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가 박은영, 먹지로 표출한 '파괴의 미학'
[인터뷰] 작가 박은영, 먹지로 표출한 '파괴의 미학'
  • 조나단
  • 승인 2018.0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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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지는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어느날. 경복궁 옆 서촌 마을의 골목 길가에 있는 한 카페에서 박은영 작가를 만났다. 많은 짐을 가지고 카페에 들어온 박은영 작가 작가는 '안녕하세요'라는 수줍은 인사에 이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박은영 작가는 인터뷰 시작 전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하나 둘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꺼낸 것은 그녀의 작업들을 모아둔 포트폴리오였다. 포트폴리오를 통해 이전부터 해온, 해왔던, 하고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작가의 설명을 통해 들었다. 이것 또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꼽자면, "저는 이렇게 이미지가 이쁘게 보이는 거에 대해서 거부감 있기 때문에 패턴을 없애거나 파괴하는 쪽으로 작업 방향을 잡았다"와 "먹지를 이용한 작업이 내가 추구하는 드로잉의 완성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지를 통해 반복적인 작업을 하다보니 '어떤 것이 껍데기고 알맹인지', '음인지 양인지' 등에 대한 고민까지 이어졌다" 등이 있었다.

박 작가님의 작품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박은영 작가는 질문에 대해 바로 말 하는 것은 버벅거리고 횡설수설한다며 미리 보내주었던 질문지에 간단하게 답문을 적어온 노트를 꺼냈다. 

 

Forest of Enjoyment #yin [Detail]
Forest of Enjoyment #yin [Detail]

 

- 예술가로서 혹은 작가로서 박은영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걸 하고 있는지 소개하자면.

▲ 일단은 제가 하는 일은 주로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사진 등의 매체를 통해서 기록으로 남겨, 이를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을 많이 찍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저는 생각보다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다. 그리고 저는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걸 또 되게 꼬아서 바라보거나 어떤 의외의 것들을 조합해보려는 시도도 많이 하는 편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먹지라는 매체도, 알고는 있었지만 우연하게 발견하게된 작업이다. 사실 수많은 실패를 한다. 뭔가 내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이나 작업실에서 이것저것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어떤 영화를 보거나 작품등을 볼때 그런 것들을 의심하고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뒤에 남겨지는 것들을 감각화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물질적인 방법을 통해 시각화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Wall in shade_single channel video 16_53___2018
Wall in shade_single channel video 16_53___2018

 

- 지금 작품을 전시 중이라고 했다. 전시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 지금 청주시립대청호 미술관에서 그룹 기획전에 참여하고 있다. 주로 식물 혹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 등을 작가들이 다양한 방법과 매체를 통해서 보여주는 그런 기획전이다.  총 11 팀·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6월 17일까지 전시가 기획되어있다. 여기서 저는 '관찰자의 정원'이라는 전시 기획 부문에서 식물을 매개로 작업하는 시각 예술가 4인 중 한명으로 참여했다. 드로잉과 영상 작업을 전시중이다. 다른 세명의 작가들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 자기가 식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풀어내고 있다.

'관찰자시점' 전시 소개글 일부 

관찰자시점은 식물을 소재로 한 전시 이지만 그보다는 우리는 '왜 관찰하는 가?' 라는 물음에서 출발하며, 식물 혹은 자연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미적 태도와 접근방식을 짚어본다. 관찰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 깊게 살피고 파악하는 행위로써, 미술에서 중요한 미적 태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예술가들은 관찰을 통해 대상을 재인식하고 심미적인 감각과 상상력을 덧붙어 자신만의 언어로 표출하거나, 대상 너머에 숨은 이면을 관철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관찰자들이다. 그들은 관념적 이거나 주관적인 관점으로 대상을 해석하기도 하나,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목격하고 미적경험들을 생산한다.

 

Wall in shade_single channel video 16_53___2018
Wall in shade_single channel video 16_53___2018

 

- 먹지라는 매체를 쓰게된 계기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제가 작업이 잘 안되면 항상 화방을 간다. 그냥 화방을 가서 구경을 하고, 지금 쓰는 것과 전혀 상관 없는 그런 재료들을 그냥 보이는대로 사기도 하고, 뭔가 끌리는 대로 살때도 있다. 그래서 집이나 작업실에 놔둔다. 가끔 작업이 안풀리면 그런 것들을 가지고 노는데, 그 와중에 먹지가 있었던 것. 당시에 여러 장의 먹지를 사왔었다. 그래서 먹지를 가지고 주변에 있던 사진에 다양한 패턴을 그렸었는데 굉장히 재밌는 효과가 나타났다. 먹지에 남겨지는 패턴 뿐만 아니라 먹지 아래,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재밌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먹지를 이용해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다. 먹지를 이용한 작업을 하다보니, 먹지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 같은 부분이 나와 닮아있다는 그런점을 알게됐다. 주로 먹지를 이용한 작업을 하고 있지만, 먹지 말고도 다른 매체도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Forest of Enjoyment #trace_ tracing paper, wood, aluminum_ 122 x 122 x 75~
Forest of Enjoyment #trace_ tracing paper, wood, aluminum_ 122 x 122 x 75~

 

-작업을 하면서, 예술을 하면서 추구하거나 표현·표출화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 지금 현재 제 관심사는 특정 감각이나 감정이 어떻게 시각화 될 수 있을까, 그런 감각·감정의 시각화에 대한 탐구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가 왜 이런 매체를 선택하게 됐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과 검증을 반복하고 있다. 어떤 작업을 하던, 작업과 나의 관계를 할수있는 한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먹지로 한정된 시간동안 반복적으로 드로잉하여 신체를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프로젝트를 했다. 지금은 짧은 시간동안 어느 장소 특정 장소에서 빨리 무언가를 캐치해서 영상작업으로 만들어 내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실 이전에는 스튜디오 안에서 디스크 걸릴때 까지 오랜 기간 무리한 자세를 지속해 반복적으로 작업을 했다. 이 방식으로 작업을 계속 진행하게 되면 안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튜디오 안에서 예술가로서의 나를 자학하는 것보다 사회에 나가 예술가 박은영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작가들을 만나면서 나를 비춰보고 되돌아 보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제 나 혼자 만의 작업보다 다른 작가와의 교류 등을 통해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모색하려는 그런 과정에 있는 것 같다.

-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시드니에 갔다고 들었다. 휴가차 여행을 떠났었나.

▲ 휴가, 휴식 겸 공부도 겸해서 시드니에서 하고 있는 비엔날레를 보러 갔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비엔날레 중 하나다. 거기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 작업들을 봤다.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회와 정치 문제들을 볼 수 있었다.

 

Wall in shade #trace_ pen, tracing paper_ 50.4 x 39.5 cm_ 2017
Wall in shade #trace_ pen, tracing paper_ 50.4 x 39.5 cm_ 2017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가장 최근에 본 작품이 이번 시드니 비엔날레서 본 작품이라 그 작품을 손꼽고 싶다.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Ai Weiwei)가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작업을 공개했다. 국제적으로 큰 이슈가 된 난민에 관한 문제를 다뤘다.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을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 10분 이상이 걸렸다. 엄청 나게 큰 대형 작품이라 뭔가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특수 제작된 검정색 풍선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보트와 인간 형태의 풍선 등을 보니 아이웨이웨이가 보내는 메세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아이웨이웨이의 책도 사 가지고 왔다.

- 작업 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을 것 같다.

▲ 아쉬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사실 저는 왠만하면 아쉬운 작업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저는 어떤 작업을 하게 되면 이게 풀릴때까지 굉장히 악바리 적으로 물고 늘어져야 된다. 그래서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도 작업을 끝마치려고 하는 그런게 있다. 이런 방법이 좋은 것은 아닌데, 당시엔 그렇게 했었다.
굳이 그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작년에 진행했던 롤 드로잉 작품이 아닐까 싶다. 당시 작업 환경이 좋았지만 청주창작스튜디오에서 머물고 작업을 했었던 시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아, 조금 더 오랜 시간을 두었다면 제 감정을 좀 더 농밀하게 넣었을 수도 있고 조금 더 다른 결과가 나왔을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그 작품의 작업을 마무리 할 때 굉장히 시간에 쫓기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반쯤 정신이 나가서 뭘 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무리 했다. 마지막 과정에서 컨디션과 감정의 흐름을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다음에 이와 비슷한 작업을 하게 된다면 시간을 좀 더 두고 여유있게 해보고 싶다. 

-하고 싶었던 작품이나 사용하고 싶은 매체등이 있나?

▲매체같은 경우에는 제가 영상도 하도 페인팅도 하고 다양한 작업을 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섣불리 얘기 할 수 없다.

-그럼 하고싶은 작업이 있나.

▲하고싶은 작업이라기 보다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Forest of Enjoyment #yang [Detail]_ carbon paper, acryl_ 가변크기_ 2017
Forest of Enjoyment #yang [Detail]_ carbon paper, acryl_ 가변크기_ 2017

 

-과정이라고 하면 궁극적으로 어떤 시간을 이야기 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어떤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작업을 하며 어떤 특정 상황을 경험해보고 싶은 게 있다.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보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몰입의 순간은 항상 짧게 기억된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과 나 자신을 잊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 나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려움과 불안을 모두 던져버리고, 긴 호흡과 흐름으로 시리즈의 작품과 대형 작품을 진행해 보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를 겪는 예술가를 두고 미쳤다고들 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면서 작품에 몰입하는 이러한 것을 예술가들이 느낄 수 있는 정수라고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혹은 내가 가는 길을 따라오는 후발주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해당 질문은 박은영 작가가 준비한 답문과 현장에서 답한 말을 함께 적었다.
 
▲(현장) 제가 작업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작가가 정확하게 바라보는 지점. 그 지점이 제 작업에 출발점이 됐다. 그 지점은 누가 나한테 말해줄 수 있는것도 아니고, 책에서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방법을 말해 줄 수 있지만, 그것을 찾는건 작가 스스로가 해야되는 일이다. 스스로 깨달아야 된다. 도움을 주자면 우선 최대한 나의 욕구와 욕망에 솔직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고 무엇을 궁굼해하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바라 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요즘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미술의 세계와 흐름을 확인 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내가 가진 욕구가 진정한 나의 욕구인지 타인의 욕구인지를 혼동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항상 내가 어떤 욕구를 바라고 있는지 의식하고, 집념을 가지고 파고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Forest of Enjoyment #yin_ carbon on paper _ 600 x 140 cm_ 2017
Forest of Enjoyment #yin_ carbon on paper _ 600 x 140 cm_ 2017

 

▲(답문) 스스로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지점이 내 작업의 출발지였다.

최대한 나의 욕구에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양의 정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나의 욕구는 때로는 타인의 욕구와 혼동될 수 있다고 본다. 순수한 내 욕구를 알게 된다면, 그것을 항상 의식해야 하고 집념으로 파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전 이 질문이 우리의 인터뷰중 제일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Forest of Enjoyment #yang _ installation view_ 2017
Forest of Enjoyment #yang _ installation view_ 2017

 

-위 '관찰자시점' 전시 소개글 일부 발췌 (청주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참고 : www.coma.or.kr)

‘관찰자시점’은 식물을 소재로 한 전시 이지만 그보다는 우리는 ‘왜 관찰하는 가?’ 라는 물음에서 출발하며, 식물 혹은 자연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미적 태도와 접근방식을 짚어본다. 관찰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 깊게 살피고 파악하는 행위로써, 미술에서 중요한 미적 태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예술가들은 관찰을 통해 대상을 재인식하고 심미적인 감각과 상상력을 덧붙어 자신만의 언어로 표출하거나, 대상 너머에 숨은 이면을 관철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관찰자들이다. 그들은 관념적 이거나 주관적인 관점으로 대상을 해석하기도 하나,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목격하고 미적경험들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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