

2014년 4월 17일 현장에 도착하고 뉴스에 나온 것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슬픔에 젖은 소리와 언론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욕을 퍼붓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날 그 아이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오른손에 손톱이 없었고 많이 차갑지 않았다. 분노가 치밀었으나 울음이 나지 않았다. 현실이 아닐 것이라 눈을 감고 눈물을 참았다. 

그러나 꿈이 아닌 현실이었고 난 울음이 아닌 웃음이 났다. 허망하고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다 같이 한 번 만나자”, “오빠 대학생된 거 축하해! 나도 대학생되면 밥 사줄꺼지?”라며 걱정해주고 희망을 준 사람이었던 이 아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 했구나”라고 뒤늦게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기자가 됐다. ‘세월호가 왜 침몰됐는지’와 ‘당시 정부는 왜 대처를 올바르게 하지 않았는지’ 를 알고 싶어서 공부도 못하는 놈이 나대기 시작했다. 

이후 2015년,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기자가 되고 자만심에 찌들어 살았다. 과거의 각오와 열정을 잃어버리고 10대 때만큼이나 좋지 않은 삶을 살기도 했다. 

제대로 된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쓰레기와 같은 삶을 살아온 듯하다. 2017년 2월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을 만났다. 노 전 부장은 당시 나에게 “너 그렇게 살면 안 되지. 너가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야.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냐”라고 비판했다.

그렇게 노 전 부장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반성의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했다. 과거 내가 쓰레기였음을 반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된지 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난 아직도 세월호에 관한 아무런 비밀도 파헤치지 못했다. 삼성을 포함한 재벌·대기업의 갑질과 비리 등에 대해 보도를 했으나 정작 세월호에 대한 제대로 된 보도를 해본 적이 없다. 

그 아이의 시신이 발견 된지 ‘1824일’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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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아 2019-04-16 18:41:34
오기자님 늘 낮은 곳의 소리를 들으려는 삶,응원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