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한민국 간호사들 “우리는 계속 태워질 수밖에 없나요?”
[기자수첩] 대한민국 간호사들 “우리는 계속 태워질 수밖에 없나요?”
  • 오혁진 기자
  • 승인 2018.0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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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증권신문-오혁진 기자] 경찰이 서울아산병원 신입 간호사 자살 사건에 대해 내사를 종결했다. 병원 내 괴롭힘이라 불리는 ‘태움’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태움은 병원 간호사들의 군기문화로 신입 간호사들을 과하게 괴롭히며 교육시키는 것이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고 박선욱 간호사 유족 측은 20일 경찰수사에 대해 “수사가 충실히 진행되었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며 반발했다. 앞서 박 간호사의 유족과 남자친구는 죽음의 배경에 병원 내 ‘태움’이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유족 측을 돕고 있는 간호사연대도 경찰이 아산병원 쪽의 진술만 듣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하고 내사를 종결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간호사연대 관계자는 “유족들은 형사처벌이 아닌 사건의 경위를 알고 싶어 하신다. 지금도 너무 힘들어하시고 계신데 경찰이 이런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간호사의 죽음이 대한민국 보건의료계의 민낯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많은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보건의료노동자 ‘실태’

전문가들은 ‘태움’문화가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열악한 근로 환경’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한민국 보건의료노동자 대부분이 시간 외 근무수당을 받지 못하고 근무 중 휴식시간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간호사들은 10명 중 7명이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하고 10명 중 3명은 끼니를 해결할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0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전국 54개 병원에 근무하는 보건의료산업 노동자 1만1천662명을 대상으로 '갑질' 실태조사를 벌였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하는 병원 노동자는 59.7%에 달했다. 또 업무 관련 교육이나 워크숍이 있으면 휴가 중이어도 참석해야 하는 등의 상황이 만연했다. 간호사는 70.6%가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했다.

병원의 각종 회의나 워크숍, 교육 등 시간 외 근무를 하고도 수당 신청 자체를 금지 당했다는 응답도 전체 보건의료노동자의 26.3%에 달했다. 간호사는 28%가 수당 신청을 금지 당했다.
 
휴가를 강제로 배정 당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39.3%로, 휴가 사용권도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간호사 중에서는 48.2%가 강제로 휴가를 배정 당했고, 원하지 않는 휴일근무나 특근을 강요받았다는 응답도 37.3%에 달했다.

식사시간을 100% 보장받는 경우는 25.5%에 불과했다. 49.9%는 일부만 보장받고 있었고, 22.9%는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휴게시간은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4시간마다 30분이 주어지지만 이를 100% 보장받는 경우 역시 15.8%에 불과했다. 43.3%는 휴게시간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간호사는 병원 내 타 직종보다 식사시간, 휴게시간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향이 더 컸다. 간호사는 31.1%가 식사시간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이 중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경우 6.5%만이 식사시간 전부를 보장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동 간호사의 93%는 제시간에 식사를 못 한다는 뜻이다.

직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간호사 역시 83.3%로 전체 병원 노동자의 74%보다 컸다. 간호사의 65.5%는 폭언, 40.2%는 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성희롱·성폭행 등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간호사도 13.2%에 달했다.

인력 부족...'심각'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2016년 보건의료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의 절반이 면허를 취득하고도 보건의료기관에서 일하지 않고 있다. 2016년 기준 간호사 면허 소지자 35만5772명 가운데 보건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17만9989명(50.6%)에 불과했다. 나머지 49.4%는 일을 쉬고 있거나 다른 직종에 근무하고 있다.

문제는 면허 소지자의 현장 근무 비율이 낮다는 것보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실질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건의료 노조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간호사 임상활동인력(의료기관서 간호 제공 인력) 수 평균은 인구 1000명 당 6.8명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 당 2.4명으로 낮다.

간호사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간호대학 신증설과 정원 확대 역시 매년 계속되면서 간호사 신규 면허자 수는 2006년 1만 495명에서 2016년 1만 7505명으로 66.8%가 늘었다. 하지만 운영 병상 수 급증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증가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대한간호협회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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