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열 칼럼] 한·중·일 신삼국지(新三國志) [1]
[김영열 칼럼] 한·중·일 신삼국지(新三國志) [1]
  • 김영열 고문
  • 승인 2018.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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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황제시절 어렸을 때 친구가 찾아와 아들을 외교관으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나폴레옹이 물었다.

“왜 하필 외교관인가?”
“내 아들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등 삼개국어에 능통해서 유능한 외교관이 될 테니까”
“아, 그렇다면 외교관 보다는 호텔에 취직하는 것이 더 낫겠네.”
“호텔에는 외국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잖아.”

얼마 전 우리나라 외교관이 직원들에게 외국어 실력이 부족하니 공부 좀 하라고 훈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난 일화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어를 잘 한다고 외교를 잘하는 것이 아니란 것은  예나 지금이나 확실하다.

요즘처럼 외교가 중요한 적도 없을 텐데 우리 외교가 안 보인다. 남북문제야 성격상 아예 청와대에서 맡아 한다 하더라도 대 일본, 대 중국 등 관계에서 외교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바다 병풍 삼아 중국 대륙 끝에 뾰족이 붙어있는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아주 예민한 위치에 놓여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3국이 정치나 경제, 국민의 감정까지 서로 얽혀 있다.

대체로 중국에 대해서는 사대적, 일본에 대해서는 배일적인 감정이며, 일본 사람을 왜(倭)놈, 중국 사람을 뙈(大國)놈이라고 불렀던 것을 보아도 우리 의식 속에 두 나라를 대하는 감정이 나타나 있다. 일본은 작고(矮) 중국은 큰 나라(大國)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실제 왜(倭)놈은 일본이라는 뜻이지 작은 나라 놈이라는 뜻은 아니가.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우리나라 외교부가 일본을 나라인 왜(倭)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矮)나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문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중국에는 네 차례나 방문해서 시진핑 주석과 친교 하는 동안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일본의 아베와는 한 차례도 만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번 20개국 정상회담에서조차 슬쩍 지나쳤다고 말았다니 일본에 대해서 이래도 되는 것인지.

이럴 때 외교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타깝다. 직원들의 외국어 공부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감정에 영합하지 않고 일본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균형을 잃지 않는 지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인 것 같다.

요즘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평상시 보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에서 대법원의 일본 배상 판결이나 위안부 문제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 해묵은 악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과거에도 한· 일 두 나라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위기를 넘겨오곤 했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는 한국과 의사소통 하려면 100을 전달하는데 200까지 톤을 높여야 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하기야 자동차 추돌 사고 때 큰 소리 치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일본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이 나라인가?”라는 감정적 극언도 나온다. 예전 같으면 한일 관계에서 반감이 폭발하는 쪽은 주로 한국이었다. 교과서 문제, 독도 영유권 주장, 위안부 등 숱한 문제가 나올 때마다 한국이 강공이었다. 그런데 이번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명령한 지난 10월 30일 대법원 판결 이후는 일본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일본이 강공을 펼치고 있다. 갈수록 고강도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갈 데 까지 가보자는 심산인가.

· 일 간의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 일 관계를 녹여줄만한 지혜와 열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데 우리외교는 어디쯤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미국이 화해시켜 줄지도” “그전에도 그랬잖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정상성의 편견(normality bios)” 이라고 한다고 한다. 경험으로 비추어 큰일 없이 해결되곤 했던 기억으로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서도 자기 편한 대로 상황을 인식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 같은 이전 경험의 역기능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되겠지”하다가 큰 코 다칠까 염려스럽다. “친구는 고를 수 있어도 이웃은 못 고른다”고 한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우리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우리에게 일본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수가 없다.

· 일 간 50여 년 간 유지해 오던 합의나 약속을 뒤집으면, 상대가 반발하고 관계가 악화 되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외교부는 이번 일본 측의 강력한 반응에 “유감스럽다”고만 하고있다.

· 일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 한국 측이 더 많은 것을 잃어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을 때 국민들이 얼마나 속 시원 했을까. 그러나 그 결과는 한· 일 어로 협정을 파기하겠다는 일본의 일방적인 통고에, 결국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독도주변 공동수역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한일 우호무드를 조성했지만 일본 측 요구를 무시하고 일본인 납치범 신광수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자 일본 정부는 재일 한국인 은행 설립 거부로 맞섰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외교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자 재일 한국인에 대한 세무사찰 강화, 유학생 연수 지원 중단 같은 조치가 등장했다.

이번 강제 징용자에 대한 배상 판결로 한국 내 일본재산 압류설이 돌자 일본에서도 한국재산 압류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외교란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한· 일관계가 계속 악화 될 것이라는데 있다. 일본은 있어도, 없어도 괜찮다는 인식인가 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해 과거사 피로 증후군, 한국의 중국 편향 등에 따른 실망 등으로 일본이 먼저 각종 협정 폐기 등을 들먹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여러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데 지난 14일 열린 한· 일 의원 총회에 아베 수상이 예외적으로 친서나 축사를 보내지 않았고, 몇몇 의원은 아예 한국과 마주 앉기 싫다며 한인 의원 연맹을 탈퇴까지 하는 지경이다. 이런 외교 환경에서 한국은 외교부에 중국 국(局)을 신설하겠다고 나서 일본을 자극하고 있다. 실현될 경우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한국의 중국 편향을 우려 할 수도 있다.

재외 공관장 회의에 참석치 귀국한 이수훈 주일 대사도 기자 회견에서 “최근 일제 강제징용 소송 판결, 화해치유 재단 해산 발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어느 때 보다도 엄중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이 냉랭하던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면서 지난 11월 아베 총리가 중국으로 건너가 일· 중 합작으로 세계에 진출하자는 50여개의 프로젝트를 발표하지 않았던가. 아베와 시진핑이 손을 잡는 것이다.

이런 판 속에 한국 외교는 계속 혼자서 운전만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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