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평 시사논평] 21세기의 ‘아 목동아’-브렉시트의 걸림돌 북아일랜드
[양문평 시사논평] 21세기의 ‘아 목동아’-브렉시트의 걸림돌 북아일랜드
  • 양문평 고문
  • 승인 201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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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세계의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던 ’북아일랜드‘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물론 그 사유는 20세기의 그것과 다르다. 아니, 어찌 보면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시 매스컴을 장식하고있다.

20세기의 요란했던 북아일랜드 기사는 그 곳이 영국에 속하는 것을 저지하려던 아일랜드 민족주의 무장 세력인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테러가 주종이었다. 그래서 조용한 서유럽을 시끄럽게 했다. 2차 대전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유럽 대륙은 막상 대전이 끝나자 어느 대륙보다도 조용하고 안전한 대륙이 돼 있었다. 특히 발칸반도를 포함한 동유럽과 떨어져 있는 서유럽은 평온했다. 따라서 1969년부터 1998년의 ‘성 금요일 협정(벨파스트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기 까지 서유럽에서 그 정적을 깨는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볼 것도 없이 북아일랜드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이었다.

그 소요가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에 이루어진 벨파스트 평화협정으로 진정되기 무섭게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라는 말이 나오면서 북아일랜드가 또 매스컴을 타고 있다. 바로 북아일랜드가 걸림돌이 돼서 영국이 EU를 빠져 나오기가 어렵게 돼서다. 브렉시트가 이루어지면 영국에 속하는 북아일랜드는 EU의 비회원국이 되고 아일랜드는 회원국이어서 완전히 딴 나라 국경처럼 세관 등이 설립돼야 한다. 그것은 358㎞의 국경에 200개의 도로가 뚫려 있어서 한 나라처럼 왕래하던 아일랜드로써는 못 견딜 일이다.

예를 들어 양조장은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있고 상품포장 공장은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둔 세계적 명성의 주류기업인 '기네스(Guinness)'가 겪을 곤경은 짐작 할만하다. 만일 브렉시트로 국경출입 검문이 다시 시작돼 통관절차 등을 겪을 경우 기네스 사는 연간 130만 유로 이상의 비용이 추가되며 이 경우 기네스 맥주를 비롯한 기네스의 제품들은 가격을 올려야 함으로 경쟁력을 잃을 게 뻔하다.

그런 기업들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 무수히 널려있다. 따라서 지금은 아일랜드와 영국 주민들이 북아일랜드를 두고 적대하기 보다는 협력하는 분위기다. 물론 양측 주민들이 모두 합심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지난 21일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에서 일어난 차량폭탄 테러가 이를 말해준다. 이 사건은 IRA가운데서도 급진파로 벨파스트 평화협정에 불복하는 '신(新) IRA'(NIRA)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들은 IRA에서도 강경파들로써 벨파스트 평화협정에 동의한 IRA의 노선에 반기를 든 채 산발적인 저항을 해왔다. 그러다 브렉시트로 북아일랜드의 거취가 또 다시 논란이 되자 활동을 강화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보편적인 전망이다.

우선 아일랜드 자체가 벨파스트 협정 이후 20여 년 동안 크게 바뀌었다. 지난해 IMF가 작성한 국가별 1인당 GDP 순위를 보면 아일랜드는 8만641 달러로 5위를 기록한 반면 영국은 4만4177달러로 21위를 기록했다.

소득만 올라간 것이 아니다. 10여 년 전 영국의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111개국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아일랜드를 꼽았고 영국은 29위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 보도는 새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800년 동안이나 아일랜드를 착취하고 인종청소를 떠올리게 하던 학살과 박해를 일삼았던 지난날의 대영제국과 그 제국에 핍박받던 작고 쪼개진 섬나라의 위상이 역전돼서다. 보도에 접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새삼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전원과 그 곳서 뛰노는 양떼가 떠오르며 ‘아 목동아’의 선율이 들려오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새삼 ‘아 목동아’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노래는 너무나 아일랜드 적인 노래라는 데 놀란다. 그 노래의 선율이 아일랜드 인들의 정서에 너무 잘 어울린다는 말이 아니다. 그 노래 자체가 생겨나 세계적인 가요로 유명해지는 과정 등이 아일랜드의 역사를 닮은 데가 있는 것이다. 그 노래는 원래 제목이 ‘아 목동아’가 아니고 전원의 서정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북아일랜드의 2번째 도시 런던데리에서 전해오는 민요로 제목도 ‘런던데리의 노래(Londonderry Air)’였다.

그 노래는 “당신의 가슴을 장식하는 능금꽃이 되고 싶다”는 사랑의 노래였다. 그 곡이 1913년 영국의 변호사이자 작사자인 프레데릭 에드워드 웨덜리가 ‘대니 보이(Danny Boy)’라는 제목으로 작사한 노래말과 결합됐다. 그 노래말은 아들(대니)이 군대에 입대해 작별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아 목동아’의 원곡은 ‘런던데리 에어’와 ‘대니 보이’ 등 두 가지가 혼용돼 헷갈리게 한다.

따라서 ‘아 목동아’는 <아 목동들의 피리 소리들은/ 산골짝마다 흘러나오고 …>라는 정겨운 장면으로 시작되나 ‘대니 보이’에서의 그 ‘피리 소리’는 젊은이들을 징집하는 백파이프 소리다. 그 소리가 젊은이들을 쫓아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From glen to glen)에서 울려 퍼지니 얼마나 비정한가.

이 노래를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한 테너 존 매코맥이 레코드에 취입하여 세계적인 명곡이 됐다. 원래 웨덜리는 아일랜드에 가본 적도 없었고 따라서 ‘대니 보이’의 주인공도 아일랜드의 젊은이가 아니었다. 그는 다른 목적으로 ‘대니 보이’를 작사했다가 우연히 ‘런던데리 에어’의 곡조를 접하자 이를 결합시킨 것이다. 이 노래는 영국인이 북아일랜드 민요의 곡에 가사를 써서 아일랜드 가수가 노래를 불러 유명해진 것이다.

그 영국과 북아일랜드 그리고 아일랜드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노래야 말로 아일랜드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하지 않은가. 되돌아보면 아일랜드와 영국의 역사는 ‘피어린 800년’이라 할 수 있으나 그 동안 그들은 싸움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뿐 아니라 영국 귀속을 주장하는 북아일랜드의 신교도들이 항상 영국을 선호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도 한 때 ‘아일랜드 인’으로써 아일랜드의 토착 구교도들과 공동전선을 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것은 영국서 미국에 건너간 이민자들이 독립운동을 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아일랜드가 높은 경제수준에 오른 것도 영국의 직간접 영향을 떼놓고 말하기 어렵다. 기네스 맥주가 그렇듯 두 나라 그리고 두 민족은 얽혀서 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존해 왔다. 그것은 아일랜드의 찬란한 문학이 말해 준다. 그 작은 나라에서 4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영국의 문학이라는 무대가 없이 가능했을까?

아일랜드 문인들은 아일랜드 인의 처지를 반영하듯 냉소적인 표현으로 유명하다. 특히 영국을 대상으로 시니컬한 독설을 날렸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만약 아일랜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영국인들은 아일랜드를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우월감을 나타내려면 못난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 대상이 아일랜드라는 자학적인 표현이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영국의 유명한 언론인 겸 소설가 G.K.체스터튼과 나눈 대화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몸이 뚱뚱한 편인 체스터튼이 몸이 여윈 쇼에게 “자네를 보면 영국이 심각한 기근에 빠졌음을 알 것 같네”하고 말하자 쇼가 “자네를 보면 그 원인이 자네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될 걸세”라고 응수했다. 그것은 뚱뚱이와 홀쭉이 문인들이 흔히 나눌만한 대화임에도 영국이 아일랜드를 수탈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던 시대여서 색다른 의미로 들렸고 그것이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였다. 그러나 막상 오스카 와일드건 버나드 쇼건 그들의 민족주의를 고집해 게일어로 집필했다면 그런 어록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선지 두 나라는 브렉시트 국면에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장벽이 설치되지 않도록 2인3각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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