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 즉석분발 스프 생산공장 설립 추진...전범기업 논란에 농심 “잘 몰랐다”해명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식품기업인 ‘농심’이 일본 전범기업 아지노모토(味の素)와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경기도 평택에 공장을 세우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 등 일본 정치인들이 막말을 쏟아내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다. 전범기업과 합작사업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농심, 전범기업과 손잡아
지난 16일 경기도는 “일본의 종합식품기업 아지노모토(味の素)가 한국의 농심과 협력해 경기도 평택 포승 농심공장 부지에 즉석분말스프 생산 공장을 설립하고 내년부터 생산 시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김진흥 경기도 행정2부지사와 모토하시 히로하루(本橋 弘治) 일본 아지노모토 부사업본부장이 일본 도쿄에 위치한 아지노모토 본사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투자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
지난해 12월 농심과 아지노모토는 ‘아지노모도농심푸즈’라는 합작 법인을 세웠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사는 총 23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로 평택 포승에 위치한 기존 농심공장 내 일부 부지에 즉석식품 생산공장을 설립할 전망이다. 공장 준공과 향후 운영에 따른 행정지원 등을 제공하는 데 힘쓸 방침이라고 경기도 측은 설명했다.
문제는 이번에 농심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아지노모토는 현존하는 전범기업 34개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전범기업은 태평양전쟁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 시기 군납 물품을 제조하거나 식민지 국민을 강제 징용해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등 전쟁범죄 행위에 적극 가담해 이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을 말한다.
지난 2012년 2월 29일 당시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은 일본 전범기업 2차 명단을 발표했다.
2011년 9월 1차 명단에 이은 후속 발표였다.
이명수 의원실과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가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를 통해 제출받은 ‘노무자 공탁금 자료’ 등을 토대로 함께 분석한 결과 추가로 확인한 일본 전범기업은 58개다.
이에 따르면 강제 징용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아지노모토의 작업장 1곳에서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지노모토는 지난 1909년 일본 도쿄에서 ‘스즈키 제약소’라는 사명으로 설립되어 2017년 매출액 1조1502억 엔(우리돈 11조 5190억원)에 달하는 일본의 대표 종합식품업체다.
이와 관련해 농심 관계자는 “해당 (전범)기업인 것은 잘 몰랐다”며 “분말 스프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기업이라 계약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창출과 기술력 등 비즈니스 측면에서 판단해 계약을 맺은 것이라는 해명이다.
일본 앞에서 작아지는 범 롯데가
농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난은 확산되고 있다.
범 롯데가(家)의 친일 성향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신격호 명예회장으로 불똥이 튀었다. 신춘호 농심 회장의 큰 형이다. 일본에서 롯데를 창업한 뒤, 국내에 진출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핑퐁경영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국과 일본에 따로 부인을 두고 있는 것 또한 유명하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인 아내 ‘시게미츠 하츠코’씨와의 사이에 신동주 SDJ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을 낳았다. 한국인 아내 서미경 사이에서 신유미를 낳은 것으로 알려진다. 신동빈 회장도 일본인 아내 오고 마나미씨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다. 신 회장 아들인 신유열씨도 일본인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는 신 회장 이후 경영권 문제를 놓고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 간에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한국 롯데의 경영권 키는 한국이 아닌 일본 롯데홀딩스가 쥐고 있다. 롯데홀딩스는 신동빈 회장을 선택하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잃게 됐다.
롯데의 지배구조는 광윤사(일)-롯데홀딩스(일)-호텔롯데(한)로 이어졌다. 한국롯데는 일본 동경 신주쿠에 본사를 둔 롯데홀딩스의 지배를 받고 있다. 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 지분의 99%를 가지고 있다. 롯데홀딩스는 광윤사(光潤社)(28.1%),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임원지주회(6%)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 롯데에 지주회사가 설립됐지만 여전히 롯데홀딩스에 지배를 받고 있다.
농심의 신춘호 회장도 일본과 연이 깊다. 신 회장은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롯데 부사장을 거쳐 1962년 일본 롯데 이사를 지냈다. 하지만 라면사업 진출을 두고 신 명예회장과 불화를 일으켜 결국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을 창업한다. 이 과정에서 형과 의절한 것으로 알려진다.
농심의 최대주주는 농심홀딩스(32.72%)로 신춘호 회장(5.75%), 율촌재단(4.83%)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포함하면 45.49%에 이른다. 국민연금이 10.58%를 보유하고 있다. 농심홀딩스는 신 회장의 큰 아들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42.92%)이 최대주주다. 동생인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13.18%)과 국민연금(8.35%)가 뒤를 잇고 있다.
일각에서는 농심홀딩스의 3대주주이자 농심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이러한 계약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심이 아지노모토와의 합작사업 하는 데 대해 전범기업 명단을 발표한 이명수 의원실은 “국민 정서상 바람직하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사기업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막거나 규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