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앤미' 배우 원근영·최현미,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인터뷰]
'헬렌앤미' 배우 원근영·최현미,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인터뷰]
  • 조나단 기자
  • 승인 2019.0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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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헬렌앤미'의 앤 설리번 역을 맡은 배우 원근영
극단 걸판의 대표이자 작품의 연출, 보드빌 배우, 멀티 역을 맡은 연출가 최현미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의 삶을 한 편의 뮤지컬로...

어둠이 짙게 깔린 세상에서 단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작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그리고 교육자였던 헬렌 켈러는 첫날에는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앤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아름다운 친구들과 아이, 꽃과 풀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노을을 바라보고 싶다. 둘째 날에는 빛나는 별이 함께 하는 밤과 낮이 변하는 기적을 보고 싶다. 셋째 날에는 도시의 전경을 보고 싶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활기찬 표정을 바라보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준 이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극단 걸판은 헬렌 켈러의 일생을 각색해 뮤지컬로 제작했다. 생후 19개월, 갑자기 닥쳐온 시청각 복합장애로 혼란의 시기를 겪는 헬렌 애덤스 켈러와 그의 가족들이 앤 설리번 메이시를 만나는 1886년부터 시작해 소녀에서 학생, 그리고 한 명의 사람으로서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담겼다. 앞서 <춤추는 헬렌 켈러>, <헬렌 그리고 나>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올렸으며, 올해 <헬렌 앤 미>라는 제목과 함께 극단 걸판 만의 장점이 섞인 장편 뮤지컬로 돌아와 첫 무대를 올렸다.

첫 공연 이후 연일 호평을 받고 있는 뮤지컬 <헬렌 앤 미>에서 '앤 설리번' 역할로 분한 뮤지컬 배우 원근영, 극중 극연출과 보드빌 배우 역을 맡은 최현미 연출가를 만나 뮤지컬 <헬렌 앤 미>와 그들의 생각들을 엿보는 시간을 가졌다.

Q 반갑다. 시작에 앞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자면

A 원근영(이하 '원') : 안녕하세요. 저는 인터뷰를 처음으로 하게 된 29살 뮤지컬 배우 원근영입니다.

최현미(이하 '최') : 반갑습니다. 저는 극단 걸판에서 대표와 연출을 맡고 있는 최현미라고 합니다. 2005년도에 창단 멤버들과 함께 극단을 만들어 함께 걸어오고 있습니다.

Q 극단 걸판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최 : 극단 걸판을 처음 만들게 된 것은 학교를 다니면서 들었던 생각 때문이었어요. 안산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고, 그런 만큼 다양한 문화가 있었죠. 이런 재밌는 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극단을 만들게 됐어요. 처음엔 공단을 중심으로 공연을 했었죠. 
그곳에서 공연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그들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제작하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많은 실험극들을 만났죠. 단편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옮기기도 하고 반대로도 하고 있는 극단입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실험극을 제작,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Q <헬렌 앤 미> 어떤 작품인가

원 : 간단하게 보자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 장애를 딛고 사회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되는 이야기죠.

최 :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담긴 작품이에요. 그들을 이용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희극적 요소로 가져왔죠. 돈을 벌기 위해, 명성을 쌓기 위해 '헬렌과 앤'을 이용하고 음해하려는 사람들과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하는 여성의 삶이 담겨있어요. 한 송이 꽃이 활짝 피기 위해선 주변 꽃잎들이 벌어져야 하잖아요. 수많은 꽃잎들이 둘러싸고 있지만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이 손을 잡고 편견을 깨부수고, 세상을 깨우쳐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Q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사건들을 선택하고 정리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최 :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두 분 모두 장수하셨던 분들이죠. 두 분이 만나서 50여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었으니까요. 오랜 기간 함께 많은 일들을 겪어왔기 때문에 작품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특히 사전 조사와 선택에서 오랜 시간을 투자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헬렌 켈러'의 이미지는 말을 못 하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소녀에서 앤 설리번을 만나서 살아온 사람이었다면, 그 이후에 이야기 속에선 사회운동가였으며, FBI의 감시를 받았고,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하는 교육자였기도 했죠. 두 이야기 모두 의미가 있었고,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작품을 보면 보드빌 배우들이 등장하거든요. 헬렌 켈러가 생전에 보드빌 극장에서 오랜 기간 공연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들과 헬렌 켈러가 보드빌 극장에서 어떻게 연기를 했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까라는 상상을 중심으로 스토리 구성을 했어요. 이걸 중심으로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의 아픔과 싸움, 이들을 싸움에 이르게 한 주변의 시선, 치열한 사랑과 우정을 모두 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원 : 저는 어렸을 때 헬렌 켈러 위인전을 읽어본 적이 있어요. 앤 설리번 선생님 또한 그녀를 이끈 굉장한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생님의 이미지는 예의가 있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게 각인이 돼있잖아요. 그런데 설리번 선생님은 괴팍하고, 교육을 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초반 연습 때는 이런 모습에 집중해서 연기에 열중했었어요. 그런데 연습을 이어오면서 이걸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고민을 했고 지금의 캐릭터까지 오게 됐어요. 공연을 보러 오시면 단면적으로 알려진 앤 설리번의 모습과는 또 다른 앤 설리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Q 많은 준비를 했나 보다

원 : 헬렌 켈러와 관련된 자료는 다 읽었어요. 앤 설리번 또한 굉장한 사람인 걸 다시 알게 됐죠. 그래서 단순하게 책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보다는 제가 생각하고 보이는 부분에 더 집중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가슴으로 느껴지는 게 더 많기 때문에, '헬렌 켈러' 역을 맡은 영미 배우를 많이 보고, 느낄 수 있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Q 헬렌 켈러 역을 맡아본다면 어떨까

원 : 사실 이 생각은 정말 많이 했어요.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게 제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어요. 입장하는 부분들부터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무대를 내려갈 때까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친구는 어떻게 움직이고, 표현하는지 알아야 했죠. 

제가 대학 다닐 때 눈이 보이지 않은 학우를 도와주는 일을 했었거든요. 그때 했던 게 이번 작품을 하면서 도움이 됐죠. 그 학우와 움직일 때는 굉장히 작은 터치로 모든 걸 알려줘야 했어요. 그가 이후에도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죠. 그때 기억을 떠올리고, 헬렌 또한 자립심이 강하고 자신의 생각이 뚜렷한 인물이니까 저는 '앤 설리번'으로서 가이드를 잘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을까

최 : 지난해 11월 초연 당시 넓은 극장에서 공연했었거든요. 그 무대에서 연기를 하던 배우들이 이번 작품을 올리면서 소극장으로 넘어오니까 발성이나 대사에서 다들 너무 쩌렁쩌렁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조율하는데 시간을 썼던 것 같아요. 배우들도 프리뷰 공연을 끝내고 본 공연을 시작했어요. 섬세한 부분들에 있어서 아직은 부족한 점이 있어서, 이 부분들을 조정하고 완벽하게 변화시키는데 많이 고민하고 수정에 힘쓰고 있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헬렌 켈러를 맡고 있는 영미 배우가 힘들어하고 있어요. 주변에서 큰 소리가 나도 듣지 않으려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동선과 호흡을 맞추는데 힘들었고 조심하고, 집중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원 : 초반에 수화나 지문자 연습을 엄청 많이 했어요. 재밌는 게 처음에는 대사 없이 소통을 해야 된다는 게 엄청 어렵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소통이 된다는 거예요. 이제 영미 배우랑은 어느 자리를 가더라도 소리 없이 대화를 할 수 있죠.

 

Q <헬렌 앤 미>에서 놓쳐선 안 되는 장면이나 넘버가 있다면?

최 : 저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곡을 선택하고 싶어요. 일단 헬렌 켈러 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넘버거든요. 그래서 이 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곡가님하고 많이 고민했죠. 산문을 텍스트로 옮기고, 또 노래로 옮겨야 하잖아요. 원문에서는 제일 처음 앤 설리번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데, 우리 작품에선 이 순서를 역전시켰어요. 회의를 하면서, 제일 처음 보고 싶은 게 앤 설리번이지만 제일 마지막, 가장 최신의 기억으로 보고 싶지 않겠냐는 질문이 나왔었거든요. 그래서 이미지를 새로 그려봤던 것 같아요.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을 둘러보고, 가장 마지막에 가장 사랑하는 앤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그 얼굴을 기억하는 게, 사람들이 알고왔더라도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었거든요. 그래서 만들었는데, 정말 잘 어울렸어요. 그 노래를 부를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얼굴을 똑바로 마주해요. 헬렌 켈러가 앤 설리번을 바라보고,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감격하죠. 이 장면과 넘버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원 : 저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꼽고 싶어요. 처음에 듣고 엄청 울었어요. 가사와 내용이 너무 이해가 되더라고요. 연출가님이 가사를 너무 잘 써주신 것 같아요. 우리 작품은 말로 하기보다는 그 장면 자체로 느껴지는 이미지와 느낌, 감정이 크거든요. 말로 했을 때 감동이 덜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 장면은 또 다른 느낌이거든요. 헬렌과 앤이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는데 그 순간이 되자마자 눈물이 나요. 말하면서도 조금 울컥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부분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도 우리가 하고 있는 생각과 표현을 가장 잘 받아들여주시고, 느껴주시는 부분인 것 같아요.

Q 앞서 2005년 처음 극단을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배우로서도 많은 작품들을 해온 것 같다(최현미 연출)

최 : 걸판을 만든 건 그때 만들면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5명이서 창단했는데, 사실 연기를 전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죠. 그냥 한 번 해보자, 뭐든지 해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죠. 연기도 배우고 극작 수업도 받고, 동아리를 하면서 모인 사람들이었거든요. 5명 전부다 공연문화 쪽에 연계된 부분들이 없어서 어떠한 선입견이 없었어요. 그래서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이 부분들에 있어서 많이 노력하다 보니 커리어가 쌓인 거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운영을 해왔어요. 경력이 쌓이고 눈에 꼽을만한 성과도 내면서 공연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때 전업하게 됐죠. 그렇게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Q 처음 시작했을 때랑 지금이랑 달라진 점이 있을까

최 : 전엔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많이 알았다면, 지금은 연극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죠. 그리고 공연을 보시는 관객분들도 알게 됐고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 같아요.

Q 공연문화계 '여성 캐릭터'의 변화를 알고 있나

최 : 다들 많이 답답했었다는 걸 알게 됐죠. 여성 캐릭터들이 극을 이끌어나갈 힘이 생긴 건 정말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항상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 누나 역할들이었죠. 물론 그 역할들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에요. 저를 발전하게 했던 배역들이었고 누구보다 소중하고 고마운 친구들이죠. 이런 부분들이 정형화되다 보니까 여성 배역들이 소외됐던 것 같아요. 남자와 여자라고 구분을 두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서로의 호흡이 다르기 때문에 접근 또한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느꼈을 때쯤인가 사람들이 모이는 술자리나 연습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너무 여배우들이 할 게 없는 게 아니냐. 재미가 없다. 이름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요. 이게 시간이 지나니까 매너리즘에도 빠지고 연극을 하기 싫어지기까지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새로 대표직을 맡으면서 단원들, 창단 멤버들과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이야기를 하다가 만들게 된 게 <앤 anne>이라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평소에 눈여겨봤던 여배우들에게 러브콜을 날렸어요. 배우들도 흔쾌히 오케이를 해서 처음으로 무대를 올리게 됐죠. 공연을 하고 나서 정말 많은 분들이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해주셔서 정말 놀랐어요. 여자 때창을 들어본 게 처음이라는 후기도 있었죠. 그런 걸 보다 보니까 다들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구나. 모두가 견뎌내고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운이 좋게도 이후에도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Q 언제 처음 연기를 시작했나. (원근영 배우)

원 : 사실 저는 연출 전공이었어요. (최: 정말?) 네. 연출 전공으로 들어가서 연출 공부를 했죠.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면 배우가 필요하잖아요. 배우가 필요한데 사람이 없어서 제가 연기까지 하게 됐었어요. 그런 식으로 차츰차츰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연기를 수업을 통해 접하기보다는 연출님이랑 동료 배우들의 도움이 많았어요.

Q 처음 올린 작품은?

원 : 제 첫 데뷔작은 <코스프레 파파>라는 작품이에요. 제가 서울예대생인데, 안산시에서 좋게 봐주셔서 외부에서 올리게 됐었어요. 제 첫 작품이 그 작품이에요.

최 : 제가 조금 덧붙이자면, 이제 3년째 이어오고 있는 행사가 있어요. 4월 연극제라고 하는데, 4월마다 3주 정도의 기간을 두고 연극과 마당극, 뮤지컬 등을 올리거든요. 올해도 맡게 됐는데, 첫해에 <코스프레 파파>라는 작품이 올라왔었어요. 그 작품의 작가를 알고 있어서 기대하고 공연을 관람했죠. 그런데 원근영이라는 배우가 눈에 띄더라고요. 저런 배우가 있구나. 나중에 같이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앤>이라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오디션을 봤었는데, 그때 왔더라고요. 물론 이때도 엄청 잘해서 캐스팅하게 됐었어요. 안산에서 처음 봤었습니다. 객석에서 무대 위에 있는 배우를요. 연출을 전공했다고 했는데 이번에 처음 알게 돼서 놀랍네요. 전 정말 배우인 줄 알았어요.(웃음)

 

Q 내가 배우하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가 있을까

원 : 저는 아직 그런 순간은 오지 않은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이런 순간이 얼른 왔으면 좋겠네요. 제가 원래 하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만족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뭔가를 하나 해도 부족한 느낌이 들어요. 저 자신한테 제일 엄격한 스타일이죠. 그래서 아직 이런 느낌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최 : 이런 질문은 많이 받아봤어요. 얼마 전에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질문이 나왔었죠. 생각을 해봤는데, 무대 위에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고, 배우들과 서로 눈을 마주칠 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눈을 마주친다는 게 정말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하잖아요. 누군가와는 싸움이 날 수도 있고, 사랑이 생길 수도 있는 것처럼요. 눈에 담기는 많은 이야기들, 눈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좋아해요. 배우가, 연출가가 되지 않았다면 사람들과 눈도 안 마주치고 외롭게 살지 않았을 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올해 계획이나 목표가 있을까

원 : 제가 사실 일을 열심히 하면 그때 그 시기에 대한 생각을 잘 못하거든요. 일기를 쓰지 않는 한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래서 일에 치여서 내 생활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최 : 일단 올해 기획하고 있는 일들이 있어요. 국내외 협력 작업이나 수업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말에 <앤>이라는 작품을 다시 한 번 올려볼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일단 이 정도 말할 수 있겠네요. 아 그리고 작품을 다시 올리게 된다면 배우들이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지급해줬으면 해요. 이게 제일 큰 목표인 것 같습니다. 

Q 배우들의 페이,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최 : 맞아요. <헬렌 앤 미>도 그렇고, <앤>이라는 작품도 많은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가요. 그런데 페이 지불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챙겨줄 수 없거든요. 주위에서 수익구조를 내려면 사람들을 더 줄여야 된다고 말씀하세요. 유명한 배우들 몇 명만 나와서 만들어내는 화음이 좋은 점이 분명 있어요.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9명~10명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화음, 에너지는 이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올해 준비 중인 <앤>에서도 지난해와 같이 더블, 트리플 배우들이 함께할 것 같은데 이 친구들이 배우 개런티를 받으면서 활동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Q 배우를 꿈꾸는, 연출가를 꿈꾸는 학생 혹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최 : 사실 지금 같은 시대에선 정말 특별한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모든 일이 다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해주고 싶은 말은,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게 배우고 연출이고, 극작이라면 일단 그 목표를 끝까지 좋아할 수 있게 노력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힘들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접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좋아서 하다 보면 길도 보이고 사람도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원 : 제가 노래 레슨도 하고 있어요. 저한테 배우는 학생분들 중에서 직장에 다니시고 있으면서도 뮤지컬을 하기 위해서 노래를 배우시는 분들도 있고, 정말 좋은 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는데 배우가 되고 싶어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사실 저 또한 마음 가는 그대로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여망으로 가득 찬 마음이 변하지 않고 계속됐으면 해요. 불이 상황에 따라 커질 때도 있고, 불씨가 꺼져가는 상황도 있잖아요. 계속 열정, 열망을 가지고 있다 보면 꺼져가는 불씨 또한 다시 커질 거라고 생각해요. 

 

Q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원 : 저는 개인적으로 극단 걸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 오디션을 봤을 때도 그렇고 지금 공연을 하면서도 느끼고 있거든요. 다른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우리 공연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불씨는 키울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시간이 되시면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최 : 이런 질문은 처음이라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네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음…. 사람의 삶에는 다 접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앤>이라는 작품 속에 빨간 머리를 가지고 있는 소녀 앤도 그렇고, <헬렌 앤 미>에서 나오는 헬렌 켈러 또한 접점들이 존재하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다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누구나 다 접점을 가지고 있어요. 힘든 부분이 있으면 다른 부분에는 기쁘고 행복한 부분들이 있죠. 우리 작품은 그러한 부분들을 다 보여주고 있어요. 상황에 따라서 그 깊이가 다를 수 있지만, 분명 '내가 사는 이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 갈 수 있는 공연이라고 자부해요. 그러니 오늘 하루 지친다는 생각이 들 때, 공연을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공연이 아니더라도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공연을 보러 온다면 사람 사는 느낌을 생생히 느끼실 수 있을 거니까.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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