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s' 작가 전병구 "선택의 순간, 나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s' 작가 전병구 "선택의 순간, 나에게 보내는 편지"
  • 조나단
  • 승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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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시내에 있는 절, 조계사 옆 골목 어귀를 걸어가다 보면 주위 풍경과 전혀 다른 최신식 건물이 하나 세워져있다. 바로 2010년 개관한 OCI 미술관이다. OCI 미술관은 'OCI YOUNG CREATIVES'라는 이름으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창의적이고 실력 있는 신진 작가를 선정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OCI가 지원해주는 신진 작가 지원은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알려져 있다. 우연한 기회에 그 치열하다는 자리를 차지한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OCI 미술관을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전시제 <Letters>의 전병구 작가의 전시를 둘러봤다. 밝은 느낌의 작업들이 많았다.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아니면 언젠가 찍었던 사진 속 한 장면인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었다. 작가 전병구. 그는 33살이라는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회화를 통해 세상을 표현했던 작가 전병구를 만나, 그의 생각과 미술 세계를 엿들었다.  

 

 

 

 

- <Letters>란 전시 제목이 눈에 띈다. 편지란 내가 누군가에게 써서 보내기도, 누군가에게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전시 제목과 이번 전시에 대해 소개하자면. 

▲ 이번 전시는 OCI 미술관에서 신진작가 전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리는 개인전이다. 전시 제목은 <Letters>라고 지었다. 외부 세계의 이미지가 내게 말을 건다고 생각했다. 외부 세계의 이미지라고 하는 건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 웹이나, 영화 등을 포함한 각종 미디어 매체 등 일상에서 스쳐 지나는 수많은 이미지들. 그것들 중에서 나의 시선을 계속 끄는 것들. 그런 경험들을 이미지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적인 경험에서 오는 이미지들이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과 내가 주고받는 형식을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약간 복수 형적인 <Letters>라고 제목을 지어봤다. 작업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미술을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감상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 그런 점이 나름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시는 어땠나. 

전병구_Untitled_2018_oil on canvas_31.8 x 40.9 cm
전병구_Untitled_2018_oil on canvas_31.8 x 40.9 cm

- 많은 전시를 가진 못해서 어떻다라고는 못 말하겠다. 봤을 때 밝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 와중에 약간 어두운 작품이 하나 있어서 그 작품이 눈에 띄었다.  

▲ 이번 전시에선 전시 구성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보면 밝은 작품들이 많다. 사실 그동안 작업들은 중성적인 색이거나 채도가 낮은 느낌이 많았다. 어둡고 우울한 그림이 많았다. 뭔가 조금 낮이어도 그냥 낮이 아니고, 어둡고 흐린 우울한 분위기가 드러나는 그런 낮. 지금처럼 밝은 색의 작업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번 전시를 보신 분들이 많이 밝아졌다고 말씀해주셨다. 채도는 많이 올라갔지만, 작품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사실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변화의 과정 중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전병구_Untitled_2018_oil on canvas_24.2 x 33.3 cm
전병구_Untitled_2018_oil on canvas_24.2 x 33.3 cm

 

- 전병구란 작가를 소개하자면  

▲ 2016년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활동을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회화라는 매체에 고유성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일상에서의 이미지적인 경험을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작가이다. 


- 미술이나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 대중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일러스트나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대중매체들을 사춘기 때 많이 접했다. 이런 매체들을 보다 보니 나도 이런 창작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들어간 학부에서 다양한 매체를 다룰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 영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회화, 입체, 사진 등을 얇지만 넓게 배웠다. 그중에서 회화라는 매체가 가장 매력적이고, 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전시를 많이 보고, 외국 작가들의 화보집을 보며 "나도 그림을 그려 봐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회화작가들에게 동경심을 느꼈다.

 

 

 

 

- 기억에 남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 대학교 때, 뤽 튀망이나 엘리자베스 페이튼 등의 작품을 처음 봤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회화는 진중하고 무겁게 그리는 그림들,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림들이 회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이미지들에 대해서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현대 페인터들의 그림을 보고 순수미술에서 페인팅이라는 고루하지 않고 무척 자유롭고 세련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엘리자베스 페이튼이나 조르조 모란디 등 비교적 작은 사이즈의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보면서 회화 작품이 꼭 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현대의 페인터들의 자유로운 표현 양식과 다양한 사이즈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며, 스스로 만들었던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워나갔다.  

 

 

-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다고 했다. 그중에서 회화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꼈다고 했는데, 회화를 제외하고 매력 있었던 매체가 있다면  

▲ 사진이라는 매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작업 초기에도 사진들을 활용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영향을 많이 받았었고, 사진들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라던지 찰나의 느낌들이 좋았던 것 같다. 사진의 경우 연작들이 많아서, 이런 작업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작업 초기에는 사진을 보고 그리다 보니, 재현에 몰두하게 됐던 것 같다. 사진 속 이미지에 끌려들어 가 버리는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사진에는 관심이 많다. 스냅사진 형식의 개인적인 주제를 다루는 작업을 좋아한다.   

- 사진에 빠져든다는 표현이 재밌다. 어떤 시기에 그랬었나.  

▲ 사진에 빠져든다는 이야기는 사실 재현에 대한 이야기다. 재현에만 몰두하다 보면 회화의 매력은 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극복 중이라 생각한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사진의 구도, 색, 구성 등을 생각하며 '셀렉'(Select)과 편집에 과정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전병구_산수유와 석가_2018_oil on canvas_72.7 x 53 cm
전병구_산수유와 석가_2018_oil on canvas_72.7 x 53 cm

 

- 선택은 언제나 어려운 것 같다.  

▲ 맞다. 작업의 시작 전부터 수많은 선택을 한다. 이미지를 회화로 옮기기 전에 셀렉을 통해 재편집을 가지는 시간을 오래가지게 됐고, 회화라는 매체에 대한 특성을 더 크게 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계속하고 있다. 회화의 고유성, 그리고 타 매체들과의 차별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혹은 작품, 전시가 있다면  

▲ 작품을 하나 딱 찍어서 이거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장 아끼는 작업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작업이라고 한다면 2013년 작업한 <1996>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사진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작업들 중 하나였다. <1996>이라는 연작 제목으로 내 개인적인 가정사를 다룬 작업이다. 너무 직접적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작업이다. 가정 내의 풍경과 일상에서의 잔여들을 관찰하여 기록한 작품이었다. 가족이라는 주제는 지금은 약간 일단락된 느낌이긴 한데 계속 끊임없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나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연작이어서,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그간 발표할 기회가 없었는데 작년 2017년에 신한 갤러리에서 처음 발표를 했다. 감회가 새롭더라.  

 

전병구_Untitled_2017_oil on canvas_40.9 x 31.8 cm
전병구_Untitled_2017_oil on canvas_40.9 x 31.8 cm

 

- 아쉬웠던 작품은 없었나.  

▲ 사실 아쉬운 작업이나 작품들은 발표를 하지 않았다. 이런 작품들은 발표를 안 해서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발표를 하지 않을 예정이다.(웃음)  

- 그럼 발표했던 작품들은 아쉬움이 없었다고 보면 될까.  

▲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쉬운 작품들이 있을 수 있지만, 나 스스로는 특별히 후회가 남지는 않는다.  

 

전병구_Untitled_2018_oil on canvas_31.8 x 40.9 cm
전병구_Untitled_2018_oil on canvas_31.8 x 40.9 cm

 

-전시 이후의 목표가 있다면.  

▲ 사실 명시적인 어떤 목표는 없는 것 같다. 전시라는 것을 보면 제시가 뜸하다가도 갑자기 생기기도 한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잘 그리고 싶은 게 목표다. 가끔 전시도 하고 작품 발표도 하고, 순환이 되어서 작품 활동을 지금처럼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계속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 그게 유일한 목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 문화예술계 10년 뒤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 것 같나, 아니면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나. ▲ 질문이 너무 어렵다. 당장의 나의 미래도 상상이 안 간다. 그래도 말을 해보자면 미술계가 바뀌었다 라거나 바뀌었으면 한다는 것보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살아감에 있어서 좀 더 좋은 여건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전병구_상당산성을 내려오며_2018_oil on canvas_31.8 x 40.9 cm
전병구_상당산성을 내려오며_2018_oil on canvas_31.8 x 40.9 cm

 

- 미술 혹은 예술을 시작하는 학생이나 어린 친구들 혹은 후배들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목표나 확신을 가지고 미대를 선택한 친구들이 많이 없다. 모두가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도 경력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니, 이건 뭐고 저런 건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냥 미술대학 학부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졸업 후에 진로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겠지만, 학교를 다니는 만큼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과제도 열심히 하고, 교수님들 동료와도 많은 이야기 나누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나중에 작가가 되는 것을 떠나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학부시절에 미술에 몰두했던 시간이 자부심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 다음으로 추천해 주고 싶은 작가가 있다면?  

▲ 생각해 뒀던 작가는 동양화를 다루는 허주혜 작가이다.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고, 이 지면에 서양 미술에 바탕을 둔 작가들 위주였던 것 같아 추천하고 싶다. 

 

 

 

 

 


 

 

OCI 미술관은 "OCI YOUNG CREATIVES"를 통해 2010년부터 엄정한 심사를 통해 창의적이고 실력 있는 국내ㆍ외 신진작가들을 선정하는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선정된 작가는 총 1,000만 원의 순수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며 OCI 미술관에서 별도의 초대 개인전을 개최한다. OCI 미술관은 "일회적인 지원에 그치지 않고, 향후 작가의 역량에 따라 다각도의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전병구 (b.1985) 

작가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했다. 
《Factotum.1996, Untitled》(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17), 《Afterimage》(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7)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익숙하거나, 혹은 낯선》(교보아트스페이스, 2018), 《기억 감각》(일현미술관, 2017), 《Spectator》(신한갤러리 역삼, 2017), 《Twin Peaks》(하이트 컬렉션, 2016)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OCI 미술관에서 개인전 <Letters>를 열고 있으며,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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