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평 시사논평] '신문의 난’이 된 ‘제2 이재수의 난’
[양문평 시사논평] '신문의 난’이 된 ‘제2 이재수의 난’
  • 양문평 고문
  • 승인 201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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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받다 자살을 함으로써 큰 파란이 일고 있다. 그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노회찬 전의원의 자살과는 정반대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을 보니 갑자기 1세기 전에 일어난 ‘이재수의 난’이 떠오른다.

그것은 1901년 제주도에서 관권과 밀착한 천주교도들의 행패에 맞서 ‘신축민란’을 일으킨 이재수(李在守)란 관노의 이야기다. 당시의 조선은 일제의 침략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으나 아직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써 천주교 사제들이 활약할 여지도 남아 있었다. 1858년 제주도에 천주교가 들어오더니 1899년 프랑스의 페이네 신부와 김원영 신부가 파견되면서 본격적인 전교가 이루어졌다. 이듬해는 라쿨과 무세 신부도 가세했다.

그들은 성당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제주도 특유의 신목(神木)이나 ‘신당(神堂)을 없애는 등 제주도의 토착문화를 무시하는 행위로 주민들의 반감을 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신도들이 부정한 관리들의 앞잡이로 나선 점이다. 예를 들어 강봉헌이라는 악명 높은 봉세관이 부임하면서 온갖 잡세를 부당하게 징수하면서 그 징수원으로 천주교신자들을 고용한 것이다. 이에 관노 출신이었던 이재수가 주동이 돼 도민들이 일본인들로부터 입수한 무기를 들고 민란을 일으켰다.

라쿨 신부가 상하이에 있던 프랑스 함대에 연락해 6월1일 군함이 왔으나 그 때는 이미 천주교도 300명이 살해된 뒤였다. 이에 정부에서 강화진위대를 보내서야 난이 진압됐다. 그래서 사라진 ’이재수‘라는 이름이 100여년 뒤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그 두 이재수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얼굴이다. 아니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 인생을 살았다. 제주도 이재수가 흑수저보다도 몇 단계 아래인 관노 출신이라면 서울의 이재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과 중앙고와 육사 동기일 뿐 아니라 각별히 친해 박근혜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사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선지 이재수는 그 ’누나 대통령‘ 재직 시에 특혜를 받았다는 설이 무성했다. 그는 박근혜가 집권한 직후인 2013년 4월 상반기 인사에서 중장으로 승진하자 육군의 핵심 보직인 인사사령관에 임명받았다. 그러더니 불과 6개월 만에 군대의 정보를 관장하는 ’천하의‘ 기무사령관에 임명됐다.

한마디로 제주도 이재수와는 하늘과 땅차이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이재수의 난‘이 일어난다. 죽은 이재수는 말이 없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해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거의 난리가 난 듯 목청을 높여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자살한 이들에게 보내는 통상적인 연민이나 애도의 수준을 넘어 논리나 이성을 상실한 모습에 가까운 점이다.

보수 정치인들과 보수 언론이 그를 조사한 것 자체가 부당했다는 식으로 강변하고 있는 것이 우선 그렇다. 여기서 이재수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더욱이 모든 죽음은 엄숙한 것이다.하지만 국군의 정보를 관장하는 기무사령관이 민간인을 사찰한 것은 물론 '6·4 지방선거 이전 국면전환을 위한 출구전략 마련'과 같은 정치활동까지 한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그걸 조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데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들은 특히 이재수가 유서에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고 한 점을 크게 부각시켜 그를 영웅처럼 치켜 올림으로써 그런 논리를 정당화하는 모습이다. 그가 “세월호 사고 시 기무사와 기무 부대원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던가 “5년이 다 돼가는 지금 그때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정말 안타깝다”고 한 말도 인용해 마치 최선을 다한 충실한 장군을 오래전 일로 트집을 잡아 죽게 했다는 듯 한 논조를 펴기도 한다.

그것은 너무도 뻔한 상식을 외면한 현상이다. 물론 이재수가 삶의 막판에 유서에서 보여준 자세는 남자답고 신사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여러 가지 심적 동요도 있을 수 있으나 자제력을 보인 것도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비장하다고 해서 그를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승리한 뒤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저의 임무를 완수 했습니다”하고 말한 뒤 숨진 호라시오 넬슨 제독과 동렬에 세우려는 듯 하는 것은 말이 아니다. 넬슨의 임무란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로부터 조국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1805년 그 임무를 너무 잘 수행해서 적의 함대를 철저히 격파했고 그에 겁먹은 나폴레옹이 그 다음해 ’대륙봉쇄령‘이라는 악수를 두도록 강요함으로써 나폴레옹 시대를 마감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재수가 말한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한” 그 임무는 어떤 것인지 아리송하다. 그의 자살을 분개하는 정치인이나 언론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이미 드러난 사실로 볼 때 그는 어딘지 부도덕한 정부 편에서 국민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이 탈이 나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만 비친다. 군부대의 정보 관리만으로도 어렵고 바쁠 기무사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5년이 다 돼가는 지금 그때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정말 안타깝다”는 말도 그렇다. 군인인 그가 형법상의 공소시효 같은 법률상식이나 한국의 현대사에 어두워 그런 말을 했더라도 언론이 이를 크게 부각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의 말은 결과적으로 장기독재 기간 중 저질러진 범죄일수록 면죄부를 주어야 한다는 뉴앙스를 풍긴다.

언론이 군사독재 시절에 저질러진 비극을 조금이라도 아파한 적이 있다면 그런 말은 흘려들어야 할 일이다. 1961년에 시작된 박정희 군사독재는 전두환 군사독재를 거친 뒤에도 넥타이 맨 군인 정당 시절을 거치다 보니 38년이나 흘렀다.

그 동안 일어난 정치적 범죄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재수의 ’억울한 죽음‘을 크게 부각시킨 언론일수록 바로 그 기무사가 저질렀던 불법적이고 무자비한 범죄나 군사독재시절에 일어난 의문사(疑問死)에는 인색하거나 무시로 일관한 것도 새삼 눈길을 끄는 일이다.

보수언론들이 그 유서의 “지금까지 살아오며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지만, 전역 이후 복잡한 정치 상황과 얽혀 제대로 되는 일을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대목을 실어 이재수를 윤동주처럼 묘사한 것도 그렇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는 흔히 듣는 말이지만 윤동주라도 어찌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는가. 그는 시인이지 성인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은 아름다운 시일 수는 있으나 현실사회에서는 그저 주관적인 장식품 같은 말이다. 언론은 그런 말을 대서특필하기 보다는 비록 고인이 됐어도 그가 걸었던 군인 생활에 비친 한국군 그리고 공권력의 비정상적인 행태에 대한 객관적 규명도 곁들였어야 했다.

그는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과정도 석연치 않지만 그 자리를 1년 만에 그만 둔 것도 석연치 않다. 그 자리는 1년 반이나 2년 이상 재직하는 게 상례여서다. 그것을 두고 이재수가 너무 과도하게 외부 인사들을 접촉하는 등 대외활동에 치중한 것이 원인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박지만과 최순실의 권력싸움 때문이라는 설도 파다하다. 그 정답이 전자라면 이재수가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이고 후자라면 지난 정권의 또 다른 치부가 드러난 셈이다.

어느 쪽이건 언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나 우리 언론은 외면하고 있다. 그 밖에도 이재수 개인을 두고는 여러 가지 험담이 나돌고 있으나 고인의 일이니 그만 두자. 다만 언론이 그의 자살 사건을 들어 훌륭한 군인을 당국이 희생시켰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은 우선 사실과 어긋난다.

세월호와 관련해 죽은 것은 이재수의 생명일 뿐 ’군인 이재수‘는 세월호와 무관하게 전정권의 의문스러운 구조 속에서 이미 죽은 셈 아닌가. 자유한국당의 김진태 의원이 이재수에게 훈장을 주어야 한다며 얼마 전 자살한 노회찬에게 훈장이 추서된 점을 상기시킨 것도 놀랍다.

노회찬에게 훈장을 추서한 국가인권위원회가 훈장추서 경위에서 “… 용접공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한 1982년부터 노동자의 인권 향상에 기여했고 정당과 국회 의정활동으로 여성 장애인 등 약자의 인권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발표한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이재수가 세월호 문제를 떠나 어떤 공적이 있는지를 아는 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장점을 굳이 찾자면 군인다운 유서를 남긴 정도다. 한마디로 이재수 사건은 그 지긋지긋한 군사독재 시절의 관행이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나온 지 4반세기가 흘러도 잔존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중병은 외면한 채 그것을 수술하는 과정에서 금으로 된 수술 칼을 썼느냐 쇠칼을 썼느냐는 식의 미학적인 데 현미경을 드리 대는 보수언론의 자세는 우습고도 무섭다. 그들은 진심으로 이재수 같은 군인이 많으면 한국군이 막강한 군대가 되리라는 아쉬움에서 그처럼 흥분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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