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3화 어제밤에는?
[기업소설] 직장의 신- 제3화 어제밤에는?
  • 악녀공작소
  • 승인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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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처음부터 이번 제품 판매 캠페인에서는 1등을 해야 한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애사심이라기보다는 일등을 하면 윗분들이 신입사원 조민지를 모두 기억할 것 같았고, 그렇다면 승진 사다리도 빨리 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순전히 이기적인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일등을 하고 나니 겨우 냉장고 한대라는 것은 너무 섭섭한 일로 생각되네요. 솔직히 말해 아무리 말단이라도 집에 투도어 한 대 쯤은 다 있잖아요? 죄송합니다. 사장님!”

조민지는 단상의 사장석을 행해 절을 꾸벅 한 뒤 말을 계속했다.

“친척이나 친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우리 제품을 팔게 되면 열 상자나 서른 상자 정도 밖에 못 팝니다. 저는 동창회 야유회에 가서 한 끗발 잡았습니다. 동창회에서 노래자랑, 방송 댄스 같은 장기 자랑을 한바탕 하고나서는.... 제가 학교 다닐 때 치어리드 좀 했거든요. 마이크를 잡은 김에 동창 너희들이 이 조민지 한번 밀어달라고 했지요. 그래서 집단으로 판 것이 2백 상자가 넘었습니다.”

“어쩐지 ... 응원단장 출신이었군.”

 

박 대리는 마이크를 잡고 경험담을 능숙하게 늘어놓는 조민지를 보고 다시 한 번 조민지의 숨은 면모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제 남친의 아빠를 찾아갔지요. 꽤 이름 있는 회사의 회장님이신데. 무조건 떠 넘겼지요. 회장님 이 회사에서도 대 고객 판촉물은 쓰시지요? 제가 좋은 아이템을 가져왔으니 무조건 쓰세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우리 비누 한 상자를 내놓았지요. 회장님은 찬찬히 우리 상품을 살펴보더니 그래 몇 상자면 되느냐고 묻더군요. 근데 제가 실수를 했어요. 한 만상자쯤 이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을 겨우 5백상자라고 했으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충 한 8백 상자 떠넘겼습니다.”

“와아!”

“배짱 좋다.”

“철판 깔았군.”

“영업부서로 옮겨. 총무 팀에서 썩기는 아까운데.”

“미인계 쓴 것 아냐?”

 

여기저기서 탄성과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자리에 앉은 모든 간부 사원들은 저 신입사원이 보통 맹랑한 사원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 큰일을 저지르거나 크게 될 사원이라는 생각들을 했다.

 

“말이 나온 김에 사장님께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조민지가 다시 단상의 사장석을 돌아보며 절을 했다.

 

“해봐요. 무슨 얘기든지.”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제 노력에 비해 냉장고 한대라는 이 상품은 너무 언밸런스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장이라면 조민지에게 일 계급 특진, 대리를 시켜주겠습니다.”

“와아 저 배짱!”

 

폭소와 함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조크 한번 해봤습니다.”

 

조민지는 마이크를 사회자에게 넘겨주고 자리로 걸어 들어갔다.

이 사건으로 조민지는 몇 달 동안 회사의 화제 인물이 되었다.

 

“박 대리님, 이거 내일 오전 중에 결재해 주세요.”

 

조민지가 퇴근할 무렵 결재 판을 들고 와 박민수 대리에게 내밀었다.

 

“뭔데?”

“지난달 영업성적 통계 낸 거예요.”

 

조민지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걸어 나갔다.

박민수 대리는 그 모습이 문뜩 떠올라 서류꽂이에서 보지도 않고 꽂아 두었다.

 

조민지가 이유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집에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주인집 아주머니는 어제 밤에 들어오지 않았다고만 이야기 했다.

박 대리는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명랑하고 당돌하기로 이름난 조민지가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쩐지 예삿일 같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조민지의 요즘 태도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갑자기 우울해 하는 것 같았다.

 

“어이, 박 대리 ‘조 맹랑’ 어디 갔어?”

 

인사과의 최경석 팀장이 지나 가다가 물었다. ‘조 맹랑’이란 조민지의 별명이다.

조민지의 당돌하고 야무진 말솜씨 때문에 붙은 별명이지, 인간이 맹랑한 존재라서 붙은 별명이 아니라고 별명을 지어준 자재과 이규명 대리가 변명을 했었다.

 

“글쎄. 좀 늦는 모양이지.”

 

박민수 대리도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으나 예사롭게 받아 넘겼다. 벌써 11시를 훨씬 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없었걸랑요. 웬일인지 모르겠어요. 집엔 어젯밤에도 안 들어 왔다고 했걸랑요.”

 

옆자리의 여사원 피용자가 거들었다.

 

“뭐 어제 밤에도? 혹시....”

 

최경석 팀장이 빙그레 웃었다.

 

“쓸데없는 상상 하덜 마세요!”

 

박민수가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최 팀장은 계속 빙긋이 웃었다.

 

“부사장하고 어젯밤 한잔 하러 간 것 아닐까?”

 

최 팀장은 이 말만 남기고 나가 버렸다.

박민수 대리는 조민지가 주고 간 결재 판을 꺼내 열어 보았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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