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깨끗하고 연약한' 이국호, "나 자신한테 지치지 마라"
[인터뷰] '깨끗하고 연약한' 이국호, "나 자신한테 지치지 마라"
  • 조나단
  • 승인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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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大學路)는 대한민국 연극의 메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해 있다. 과거 서울대가 위치했던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극장들이 골목마다 위치해 있다. 7월 6일 촉망받던 권투선수와 무용수를 꿈꾸던 청춘의 꿈과 사랑, 좌절을 그린 연극 <깨끗하고 연약한>의 막이 오른다.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연출은 이국호가 맡았다. 그는 연출뿐만 아니라 극작·배우로 ‘1인 3역’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국내 몇 없는 무술감독이기도 하다. 연극계에선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평가다. 연습장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막바지 공연 연습에 한창이던 때라 그는 편안해 보이는 연습복 차림이었다.  “말을 시작하던 두서없이 말하게 된다."라며 인터뷰 시작 전부터 고민하던 그. 이국호를 통해 그가 생각하고 있는 연극과 삶에 대해 들어봤다. 

 

 

- <깨끗하고 연약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게 됐다. 축하한다. 대박이 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깨끗하고 연약한>은 촉망받던 권투선수와 무용수를 꿈꾸던 청춘의 꿈과 사랑, 좌절을 그린 연극이다.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깨끗하고 연약하다는 제목처럼 아픔을 딛고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이 살만한 세상임을 말하고 싶었다. 

 

 

-작품을 계획한 배경은. 

▲2016년 경 한 회식자리에서 슬픈 연극을 한 편 만들어 보겠다고 소리친 게 계기가 됐다. 내뱉은 말이 있으니 아침 10시에 카페에 출근해서 문 닫을 때까지 카페에 남아 글을 썼다. 처음엔 막막했다. 그 와중에 우연하게 봤던 일본 권투 선수 하레루야 아키라가 생각났다. 그를 생각했더니 거짓말처럼 일주일 만에 초고가 만들어졌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의 퇴고를 거쳐 이제야 무대에 올리게 됐다. 사실 처음 말했던 것처럼 슬픈 것 같지는 않다. 이제 공연을 올리는데, 지금 봐도 너무 부족한 게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무대에 올릴 결심을하게 된 것은, 부족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관객들에게 관심을 끌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연극 깨끗하고 연약한 포스터
연극 깨끗하고 연약한 포스터

 

-인터뷰 요청을 받고 고민을 많았다고 들었다.  

▲ 맞다. 2016년 <백중사 이야기>란 작품을 할 때 처음으로 인터뷰를 했다. 당시 기자들을 만나고 나서 "이 시국(당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등과 관련된 국내 정세)에 왜 이런 작품을 연출하게 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친구의 추천으로 인터뷰를 했던 건데, 첫 질문을 시국에 대해 말하니까 황당하기도 하고 웃음이 났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몰라요"라고 말했다. 여자 기자 두 분이 오셨는데 처음 만나 어색했던 분위기가 ‘모른다’는 대답에 빵 터져서 완전히 풀어졌었다. 기자분들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 사실 모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시국 이런 걸 떠나서 하고 싶어서 한 작품이었다. 

 

 

- 작품 선정 기준이 있을까. 

▲ 배우로 무대에 오를 경우엔 연출자로부터 선택을 당하는 것 같다. 극단에 있을 땐 하기 싫은 작품이 있더라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출·배우·극작을 하면서부터는 본능적으로 호감이 가는 작품을 하는 것 같다. 앞서 말했던 <백중사 이야기> 같은 경우엔 2006년 초연 때도 주인공 백중사 역할을 맡았다. 그때 무대에 올랐던 게 몸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그래서 "언젠간 한 번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하게 됐다. 작년에 올렸던 <생존 도시>의 경우엔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로 한 달 동안 공연했다. 힘들었던 역할이나 작품들의 경우에 기억에 더 오래 남아 있는 것 같다. "다시는 안 한다", "다시는 안 해야지" 하는 작품들이 꼭 기억에 남는다.  

 

연극 생존도시 포스터

 

- 이국호는 대학로의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평가다. 배우, 연출가, 무술감독, 극단 대표도 하고 있다. 이국호를 소개 하자면. 

▲ 사람 이국호라고 하자면, 그냥 보통 사람이다. 조금 이중적인 모습도 있는 것 같다. 남들은 착하다지만 나쁜 놈이고, 남자답다고 하지만 되게 여리고 눈물도 많다. 그게 약간 일반인들보다 극단적으로 센 편인 것 같다. 그리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열심히 사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다. 남는 것은 없지만.(웃음) 

 

-극단 ‘낭만 오빠’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극단 창단 배경은. 

▲ 마음의 잔상처럼 남아있던 작품과 언젠간 내가 이 작품의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극단을 창단 배경이다. 당초 연출에 대한 꿈은 없었다. 무술 감독을 하면서 극의 갈등을 놓고 연출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연출에 대한 꿈을 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모아둔 돈으로 3일 정도만, 워크숍처럼 연출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아는 동생들이 준비 중인 작품이 엎어지면서 우연한 기회에 제작을 맡아 연출까지 맡게 됐다.

사실 <낭만 오빠>라는 이름은 준비 중이던 작품의 제목이었다. 이 이름으로 공연을 하려고 했다.  지난해 <생존 도시>의 연출을 맡으면서 극단 창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극단 작명을 고민하던 찰나, 번뜩 낭만 오빠가 생각났다. 그 이름으로 지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 극단 이름을 두고 비웃는 사람도 있더라.(웃음) 

 

 

 

-국내 무술 감독이라고 하면 대중적으로는 '정두홍' 감독 정도가 생각난다. 무술감독을 하려면 무술에 조예가 깊어야 한다.  

▲ 제일 처음 배웠던 것은 합기도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사범 생활도 했었다. 합기도가 힘들어 검도를 배워 사범도 했다. 인생이 힘들어 복싱을 배웠다. 영화에서 말을 타는 장면이 필요하다고 해서 승마도 배웠다. 이렇게 하다 보니 하나하나 쌓아나갔던 것 같다. 아. 마샬아츠도 배웠었다. 사실 무술 감독이란 걸 맡게 된 연유는 조광화 연출가님이 시키셔서 하게 됐다.

<생존 도시>는 2001년 유인촌과 조광화에 의해 초연된 작품으로 자원 고갈로 인한 생존 전쟁, 그 사이에서 먹고 먹히는 인간과 동물을 모습을 담은 다크 판타지와 무협을 가미시킨 작품이다. 당시 연출을 맡으신 조광화 연출가님이 제가 동기, 동생들과 액션 드라마 출연 준비를 위해 운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술감독을 제안하면서 무술감독을 하게 됐다.  

 

 

-영화와 달리 연극에서 무술감독 역할을 피를 말릴 것 같다. 매 공연마다 실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 진짜 악몽이었다. 연기도 못하는 애가 연기 준비도 못 하고 합을 짜야 되니까 머리가 아프더라. 야외무대가 있는 폐교에서 합숙을 하면서 조광화 연출가님은 새벽 내내 글을 쓰시고 전 옆에서 공연에 쓸 음악을 틀어놓고 칼 하나 들고 새벽 6시까지 합 짜느냐고 앉아 있었다. 당시에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렇게 힘들고 스트레스받으면서 준비한 공연이 잘 돼서 2001년에 두 번 작품을 올리고, 다음 해 대극장을 빌려서 극을 올렸는데 쫄딱 망했다. 좋은 일 때문에 망하게 됐다. 한국이 4강까지 올라갔지 않느냐. 완벽하게 망했다. 그러면서 무술 감독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저를 써주시는 연출가님들이 많아져서 1년에 한, 두 편씩일을 하다 보니까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아서 공부도 더 하게 됐던 것 같고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배우보다 무술 감독으로 많이 알려진 것 같다. 

 

- 공연 중에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가. 

▲ 다치는 일들은 너무 많이 일어난다. <생존 도시> 작업을 할 때도 허리도 그렇고, 손가락에 금만 다섯 번 이상 난 것 같다. 공연할 때 부상을 입은 적이 있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에 진통제 2알을 먹고 무대로 올라가 연기를 하고 퇴장하면 진통제 2알 먹고 쉬다가 다시 무대에 오르고 그렇게 하루에 수십 알을 먹어 던 적도 있다. 무술 감독을 하면서도 여기저기 막 다치고 찢어지고 부상도 많이 입었다. 영화 같은 경우엔 실수를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액션은 위험하다 보니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모든 배우들이 다 잘할 수 있도록, 혼도 내고 화도 많이 내는 것 같다.

요즘엔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이 생겼는지 후배 배우들의 성격에 따라 액션을 배분하고 있다. 액션의 합이라는 게 리듬 싸움인데, 박자를 딱 맞춰서 연습시켜놔도 실제로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다 보면 어떤 배우는 맞춰둔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면 합이 맞지 않으니 문제가 생기게 되는 거다. 그래서 욕도 많이 하는 것 같다. 크게 웃었던 에피소드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솔직히 좋은 기억보다 힘들고 아팠던, 그런 기억들만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힘들어서 그런가.(웃음) 

 

 

 

- 스포츠맨은 승부욕이 필요하다. 다재다능한 끼 역시 승부욕인가.   

▲ 노력이다. 무식해서 그런가 지기 싫었던 것 같다. 승부욕은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되돌아보면 대련에서 지면 그게 짜증 나서 일주일간 미친 듯이 운동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이기면 그 친구도 운동해서 다시 대련을 해서 얻어맞고, 그렇게 운동을 했던 것 같다. 승부욕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 있나 보다. 운동신경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뭔가 힘들었던 힘든 순간을 넘어서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다치기도 많이 다쳤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몸이 안 좋은 걸 수도 있다. 

 

- 배우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연기자·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한 번도 꾸지 않았다. 용기도 없었다. 어린 시절 우연하게 본 영화 <용쟁호투>가 인생을 180도로 바꿨다. 이소룡의 연기를 보면서 멋있다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당시에 배우 책받침 이런 게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이소룡이 들어가 있는 것들을 전부 샀다.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 이유도 이소룡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군대를 전역하고 체육관 사범일을 하면서 월 90만 원을 받으면 그중에서 70여만 원을 적금하고, 남은 20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 개인적인 후원 등으로 몇만 원, 식비로 몇만 원 나눠서 생활했다. 김밥을 한 줄 사면 아침에 반줄 먹고 나가고, 저녁에 들어와서 남은 반줄을 먹었다. 

그렇게 2년을 일해서 번 돈으로 아는 사람이 추천해준 사람을 믿고 무턱대고 술집을 열기 위해 준비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기를 당해 모든 돈을 날려버렸다. 지붕도 없는 철골 뼈대만 남아있는 그 장소에서 술을 한 병 사 와서 마셨다. 악착같이 번 돈이지만 모두 날려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술을 마시다 보니 첫날은 한 병 다음날엔 두 병 이렇게 점차 늘어가더라, 그러다가 '아 이대로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걸 해볼까, 하고 싶은 걸 해볼까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못 해본 걸 해볼까"라는 생각이 지나갔고, 그래서 시작했다. 스물여섯 살 때였다. 일터와 연기학원을 오가면서 시간을 쪼게고 쪼개서 연기를 배웠던 것 같다. 연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알게 된 교수님의 도움으로 대학로에 가게 됐고, 그렇게 연기를 시작했다.  

 

-연출·배우 등은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산모의 산고(産苦)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아쉬움에 남는 작품과 배역을 꼽는다면.  

▲ 많았던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바로 잊어 먹는 스타일이다.  요새는 잘해도 아쉽고, 못해도 아쉽다. 이런 것보단 공연 끝나고 공허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이제 뭐 하지?' 이런 생각이 많아졌다. 그냥 외로운 걸 수도 있다. 요즘 들어 외로운 것 같다.  

 

 

- 배우라는 직업이 사실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 피해 갈 수 없다. 

▲ 그렇다. 어떤 배우들은 일 년에 몇 편씩 올라가기도 하고많게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받는가 하면, 소극장 공연을 하고 있는 배우들 같은 경우에 1년에 몇백만 원 정도 밖에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투잡은 기본이랄까. 근데 왜 하느냐 이렇게 말하면 이제는 다른 걸 할 수가, 하러 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일 년에 수백만 원을 벌면 그 돈에서 조금 떼서 빚 갚고, 갚은 거로 해서 조금 더 빌리고, 빌린 돈을 모아서 다음 공연을 올리고 있다. 미친것 같다는 소릴 들었다. 나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재밌다. 무대에 올라가는 배우로서도 제3자에 입장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는 연출가로서도 혹은 배우들의 합을 짜는 무술 감독, 무대 조명, 음악 등등 모든 게 재밌다. 그래서 그런가 그냥 돈 좀 많이 벌었으면 제일 좋을 것 같다. 

 

- 미래학자들은 AI 등 4차 산업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이국호가 바라보는 10년 후 공연·문화계는 어떤 모습일까.

▲ 글쎄, 10년 후 모습은 10년 전이랑 지금이랑 큰 변화가 없으니까 별다른 것은 없을 것 같다. 다만 공연이 끝나고 다음 작품의 작업을 들어가는 사람들이 오로지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생활비 정도가 어느 정도 나왔으면 좋겠다. 사실 작품이 많이 없어서 일을 못하고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한 달에 100만 원이면 월세도 내고 커피도 살 수 있는 큰돈이다. 사실 더 벌어야 된다. 그렇게 벌어 나가다 보면 10년 후면 배우들이 200만 원까지 벌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지금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친구들도 그렇고 연극 판에 들어왔는 배우들도 최소 200만 원씩만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배우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알바를 안 해도, 투잡을 뛰지 않아도 연기만으로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는 못 주고 있어서 배우들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 이제 연기를 시작하거나 연출가라는 사람 혹은 직업에 매력을 느껴서 진학을 생각 중인 학생들과 이미 대학로 등에 진출해 무대에 오르고 있는 후배들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일단 '지치지 말아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치지 않아야 버틸 수 있다. 

"나, 나 자신한테 지치지 말아라"  

처음 시작했을 땐 진짜 연기를 못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연기를 하면 머리도 몸도 힘들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지치지 말고 버텨라 버텨서 주인공을 하면 좋고,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자기한테 맞는 역할을 맡아보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좀 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으면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버티고 있으라고 말하고 싶다. 가끔 후배들이 찾아와서 묻는 경우가 있다.  

 


 

 

"선배님 어떻게 거기까지 오셨어요? 너무 힘들어요"  

 

"버텨" 

 

"너무 힘들어요" 

 

"그만둬" 

 

"근데 하고 싶어요" 

 

"그럼 버텨" 

 

"돈이 필요해요" 

 

"돈이 필요해? 그럼 벌어" 

 

"공연은 언제 해요?" 

 

"돈 번거 가지고 해, 아니면 벌면서 하든가" 

 

   


 

이렇게 말했다. 그 산증인이 바로 앞에 있다고 말해주는데 안 믿는 것 같다. 지치지 말고 버티라는 말 밖엔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지치지 않아야 버틸 수 있다. 사실 예전에는 큰돈을 원하면 방송이나 영화 등 영상 매체로 넘어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런 경계선이 많이 없어졌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워낙 감이 좋아서 나는 몇십 년이 걸렸지만, 지금 친구들은 빠르니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조언도 필요 없을 거다. 그냥 나처럼 조금 모자란 친구들, 우직한 친구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자기 자신 믿고, 버티고, 연극하고 싶어서 왔는데 왜 알바를 해야 되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연극을 선택했기 때문에 알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이번 작품을 하려고 봉제 공장이라던가 에어컨 청소 등을 하면서 돈을 벌어왔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힘들지만 모두 다 즐거웠다. 왜냐 공연을 할 수 있으니까. 

 

 

 

 "인정해라, 지치지 마라. 버텨라. 못하면 못하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인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만하거나 이기적인이지만 않으면 좋겠다. 제일 싫어하는 게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열심히 하고 지치지 않고, 인정하고, 버티거나 아니면 자기가 원 없이 하고 나서 미련 없이 다른 데 가면 되는데 꼭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을 제일 싫어한다"  

 

세상 사는 것은 모두 자기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내가 인생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든 거고. 나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이렇게 해야 돼? 그게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돈이 없으면 벌면 되고, 연기를 못하면 못한다고 인정하면 된다. 그게 힘들면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근데도 하고 싶으면 이겨내야 한다. 예전엔 누군가 "연기되게 못하시는 거 같아요"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땐 큰 상처였다. 지금도 상처긴 한데 지금은 "맞아요. 저 부족한 거 맞아요"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나 시선이 다르지 않느냐. 아 이 사람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 질문이다. 다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해봤으면 하는 사람이 있을까. 

▲ 이번 작품에 같이 들어가는 여배우 이화를 추천한다. 같이 작업을 하면서 몸쓰는 거로 너무 힘들어하지만, 항상 그걸 이겨내는 친구다. 흔치 않다. 연기도 잘한다. 저한테 욕도 하고 악도 있고 깡도 있어서 추천해주고 싶다. 이쁜 역할 아니면 주목받는 역할 이런 거도 있지만, 항상 자기를 이겨내려고 한다. 울지만 이겨내려고 하고 지금도 작년 작품 <생존 도시>때 입은 부상 때문에 아파하고 있지만 이겨내려고 한다.  

해줄 수 있는 게 인터뷰인 것 같다. 그 친구는 좋은 배우니까. 다른 제작자에게 노출돼서 배우로 쓰였으면 그래서 저랑 작업을 안 했으면 한다. 대접받고 잘 됐으면 하는 친구다. 사람 만들어 주는 건 자신 있다. 사람은 만들어졌으니 빨리 잘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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