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평의 시사논평] '아라비아 왕자는 꿈속의 왕자' 사우디 언론인 암살사건 관점 포인트
[양문평의 시사논평] '아라비아 왕자는 꿈속의 왕자' 사우디 언론인 암살사건 관점 포인트
  • 양문평 고문
  • 승인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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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암살사건이 다소 잠잠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장래가 걸린 이 사건은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그 여진은 남아 있는 셈이다. 다만 그 진상을 밝히는 것은 사우디 지하의 유맥(油脈)을 밝혀내 것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그러다보니 엉뚱하게도 195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아라비아를 소재로 한 노래 ‘페르샤 왕자’가 떠오른다.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샤 왕자/눈 감으면 찾아드는 검은 그림자/가슴에다 불을 놓고 재를 뿌리는/아라비아 공주는 꿈속의 공주/오늘밤도 외로운 밤 별빛이 흐른다…> 노랫말 특유의 은유 기법을 썼지만 페르샤 왕자와 아라비아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주제다.

한국인들의 해외진출이 없다시피 했던 당시는 중동이 달나라처럼 멀었고 우리가 알만한 중동 국가라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가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두 나라의 남녀를 만나게 해주고 싶은 것은 나무랄 수 없으나  이 노래에는 두 가지의 큰 오류가 있었다.

우선 아라비아 공주가 무척 낭만적으로 보이는 노래의 분위기가 그렇다.
아라비아 공주는 공주이기에 앞서 여자고 아라비아의 여자들은 ‘낭만’이라는 단어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다. 미샤 알 빈트 파드 알 사우드 공주의 비극이 이를 말해준다. 제4대 국왕 칼리드의 형인 무함마드 왕자의 손녀이니 왕의 조카인 미샤 공주는 레바논 유학중 새르라는 한 청년을 좋아해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의 결혼을 거부했다. 남녀는 유럽으로 도피하려 했으나 공항에서  사우디 비밀요원들에게 붙들려 끌려왔다.

끌려온 공주는 연인이 보는 앞에서 총살당하고 뒤이어 연인은 참수형을 받았다. 미샤가 공주로써 받은 혜택은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는 형을 받지 않고 총살을 당한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페르샤 왕자’를 작사한 이는 아마도 사우디의 국기에 섬뜩한 칼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아니면 아라비아 공주가 아니라 왕자가 꿈속의 왕자라는 것을 잘못 썼을 수도 있다.

아라비아 왕자들은 꿈속의 왕자들처럼 호화롭고 멋이 있는가 하면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하니 꿈속의 존재 같은 데가 있다. 특히 왕세자는 반인반신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정도 착오는 이 글에서 대수롭지 않다. 그 노래의 보다 큰 오류는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왕가의 남녀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인 것처럼 묘사된 점이다.

그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도 훨씬 가망이 없는 이야기다.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의 갈등이랬자 고작 같은 나라(이탈리아)의 베로나 지역에서 옥신각신할 뿐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종교를 믿는 동족이 아닌가.

이에 비하면 페르시아와 아라비아는 같은 이슬람을 믿는다고는 해도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려 있고 이 두 종파는 타종교보다도 더 증오하는 편이다.

무슬림에게 유태교라면 치를 떨 것 같지만 수니파의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한편으로 시아파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민족도 아라비아 인들이 아랍 족이라면 페르시아 인들은 ‘유럽인종’이라고도 알려진 아리안 족이다. 그것은 ‘아리안의 나라’라는 뜻의 ‘이란’이라는 국명에 새겨져 있다.

그래저래 사우디는 차라리 이스라엘과는 오순도순 하는 반면 이란과는 예멘에서 대리전을 하는 판이다. 바로 그런 면이 카슈끄지 사건의 진상을 가리는 큰 장막이라 할 수 있다.

사건 직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 사우디 왕가를 두둔한 것도 그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나쁘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런 마당에 미국의 대리전을 해주듯 이란과 각을 세우는 사우디가 미국에 어떤 존재인지는 알만한 일이다.

카슈끄지 사건은 그런 면을 떠나서도 여러 가지 장막들이 가리고 있다. 따라서 그 귀결을 점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사건의 관점 포인트로써 그 장막들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는 있다. 여기서 가장 큰 장막이 미국의 동태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우디의 역사는 석유의 역사이자 미국과 우호의 역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32년 건국할 당시 중동국가들 가운데서도 빈국으로써 순례자들이 떨어뜨리고 가는 돈이 큰 수입인 형편이었다.
그러다 1938년 알아사에서 대형 유전이 발견되고  1941년 미국자본이 아람코(아라비안아메리칸석유)를 설립함으로써 대형 산유국 사우디가 출발한 셈이다. 물론 그 걸음걸이는 ‘아람코’의 이름이 말해주듯 미국과 얽힌 2인3각의 모양새였다.

미국의 사우디에 대한 애정은 거의 절대적인 수준이었고 거기에는 공화당과 민주당도 없다. 대체로 보수적인 공화당이 더 우호적인 편이지만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도 신세를 졌다. 그가 취임했던 1993년 여객기 시장이 불황이어서 보잉사가 쩔쩔맬 때 사우디가 통 크게 여객기를 사주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도날드 트럼프의 경우는 유별나다. 그는 대통령 이전에 사업가 시절부터 사우디의 신세를 졌다. 그가 2015년 8월 열린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모든 이들과 잘 지낸다. 그들은 4000억, 5000억 달러를 써가면서 내 아파트(트럼프 타워)를 구입 한다"고 말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처음 방문한 나라도 사우디였다. 하필이면 그의 유태인 사위로 백악관 수석고문을 맡고 있는 재러드 쿠슈너가 바로 이번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무함마드 왕세자와 각별한 사이다. 그러다 보니 이 사태 후 미국은 갈팡질팡의 행보를 보였다. 이 사건으로 사우디 정부는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창피한 코미디를 연출했고  미국은 거기서 조연을 맡은 모양새였다.

사건 직후 사우디는 카슈끄지가 이스탄불의 영사관을 걸어 나왔다고 발표했다. 그 발표에 걸맞게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와 비슷한 첩보원에게 카슈끄지의 옷을 입혀 영사관을 나오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도록 하는 수를 썼다가 들통이 났다. 그러자 사우디는 그가 실종됐다고 정정했다가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그가 영사관 내에서 몸싸움 끝에 폭력사고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해명이 비난을 더 키우자 계획살인이라고 정정해야 했다.

그 어지러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주어야 했던 트럼프도 코미디의 조연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사건 초기 트럼프는 그 무렵 미국서 화제가 됐던 브렛 캐버노 대법관 후보의 인준과정에서 벌어졌던 성폭행 의혹을 인용해 사우디를 변호했다. 캐버노는 온갖 의혹을 남긴 채 10월6일 상원인준을 받아 대법관이 돼 미국 대법원이 오른편으로 기울게 했다.

트럼프는 아직도 그 감격이 사라지지 않았던지 사우디의 암살의혹이 캐버노를 둘러싼 의혹처럼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다 사우디가 몸싸움 끝에 카슈끄지가 사망했다는 어설픈 발표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 환영메시지를 내놨다. 미국으로써는 그것으로 덮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이 점점 드러나자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도 궁지에 몰린 셈이다. 그는 우선 사건에 관련된 사우디 공직자 21명의 미국비자를 취소하는 등 솜방망이라도 휘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사우디를 향해 강경발언을 늘어놓았으나 그것도 갈팡질팡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자리에서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배후라는 식의 발언을 하다가 다른 자리에서는 모든 게 미궁이라거나 그가 연루되지 않았다는 식이었다.

그는 사우디를 향해 강경발언을 한 뒤에도 번번이 “그래도 미국 무기는 팔겠다”는 단서를 잊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삿도가 어느 악덕 졸부가 준 떡을 입에 넌 채 그에게 호통을 치는 듯 한 모양새였다. 입에 떡이 있으니 호통에 힘이 빠지고, 입가에 묻은 떡고물 때문에 서슬이 푸를 수도 없다. 더욱이 입가에 묻은 오일달러의 검은 자국은 떡고물보다 씻기도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속내를 누가 알 것인가. 그동안 미국은 사우디 국내의 일은 일체 관여하지 않아서 수많은 왕자들이 죽고 실종돼도 모르쇠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간이 더 커졌을까? 그들은 타국, 그것도 관계가 껄끄러운 터키에서 일을 저질렀으니 미국으로써도 시치미를 뗄 수만도 없게 됐다. 미국은 사우디는 포기 하지 않아도 무함마드 왕세자는 포기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지켜볼만 한 일이다.

터키가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모습도 관심거리다. 자기네 나라의 영사관에서 사건이 났으니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터키가 이번에 보인 조치는 그런 공식을 뛰어넘는 데가 있다. 사건은 터키에서 났지만 사건 내용은 완전히 사우디 내부의 일이니 화를 내는 척 하면서도 봐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터키는 마치 도박꾼들이 카드를 감추고 있듯 진상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사우디 정부가 엉터리 발표를 할 때마다 해당 카드를 하나씩 꺼내는 식으로 사우디를 망신 줬다. 카슈끄지가 영사관에서 나왔다고 사우디가 발표하자 가짜 카슈끄지가 카슈끄지의 옷을 입고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가 다시 자기 옷을 입고 들어가는 장면도 있다고 말한 것이 좋은 예다.

터키의 그런 모습을 두고도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터키와 사우디는 역사적으로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사실이다. 두 나라는 오랜 역사를 통해 몸싸움을 해온 사이다. 사우디가 이슬람교의 종주국이라면 터키는 그 사우디를 포함한 광범위한 이슬람교의 제국인 오스만투르크를 세웠다. 그 오스만으로부터 고난의 독립전쟁 끝에 사우디 왕국이 생겨났으나  유럽과 아시아에 영토를 두어 서구적인 공화국을 세운 터키는 그 중세적인 왕국을 낮춰 보았다.

그러던 사우디가 유전 발견으로 오일달러가 넘쳐 수니파의 중심이 되려 하니 터키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터키는 사우디로 돌아가서 구속된 암살관련자들을 재판하겠다며 신병을 인도하라고 공세를 펴고 있다. 터키는 사우디가 응하리라고 생각해서 그런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강대국들의 동태도 볼만하다. 어느 나라보다도 러시아의 반응이 눈길을 끌었다. 이란의 후견국처럼 친한 러시아로써는 사우디를 공격하기에 결정적인 기회를 잡아서 그 거취가 주목됐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 기회를 사우디와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이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사건 초기에 트럼프가 했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을 계속하면서 변호인으로 나섰다. 그의 우렁찬 발언 뒤에는 “오일은 이념보다, 그리고 우정보다 진하다”는 메아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것은 사우디와 친했던 중국도 마찬가지고 일본도 다를 바 없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관찰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사우디 국민들의 동태다. 사건 이후도 사우디 국민들의 동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칼이 그려진 국기가 휘날리는 사우디에서 국민들이 정부에 맹종하는 것으로 비쳐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우디 국민의 영원한 그림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바로 2001년의 9·11테러가 말해준다. 당시 테러에 가담한 19명 가운데 15명이 사우디 국적이었다. 아니 그 사건의 총지휘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인 아닌가. 사건을 당한 미국은 칼을 뽑지 않을 수 없었으나 차마 사우디를 벨 수는 없어 무우라도 베듯이 애꿎은 이라크를 벴다는 것은 거의 정설처럼 알려져 있다. 그런 사우디 인들에게 이번 사건은 큰 시련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언론을 통제해도 그처럼 두드러진 사건을 가릴 수는 없다. 더욱이 2900만 사우디 인구 가운데 3분의1인 900만은 외국인이어서 터번으로 얼굴을 가린 사우디인들이지만 그들의 눈을 가릴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이 사우디 인들에게 준 영향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어려운 공식을 거쳐 나타날 것이다. 지켜볼만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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