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배우 최연우 "자책했고, 아파했다. 나를 사랑하기 전까지…"
[인터뷰②] 배우 최연우 "자책했고, 아파했다. 나를 사랑하기 전까지…"
  • 조나단 기자
  • 승인 2019.0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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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와 뮤지컬의 절묘한 조화로 연일 호평을 받고 있는 뮤지컬 '아랑가'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고 후회하고 아파했던, 그러나 지금은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배우가 된 최연우와의 인터뷰.

앞서 진행된 인터뷰 ①에서 이어지는 인터뷰입니다. 

 

Q 10년이 넘는 시간을 배우로 자리 잡아왔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 딱 10년째가 됐을 때, '나 정말 잘 버텼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23살 때 처음 공연에 올라갔을 때 선배님들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강해져야 된다'고요. 그러면 잘 버틸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작년에 내가 얼마큼 강해졌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잘 생각해보면 강해지기보다는 조금 무뎌진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제가 욕심이 있어서 이런 일도 해보고 싶고, 또 저런 일도 해보고 싶어서 많이 욕심을 부렸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내가 욕심을 부린 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네가 어렸을 때부터 이일을 해왔다는 게 보인다. 티가 난다'라는 말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정도껏', '중간'을 찾았던 것 같아요. 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어깨 높이의 담을 세운 거죠.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하는데, 상처받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이렇게 바뀐 것 같아요. 적정선...이라는 걸 1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오면서 만들어온 거죠.

Q 배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사실 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안 했었어요. 제가 5살 때부터 운동을 해서 저는 제가 크면 여군이나 육사를 가겠구나 생각했었죠. 그런데 중학생 때까지 키가 안 크는 거예요. 제가 160이거든요. 그런데 제한이 있어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꿈을 접고, 시범단을 하면서 경호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제가 춤에 빠졌어요. 춤이 너무 재미가 있어서 매일 춤만 추고 다녔었죠. 고등학생이 될 때 예술고등학교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어디를 갈 수 있을까 알아보니까 무용과랑 연극 영화과 같은 게 있더라고요. 제가 발레를 배운 것도 아니어서 연극 영화과 시험을 봤는데 붙어서 가게 됐어요. 처음에 관장님이 한탄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해왔는데 아쉽지 않느냐고, 네가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에 바람이 분거다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관장님 나도 나를 모르겠으니 일단 다녀보고 아니다 싶으면 올게요라고 말했었죠. 그런데 막상 가서 연기라는 걸 배우고 해보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때부터 흥미를 느껴서 시작한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는 과정에서도 운이 좋게 한예종에 붙어서 진학을 하게 됐고, 가서 연극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죠. 사실 이때 뮤지컬보다 연극, 배역의 연기에 빠졌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뮤지컬 오디션을 보게 돼서 하게 됐고, 운 좋게도 그 이후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죠. 처음에는 내가 이걸 해도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저한테 직접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내가 이걸 다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이런 기회가 왔으니 정말 열심히 해보자, 실망시키지 말자라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그 다짐과 노력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죠.

 

Q 그럼 배우를 하기 잘했다고 느꼈던 적은 없나

- 있어요. 저는 사실 커튼콜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소극장이나 중극장 같은 경우에는 무대와 객석이 가까우니까 관객분들의 눈을 다 볼 수 있거든요.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커튼콜을 하면서 무대 위에 올라서 관객들을 바라볼 때, 그들이 내뱉는 호흡과 눈빛이 '아 내가 오늘 무대를 잘 해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줘요. 그리고 이런 모든 이미지가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죠. 그래서 '내가 이 일 아니면 뭘 하겠나'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Q 최연우라는 배우를 찾아보면,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사의 찬미>라는 작품이 많이 거론된다.

-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해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라는 작품은 제가 쇼케이스 때부터 부탁을 받아왔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초연 때부터 쭉 봐왔던 작품이죠. 쇼케이스 같은 경우에는 사정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초연 공연이 올라간다고 해서 직접 찾아가서 봤죠. 그런데 그 배역이 멀티 역할이거든요. 멀티는 정말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여신'이라는 게... 여신이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이 엄청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표님한테 정말 좋은 작품에 좋은 역할인데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응원의 마음으로 남겠다고 말을 했었거든요. 대표님은 나중에 네가 해야 된다고 답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초연이 지나가고 재연, 삼연까지 지나갔죠. 그리고 제가 딱 서른이 되던 해에 다시 제안이 들어왔었어요. 거부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겠다고 말했고, 리딩을 가졌죠. 그런데 역시나... 제가 직접 해보니 쉽지가 않더라고요. 아쉬움이 많이 남긴 했지만 참여하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따뜻한 공연이었어요. 다음에도 다시 저를 불러주셔서 하겠다고 말하고 연습실에 도착했는데 저 빼고 다 새로운 캐스트였어요. 그런데 정말 다들 너~무 열심히 작품을 연습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했었어요. 이때는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1여 년 동안 공연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공연 내내 행복했었어요. 아 이건 내가 죽을 때까지 좋았다고 할 수 있는 공연이구나 싶었죠.

그리고 <사의 찬미>라는 작품은 지금까지 해왔던 캐릭터들과 상반된 역할이어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기존에 제가 맡았던 배역의 경우 드레스를 입거나 한복, 어여쁜 분장, 나긋한 목소리를 필요로 했다면, 이 작품의 경우에는 강직하고 할 말은 다 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저한테도 새로운 도전이었죠. 그런데 공연을 봐주시는 관객분들한테도 새로웠었나 봐요. 그래서 화자가 많이 된 것 같아요. 사실 제 성격도 이 작품 속 '심덕'과 가까워요. 거짓말을 잘 못하고, 할 말은 다 하는. 그래서 지인들이 공연을 보고 너무 웃더라고요. 나랑 똑같다고요. 그리고 사실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마니아분들이 많아서 걱정도 많이 하고 부담감을 느꼈던 작품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차츰차츰 마니아 분들도 저의 매력을 찾아주시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생겨서 저도 힘을 받았던 것 같아요.

 

Q 아쉬웠던 배역은 없나

- 있어요. 제가 25살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작품의 디벨롭 과정에 있는 공연을 했었는데, 이때가 '최연우'라는 사람이 제일 존재감이 없을 때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24살 때 학교를 졸업하면서 배우로서 자리를 잡아가는데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었거든요. 배우로서 제일 정신이 없었던 때에요. 25살 딱 됐을 때, 롯데와 태희는 저를 더 정신없이 만들었어요. 나름대로 배우로서 잘해보고 싶었을 때죠. 원래 작품 속 인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심을 잡지 않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요. 조언을 무조건 수용해서도 안되고, 모든 조언을 다 내쳐서도 안돼요. 그런데 그때는 이런 것들을 다 모른 채로 하라는 걸 다 듣고 그대로 했었어요. 남이 하라는 대로만 다 했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제일 없었던 해였고, 나이였다고 말할 수 있죠. 가장 속상하고 아쉬워요. 기회가 다시 주워진다면, 이 아쉬움을 풀고 나만의 롯데, 최연우의 롯데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Q 욕심나는 작품이나 배역은?

- 사실 욕심나는 작품이나 배역은 없어요. 욕심이 나를 추하게 만든다는 것들이 저를 많이 지배하고 있어서요. 그래서 사실 '너 왜 욕망이 없냐'라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작품에 캐스팅되고 내가 그 배역을 맡는다면 당연히 완벽하게 해내야 된다는 욕심은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배우분들이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행동을 보여주고 있죠. 

 

Q 쉬는 날은 주로 뭘 하는지, 취미생활이 있나?

- 제가 사실은 집순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집을 리모델링하는 재미에 빠졌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집안에 있는 가구부터 침구류, 커튼까지 다양한 걸 찾아보고 만들고, 바꾸는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조용히 있는 것 같아요. 집에서. 아무래도 목을 많이 쓰다 보니까 집에서는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정말 하나도 없거든요. 그래서 tv를 틀어도 무음으로 바꿔두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봐요. 이들은 왜 웃고 있고, 왜 화를 내는가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고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보기도 하고요. 

Q 내가 생각하는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나 신념은

- 작년부터 생각해왔던 부분이 있어요. 같이 공연을 올렸던 배우님이 해주신 말이었는데, '나는 네가 되게 욕심이 많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너는 배려를 많이 하는 배우인 것 같다'라는 말이었어요. 이 부분도 포함해서 들었던 생각인데, 저는 저한테 관대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뭔가 실수를 해도 제가 저한테 질타를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조금 마음이 바뀌면서 나를 사랑하는 것을 해보고 있어요. 이전까지 저의 신념이라고 하면 엄마였었거든요. 제 삶의 축은 엄마,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말들이었어요. 실망시켜드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부담감을 느끼고, 자책했죠. 그래도 엄마이기 때문에, 제 삶에 기반이도 됐었어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배려했죠. 그런데 나를 위한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쌓이고 쌓여서 더 크게 저를 내치더라고요. 그래서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사랑하려고 하는 거죠.

Q 먼저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어린 친구들에게 혹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혹은 조언이 있을까

- 저는 누구보고 '힘내라', '하면 될 거야' 이런 말을 못 해주겠어요. 많은 시간을 지나오다 보니까 내가 나를 아는 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다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기를 싫어하지만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것도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나를 알아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배우도 그렇고 연출진, 스태프 모두 다 정말 사연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거든요. 법대를 다니다가, 약사를 하다가 온 분들도 있어요. 왜 이 판까지 오게 됐냐고 물어보면 행복을 찾아왔다고들 말해요. 부모님이 하라고 해서 갔는데 너무 재미가 없다고 말이죠. 그래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오게 됐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엄청 놀라기도 했는데,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사람은 정말 큰 용기를 낸 거거든요. 그래서 해주고 싶은 말은, 배우를 평생 하고 싶으냐는 거예요. 단순하게 1~2년,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5년을 할 거면 당장 접고 다른 일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5년이 아니라 10년 그리고 20년, 죽을 때까지 배우로 남고 싶으면 버텨라. 버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가 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게, 돈을 줄 수는 없지만 밥은 사줄 수 있거든요.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지만, 버티고 버티면 결국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이 말은 꼭 나왔으면 한다

- 일단 제가 나오고 있는 우리 뮤지컬 <아랑가>의 관한 이야기는 꼭 나와야겠죠. 사람들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좋았던 분도 있고, 별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제가 장담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서 보실만한 가치가 있는 공연인 건 명백한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작품이 잘 돼서 뮤지컬과 판소리, 작창 등에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 질문이다. 만약 지금의 이 인터뷰를 40살의 내가 읽는다면, 40대가 된 나에게 뭐라고 말할까

- 최연우, 너 열심히 살았구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들 보면 너무 창피해요. 기사를 읽어보고 나서도 손과 발에 주먹을 쥘 것 같은데, 마흔이 돼서 읽는다면 정말 어떨지 상상이 안되네요.(웃음) 그런 인터뷰는 아니어야 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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