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비평] 통신구 화재로 들통 난 ‘재앙위에 설계된 자부심’
[이원두 경제비평] 통신구 화재로 들통 난 ‘재앙위에 설계된 자부심’
  • 이원두 고문
  • 승인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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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안락하고 편안한 IT생활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예스’다. 그러나 그 생활이 얼마나 안전한가에 대한 대답은 ‘노’다. 이번 Kt 서울  아현 지사 통신구 화재가 내려 준 결론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전국적인 충격도 포함되어 있다. 불과 150m의 통신구 화재로 서울의 중구, 서대문, 마포구와 고양 등 경기 일부지역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 가입자의 휴대전화가 불통된 것이나 소상공인들의 영업 피해는 국민생활이 한순간 완전히 마비된 것을 의미한다.

또 경찰 통신과 건강보험조회기능 중단에 따른 의료기관의 치료행위를 포함한 업무 지장 등은 한마디로 국가기능의 상당부분이 마비 된 것을 의미한다. 뇌졸중 등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람에 비유 할 수 있다. 결국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IT대국의 자부심은 ‘재앙 위에 설계’된 것과 다르지 않음을 뜻한다.

세계 최초의 5G시대를 열겠다고 의욕에 차 있는 우리 IT업계가 어째서 자연재해도 아닌 화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는가? 5G가 핵심을 이루는 자율 차, 스마트공장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AI경제시대는 과연 안전하게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대답하기에는 망설임이 앞선다. 물론 그렇게 되기를 믿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이번 통신구 화재가 큰 걸림돌이 된다.

이른바 세계 최고 수준의 ‘초 연결 사회’를 자랑하면서도 그 안전 대책에는 어째서 손을 놓고 있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특히 일부에서는 ‘규제 공화국’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실물경제와 사회전반에 대한 개입이 심한 정부가 결정적인 분야의 안전대책에는 왜 이처럼 너그러웠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정부도 통신시설의 중요도를 등급별로 관리하고 있기는 하나 이번 사태는 정부관리 등급이 엉터리임을 만천하에 들어냈다. D등급으로 분류된 아현지사는 백업 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따라서 화재에 대비한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위법이 아니다. 그런데도 서울의 4분의 1이 마비되었다면 등급 분류에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그 보다 앞서 국가 기간시설인, 그리고 IT시대 사회신경망인 통신시설에 등급을 매기고 등급에 따라 안전대책에 차등을 두겠다는 발상 자체가 디지털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아날로그 식이다.

아날로그 사고로 디지털 시대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정부이며 IT대기업 경영진의 수준이다. 사고 이후 관계회사 경영진은 ‘백업 시설에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D등급까지는 손이 미치지 않았다고 해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우리보다는 ‘IT후진’인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은 이른바 다이존(大ZONE) 기지국을 대도시 중심으로 전국에 100곳을 구축해 놓고 있다. 통상 기지국이 반경1~2Km정도만 커버하는 데 반해 다이존은 7Km를 커버한다. 이 다이존으로 지난 9월 홋카이도 강진 때도 통신마비 사태를 막았다. 허리케인에 노출도가 심한 미국 역시 AT&T와 버라이존 등이 이동형 통신 트레일러를 운용하고 있다. 통신시설 등급을 정한 이후에는 손을 좋고 있는 우리 정부나 관계 기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정책 당국이나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번 서울 아현동 통신구 화재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으나 방화일 가능성은 일단 배제된 것은 다행하기 짝이 없다. 방화라면 테러일 가능성과 개연성이 함축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인이 밝혀지면 그에 따른 대책이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앞서 정책 당국과 통신 기업이 할 일은 우선 기존 기지국과 통신시설에 대한 철저한 안전과 보안 점검일 것이다. 등급과 관계없이 단 1m의 통신구라도 A등급으로 다루어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직간접 피해가 얼마나 될는지 그 규모는 아직은 짐작도 못할 수준이다. 이 엄청난 대가를 허공에 날려버리지 않고 생산적으로 되돌리려면 이번 교훈을 살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러자면 정책당국은 말할 것도 없고 경영진을 비롯한 해당 기업 종사자들이 하루 빨리 아날로그 식 발상에서 벗어나서 디지털 사고로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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