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 직장의신 제7화 아내가둘, 아무도 몰랐다
[기업소설] 직장의신 제7화 아내가둘, 아무도 몰랐다
  • 이상우 대기자
  • 승인 2019.0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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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공작소 지음

 

천기주 부장은 10여 년 전 이 회사에 입사할 때 결혼했었다. 지금 중학교 일학년에 다니는 큰 딸이 있고 그 밑으로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들이 있다.

다섯 식구가 서초동 벼락부자들이 사는 오십 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에 기상천외한 일이 생겼다.

아파트촌에 매일처럼 다니는 화장품 외판원이 그 날도 천기주 부장 부인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아파트에 찾아왔다. 매일 화장품을 사지 않더라도 한참 동안 앉아서 수다를 떨다가 가고는 했기 때문에 그날도 신나게 다른 집 흉을 보고 있었다. 한참 떠들던 화장품 아줌마가 갑자기 말을 뚝 그치고 화장대 위에 놓여 있는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

이게 누구예요?”

화장대 위에 있는 사진의 주인공을 가리켰다. 지난여름 제주도에 놀러갔다가 부부가 용바위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물으나 마나 그것은 천기주 부장과 그 아내였다.

누군 누구야 우리집 여보지. 어때 미남이지요? 젊었을 때는 꽤 괜찮은 오빠였지. 요즘은 살이쪄서...”

? 이 사람이 애기 아빠예요.”

화장품 아줌마는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니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애아빠를 아세요?”

분명히 그 사람인데...”

아줌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사람이라뇨?”

이번에는 천 부장 아내가 의혹으로 가득 찼다.

분명히 그 사람이예요. 이 옆 삼미아파트 있지요?”

삼미?”

왜 쇼핑센터 뒷쪽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 말예요.”

그래서요?”

그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네 집에서 저 사람을 봤걸랑요.”

뭐라구요?”

분명히 저 아저씨가 그 집에 잠옷 바람으로 있었어요.”

에이 무슨 쓸데없는 소리. 우리 애 아빠와 비슷한 사람도 더러 있겠지요.”

 

천부장 아내는 웃었다.

 

아녜요. 분명히 저 사람이예요.”

쓸데없는 소리 마세요. 눈썰미가 그래 가지고 어떻게 장사를 하세요.”

 

아줌마는 웃어 넘겼다. 그러나 화장품 아줌마가 가고 난 뒤 그 이야기가 걸려서 영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점점 의혹이 커졌다. 그이가 혹시 두 집 살림을 차려놓고 나 몰래 드나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잔뜩 일었다.

그러나 결혼 한 이후 거의 몇 번을 빼고는 외박을 한 일이 없었다. 가정에 충실한 모범 가장이라고 이름이 나있었다.

아줌마는 결혼이후 한 번도 그를 의심해 본 일이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아줌마는 천 부장에게 이것저것을 캐물어 보았으나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가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호적등본을 떼 오라는 것이었다.

 

본적지가 있는 명륜동에 가서 호적등본을 떼 가지고 오다가 무심코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장녀와 두 아들 외에 또 한 아이의 이름이 호적에 올려져 있었다. 출생 연도로 보아 나이가 7.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 본 아이인데 분명히 자기와 남편 사이의 3남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아주머니는 정신이 아득했다. 며칠 전 화장품 아줌마가 하든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아주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회사로 달려가 남편을 불러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호적등본을 내밀었다.

 

분명히 말해요. 이 아이가 누구예요? 못 대면 나하고 당신하고 오늘 죽읍시다!”

 

거품을 물고 악을 쓰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화장품 아줌마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배신감에 가득한 아주머니는 더 참지 못하고 정신병원으로 가는 신세가 되었다.

 

회사에는 이 두 가지 이야기로 한동안 화제가 그치지 않았다.

 

민지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회사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돌하고 건방진 행동으로 맹랑한 여자라는 딱지가 붙는가 하면, 김영기 부사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스캔들이 나돌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한 요즈음은 동생에게 콩팥 하나를 떼 주는 갸륵한 우애의 여성으로 비쳐져 화제가 되고 있다.

 

더구나 천기주 자금부장의 이중생활이 화제에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조민지의 인간성이 평가를 받게 되었다.

 

조민지는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수완을 발휘해 윗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래 꾸준히 주가가 올라가고 있었다.

 

조민지 자신도 또한 평범한 여사원으로 직장 생활을 끝낸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여성들이 흔히 걷는 직장의 길. 우선 신입 사원 때는 사무실의 꽃 노릇이나 하면서 부장님 차장님 선배들에게 커피나 뽑아다 주고, 이것저것 하찮은 심부름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낸다. 남자 사원들과 얼굴이 익어 조금 무관한 사이가 되면 짓궂게 찍찍 내 뱉는 외설스런 농담이나 받아들이면서 거북한 책상머리를 지킨다. 조금 더 고참이 되면 시집을 안 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농담에 시달리면서 남자 사원들을 따라 퇴근 뒤의 치맥 카페도 드나들게 된다. 때로는 혀꼬부러진 성희롱 소리를 연상 내뱉는 취한 남자사원들과 밤늦게 포장마차에도 가게 된다. 그렇다고 성희롱으로 번번히 소송을 걸 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곤혹스러운 세월을 보내다가 이웃의 노총각 사원에게 꾐을 당해 몸과 마음을 몽땅 바치고 별로 마음에도 없는 시집을 가게 된다.

 

때로는 거래처의 간지 잡히는 남자와 밀어를 속삭이며 장래를 약속하게 되는데, 이 경우는 그래도 행운을 탄 경우에 속한다.

 

이것도 저것도 이루지 못하면 삼십이 넘도록 사귀자는 남자 한 명도 못 만나고 사무실의 능구렁이가 되어 남자 사원의 시선에서 부터 점점 벗어나게 된다.

 

이런 경우가 여사원들이 대체로 걸어가는 길이란 것을 조민지는 선배들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그런 평범한 선배들의 길을 가지 않을 것야. 나는 특별한 길을 택할 거야.’

 

조민지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거울을 보며 이렇게 다짐했다. 그러한 그 결심이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동생 순자 때문에 흔들렸다. 그러나 조민지는 곧 그 늪에서 헤어났다. 이 회사는 원래 물비누와 가루비누를 만들면서 시작한 소기업이 성공하여 이제는 그룹으로까지 자란 입지전적 회장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자동차 제조가 주력 기업이 되고 전자, 건설, 금융 등 30여개 회사를 거느린 재벌로 발전했다.

 

영종그룹.

 

그러나 물비누 공장에서 일어난 기업이기 때문에 회장은 이 영종유지 회사를 끔찍이 생각하고 있었다.

 

출세한 아들이 초라한 시골 고향집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런 이유로 영종유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원을 다른 계열사로 옮겨 줄 때는 상당한 대우를 해 주었다. 보잘 것 없는 화장비누나 만드는 회사지만 이 회사 직원은 나름대로 상당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영종유지가 세제파동 때문에 경영이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세제, 즉 빨래할 때 쓰는 가루비누가 강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된다고 하여 소비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규제가 심하게 되었다. 샴프 종류도 이 파동을 겪은 뒤 겨우 소생하게 되었는데 다시 세제충격을 받게 되자 회사는 비상 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제품을 대량으로 소화해 활로를 찾아야할 형편이었다.

 

그 중에도 강원그룹에 비누를 일년내내 납품하는 길을 뚫기 위해 전 회사가 동원되다시피하고 있었다. 강원그룹은 군부대에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대행회사였다.

 

조민지는 이 일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조민지는 납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 그룹의 회장에게 달렸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쟁사가 여러 개 있지만 제품은 모두 비슷비슷한 것이고, 가격도 얼마든지 조정이 된다. 그러니까 회장이 어느 회사로 하자는 한 마디만 하면 끝나는 것이 재벌회사들의 대체적인 생리였다.

 

조민지는 강원그룹 회장을 공략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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