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평 시사논평] 트럼프가 시리아서 철군한 까닭은
[양문평 시사논평] 트럼프가 시리아서 철군한 까닭은
  • 양문평 고문
  • 승인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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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시리아 철군은 지금까지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의 행적 가운데서도 압권이다. 지난 1년간 세계를 줄곧 놀라게 해 올해를 사실상 ‘트럼프의 해’로 그려온 그가 드디어 연말을 맞아 화룡점정을 한 모양새다. 그가 지금까지는 대체로 ‘남’을 놀라게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미국을 놀라게 했고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보다 공화당을 더 놀라게 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한다고 했을 때는 미국인들도 놀랐지만 그보다는 멕시코 인들이나 라틴아메리카 인들이 더 놀라는 기색이었다. 지난해 6월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을 때도 미국보다는 세계가 더 놀라고 분개했다. 그래서 30대의 임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70대의 트럼프에게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지구를 위하여 우리 모두가 서로 책임을 나누어 져야합니다”라며 준엄하게 꾸짖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외국보다 미국이 더 놀라는 기색이다. 미국에서도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이 더 놀라고 공화당보다도 트럼프의 가족 같은 내각이 더 놀라는 모양새다. 바로 그 주무장관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사표를 낸 것이 그렇다. 실은 철군 그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11년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함으로써 IS가 성장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2014년에 다시 이라크에 미군을 파병함으로써 자신의 조치가 실책이었음을 확인한 셈이었다.

이번 발표에서 놀라운 점은 그런 철군이 오랜 동안 갑론을박을 거치는 통례를 벗어나 마치 2차 대전의 ‘덩케르크 철수작전’ 같은 작전이라도 펴듯 깜짝 발표된 점이다. 그 과정에서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진지한 논의를 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트럼프가 “미국은 중동의 경찰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다.

물론 트럼프는 전에도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종종 말해왔다. 실은 다른 미국인 고위층들도 종종 그 비슷한 말은 해왔다.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외국인들이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냐?”며 시비조로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트럼프가 그런 투로 말을 해도 막말을 좋아하는 그가 그저 해본 소리 정도로 받아들였던 세계는 그것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자 너무 놀랐다. 따라서 미국은 외형상 세계의 경찰을 포기한 것이고 그것은 하나의 시대적 패러다임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세계를 지배해온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라는 패러다임을 재검토해야 할 판이어서다.

로마가 그 막강한 군사력으로 드넓은 로마 제국에 평화를 유지했던 것이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라면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의 평화’가 지배해 왔음을 부정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물론 ‘팍스 로마나’로 일컬어지는 BC27년부터 AD180년의 기간에도 전쟁과 분쟁이 없었던 것이 아니듯 팍스 아메리카나에도 논란거리는 많다.

많은 사람들은 아예 그 ‘Pax(평화)’라는 말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것은 미국이 평화를 지켜왔다기보다는 오히려 멀쩡한 나라를 쿠데타 등으로 쓰러뜨리거나 노골적인 침략을 해서 세계 평화를 어지럽혀 왔다는 시각에서다. 그런 시각을 설득력 있게 부정할 수 있는 논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세계 평화에 문제가 있는 곳에는 ‘세계의 경찰’인지 ‘세계의 무법자’인지를 떠나서 미국의 존재가 더러는 원경(遠景)으로 더러는 근경으로 비치는 게 어김없는 공식이었다.

따라서 ‘팍스 아메리카나’에는 그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 용어가 도전받게 됐다.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세계의 경찰’이 없이 어찌 ‘팍스 아메리카나’가 존립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미국의 시리아 철군만으로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포기했다거나 앞으로의 세계가 팍스 아메리카나와 딴판이 되리라고는 볼 수는 없다. 그 ‘세계의 경찰’이 정복을 벗고 사복차림으로 활동하는 식으로라도 그 역할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경우도 미국의 힘을 대체할 세력이 지구상의 어디에도 없는 이상 어떤 모습으로라도 존속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만 트럼프의 등장 이후 그 ‘팍스 아메리카나’의 의미가 달라진 듯 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의 세계 질서는 ‘팍스 아메리카나-Ⅱ’로 표기하거나 아니면 ‘트럼프의 평화(Pax Trumpa)’로 표기하는 게 더 실감날 것만 같다.

그것은 이번의 시리아 철군 발표 때문만은 아니다. 트럼프는 줄곧 팍스 아메리카나와는 상충되는 발언을 해왔다. 그가 취임사에서 공언한 ‘America First(미국우선주의)’부터 팍스 아메리카나와는 조화가 안되는 발언이었다. 그가 남미로부터의 난민을 백안시 해 장벽을 쌓겠다고 하는 것도 미국우선주의의 소산이다. 남미로부터의 난민들을 지칭하는 ‘캐러밴’에 관한 그의 언급에서는 곧잘 ‘적군’이니 ‘테러리스트’니 하는 험한 단어들이 속출한다.

그것은 역사가 짧은 미국의 건국신화를 이루는 ‘메이플라워호의 신화’를 부정한 것이다. 1620년 영국에서 박해받던 청교도 102명을 싣고 66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매사추세츠 주에 도착한 메이플라워호는 미국이 핍박 받는 이들에게 자유의 땅임을 말해주는 상징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자유의 여신상과 더불어 팍스 아메리카나에 권위를 부여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테러범들의 등쌀에 쫓겨 미국으로 향하는 고단한 이민 행렬인 ‘캐러밴’에 온갖 험담을 퍼붓는 것으로도 모자라 장벽을 쌓겠다고 우기다 그 바람에 정부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일시폐쇄(셧다운)에 빠지는 소란을 빚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는 미국을 넘어 인류의 언어 자체를 바꾸는 것만 같다. 그가 시리아에서 승리했으니 철군한다고 할 때의 ‘승리’란 말이 대표적이다.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IS가 현재 비세지만 완전히 몰락한 것이 아니어서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말을 깔아뭉갠 채 자기 나름의 ‘승리’란 단어 등이 정리된 새 사전을 보급하고 있다. 문제는 그 새 사전, 다시 말하면 ‘팍스 트룸파’의 사전이 위력이 있다는 점이다.

얼핏 우스꽝스러운 트럼프의 막말이 막상 많은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의 장벽 건설을 성원한 민간인 모금 캠페인이 열렬한 성원을 받은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지난 16일 이라크 전에서 부상한 브라이언 콜페이지(37)가 모금 웹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com)'에서 시작한 '위 더 피플 윌 펀드 더 월(We The People Will Fund The Wall)' 모금 캠페인은 5일 만에 20만 명 이상이 기부해 모금액이 1200만 달러를 넘어섰다.

따라서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트럼프의 ‘승리’란 단어도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그 승리란 IS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에게 손해가 없는 정도의 상황일 수 있다. 그래서 상식적인 많은 미국들은 아직 트럼프의 임기가 남아 있는 2년이 더 두렵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 때문에 트럼프의 임기가 2년으로 끝날지 6년으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가 2년 전에 대선에 나섰을 때 그의 당선을 예측한 미국인이 몇 %였던가.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인들의 속내를 가장 잘 알고 거기에 호소했기에 당선되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는 동정을 바라는 귀찮은 친척 같은 난민들에게 문을 걸어 잠그려 하고 그 뒤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안도하고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 메이플라워호의 이야기는 너무 멀고 팍스 아메리카나나 세계의 경찰은 너무 번거로운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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