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위기의 연희미용고 “저희는 배우고 싶습니다”
[기자수첩] 위기의 연희미용고 “저희는 배우고 싶습니다”
  • 오혁진 기자
  • 승인 2018.01.30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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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폐교 기정사실화...교육청 그 동안 뭐 했나
학생들 “학습권 보장하고 학교 돌려달라” 시위

[한국증권신문-오혁진 기자]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연희미용고등학교가 시끄럽다. 사실상 폐교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9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영하 12도의 강추위를 버텼다. 난로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학교 지하강당에서 폐교를 막기 위해 학교 이사회와 교육부에 맞선 것이다. 본지 기자는 이날 오후 2시 30분 연희미용고를 찾았다. 학생들은 울고 있었고 학부모들과 교육청 관계자들은 언쟁을 벌였다. 이들의 ‘파열음’에 대해 살펴본다.

“추워도 폐교는 막겠다”

연희미용고 학생 450여명과 학부모들은 지난 29일 학습권 보장을 요구하며 교무실을 점거하는 등 시위에 나섰다. 이 학교의 설립자이자 고인이 된 박재옥 전 교장의 ‘2011년 파행운영’ 대가를 학생들과 교사들이 치르고 있는 것이다. 연희미용고에는 학생들이 이용할 보건실·독서실·방송실이 없다. 예배당, 실습실로 쓰이던 신관이 매각돼 어느 날 갑자기 요양병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연희미용고는 지난 2012년 교사들의 월급을 대폭 삭감했다. 지금까지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교장은 2012~2015년 사이 증빙자료 없이 업무추진비·학교홍보경비 등의 명목으로 3억여원을 수당으로 타갔다가 교육청의 경고를 받았다.

지난해 박 전 교장이 숨지고 학교를 물려받은 상속자들은 재정이 부실화됐다며 사실상 폐교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상속자들은 올해 신입생을 뽑지 않았다. 특히 지난 26일에는 교사 다섯 명에게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해고를 통보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연희미용고가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이기 때문이다. ‘평생교육시설’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정규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근로 청소년이나 자퇴 등으로 학업을 그만둔 청소년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다. 문제는 2007년 평생교육법이 개정되면서 ‘평생교육시설’의 설립주체가 개인이 아닌 법인으로 제한됐다는 점이다. 법 개정 이전에 설립돼 개인이 소유한 학교들도 설립자가 사망한 뒤에는 법인으로 전환돼야 한다. 상속자가 법인화 의지가 없는 경우 폐교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박 전 교장의 상속자들은 연희미용고의 이사장이 됐다. 이들은 “학교를 법인으로 전환시킬 재정적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재학생이 졸업하는 2020년까지 폐교 수순을 밟겠다는 뜻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사실상 사유재산이어서 관할청이 법인 전환 등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학교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청이 학생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청와대 청원 누리집에는 ‘연희고 학생과 선생님을 도와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제기됐다. 오후 29일 4시 기준으로 73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박 전 교장, 왜 ‘막장 교장’됐나

박 전 교장은 연희미용고에서 ‘막장 교장’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1년 학생·교사에게 종교활동을 강요하고 감시카메라로 감시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특히 서울시교육청 실태조사 결과 교장은 학교재정으로 자녀들을 해외여행 보내는 등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이 입수한 시교육청의 연희미용고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장 등 학교 관계자들이 학교를 사금고화 했다. 박 전 교장은 학교 건물을 담보로 8억원을 빌린 뒤 이자는 학교 재정에서 내왔다. 또 자신의 자녀 두명을 각각 국제협력팀장과 부팀장으로 허위로 임명시킨 뒤 학교 돈으로 4번에 걸쳐 해외 현장학습에 동행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전 교장은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단체 7곳에 지난 2년간 내야 할 회비 6327만원을 ‘단체지원금’이란 명목으로 학교에서 내도록했다.

연희미용고의 문제는 이 뿐만 아니었다. 당시 탈세 및 비자금 조성이 의심되는 불투명한 회계 관리 내역도 포착됐다. 연희미용고는 교내환경공사를 하면서 건설시행사에 공사대금 1억5553만원을 주고도 세금계산서를 받고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았다. 또한 교육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2010년 충남에 수련회장을 지은 뒤, 수련회비로 1억1250만원을 벌어들여 이를 학교 재정에 포함시키지 않고 운영해왔다. 학교 급식비를 학교회계에 포함시키지 않고 담당교사가 개인적으로 관리하기도 했다.

교장이라는 사람은 비리를 저지르고 학생에게는 기독교 활동을 강요한 것도 모자라 학교 내에 감시카메라를 25대 설치한 뒤 모니터를 교무실에 둬 학생들을 감시해왔다. 특히 교육청에서 실태조사가 들어오기 전날, 연희미용고는 메이크업 실습실에 설치한 감시카메라를 황급히 철거했다.

당시 시교육청 평생교육과 배만곤 과장은 언론을 통해 “학력인정평생교육시설은 법인이 아니고 개인 재산이라 일반 학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어 감시가 쉽지 않다”며 “시교육청에서 담당하는 직원도 한 명이고 이 직원이 다른 일도 같이 하느라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연희미용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실은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학교 이사회와 교육청이 학생들과 교사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며 “국회 업무보고 회의 때까지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내부적으로 검토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도 “학교가 폐교된다는 것은 학생들이 졸업장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교육청이 연희미용고가 이 지경 될 때까지 뭘 한 것인지 상당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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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빈 2018-01-30 21:41:10
저희 연희미용고 학생들을 위한
좋은기사를 내주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ㅠㅠ
좋은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박현영 2018-01-30 20:03:44
정말 감사합니다 !

강은아 2018-01-30 19:28:39
감사합니다!!!

김정은 2018-01-30 16:34:57
학생들을 위해 좋은 기사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염도경 2018-01-30 16:23:13
기자님 저희 학교에 오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멋진 기자분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