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 "택시운전사"에 이은 역사적 아픔을 재조명한다
"삼청교육대", "택시운전사"에 이은 역사적 아픔을 재조명한다
  • 어승룡
  • 승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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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룡의 문화탐방 8 / 에버시네마 김종섭 회장
영화 삼청교육대 제작을 맡고 있는 에버시네마 김종섭 회장
영화 삼청교육대 제작을 맡고 있는 에버시네마 김종섭 회장

 

<삼청교육대>가 영화화된다. <택시운전사>가 80년대 광주의 아픔을 담았다면, <삼청교육대>는 권력에 희생당한 민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암울했던 군사정권시대의 만들어낸 적폐인 삼청교육대가 27년만에 영화로 만들어진다. 역사적 스토리에 영화화가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제작되고 있는 <삼청교육대>에 대해 심층 취재한다.

영화 삼청교육대의 제작진 좌로부터 허정 제작이사, 에버시네마 강철웅 대표, 김종섭 회장, 진명 프로듀서
영화 삼청교육대의 제작진 좌로부터 허정 제작이사, 에버시네마 강철웅 대표, 김종섭 회장, 진명 프로듀서

 

영화<실미도>와 <택시운전사>의 후속편 격인 <삼청교육대>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실미도>는 북파 간첩을 양성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이고, <택시운전사>는 광주사태를 경험한 외국인 기자의 시선을 다룬 영화이다. <삼청교육대>는 80년대 12.26사태로 박정희 군사정권이 끝나고 새로운 권력으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하에서 벌어진 인권유린 현장을 다루고 있다.

1980년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다. 그해 8월 4일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 및 ‘계엄포고령 제13호’에 의한 ‘삼청5호을 발표한다.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한다. 전국 군부대 내에 설치한 기관에 수감시킨다.  무고한 일반인과 여성들도 수감된다. 전체 피검자의 3분의 1 이상이 무고한 일반인이었다. 설치 목적과는 달리 조직적인 폭력 및 무자비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삼성교육대>의 영화화까지는 각고의 진통을 겪었다.
2004년 에버시네마는 영화제작을 진행됐다. 강철웅 대표는 상표권 등록을 포함에 저작권을 획득했다. <김의 전쟁><테러리스트>의 김영빈 감독, KBS 역사 대하드라마의 거장 김재형 감독 등 5명의 감독에 의해 작품이 준비됐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마침내 촛불민심을 등에 엎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강철웅 대표와 메트로사우나를 운영하는 김종섭 대표가 의기 투합하면서 영화제작에 들어가게 됐다.

김 회장과 강 대표는 광주 동신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함께 산악회 멤버로 지내면서 가까워졌다. 김회장은 14년 동안 강대표가 ‘삼청교육대’를 제작하기 위해 깊은 애정을 갖고 지켜온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들려는 그의 진정성에 감동을 받아 제작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 회장이 영화 초기 투자는 김종섭 회장이 책임지고 있다. 감독은 <조폭마누라 2>, <가문의 영광>을 연출한 정흥순 감독을 내정하고 각본 작업을 시작했다

김종섭 회장은 “강철웅 대표가 14년 동안 삼청교육대를 영화화하기 위해 많은 오랜 기간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는 누군가가 감추고 싶은 적폐인 삼청교육대가 이제는 제작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삼청교육대가 출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자 역할을 다 할 생각입니다. 역사적인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삼청교육대는 이전에 작성된 시나리오는 덮어두고 새로운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휴머니즘에 무게를 두고 각본을 새롭게 쓰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25살 국어선생으로 그가 억울하게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보고 경험한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할 예정이다. 주인공은 중국과 일본에 인지도가 있는 젊은 유명 배우를 캐스팅 할 계획이다. 영화를 위해 20년 동안 삼청교육대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와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영화는 허구의 예술이지만 사실 고증을 철저히 해서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남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김회장은 강조했다. 재미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세트장 건립을 위해 강원도 고성, 전라도 함평 등 여러 곳에서 지원을 약속 받은 상태다. 촬영장은 후에 역사문화관으로 단장해 삼청교육대에 관한 자료들을 함께 전시해 후대 젊은이들에게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사용할 계획도 갖고 있다. 영화 삼청교육대는 과도한 폭력과 액션 장면이 난무하는 영화가 아닌 인권유린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적절한 멜로드라마를 가미할 예정이다.

김회장은 영화 삼청교육대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화 삼청교육대는 군사정권이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삼청교육대를 통해 인권탄압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가 공감해 주었으면 합니다. 역사에 잘못된 암덩어리 같은 이 사건이 낱낱이 밝혀져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데 거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김회장은 “시대적으로 지금까지는 삼청교육대가 영화화 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 제작을 시작했는데 말입니다. 삼청교육대를 경험한 90% 이상이 현재 살아있습니다. 후유증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아픔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중증피해자만 약간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역사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영화가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삼청교육대에는 프로듀서로 충무로에서 오랜 제작 경험을 가진 진명 프로듀서와 강성환이 함께하고 제작이사로는 허정이 참여하고 있다.

삼청교육대 목봉체조
삼청교육대 목봉체조

삼청교육대

그 당시 검거된 사람들은 A, B, C, D의 네 등급으로 나누는 "심사" 과정을 거쳤다. 심사 과정에서 검거된 당사자의 의견은 반영되지 못했다. A급은 폭력배, 깡패의 수괴 및 간부, 폭력배, 깡패의 조무래기, 상습폭력, 실형 2범이상, 흉기소지, 강도, 절도, 밀수, 마약현행범으로 분류되 3253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B급은 기타 정치, 경제 폭력배, 상습도박, 사기꾼, 계획폭력, 불량서클, 강도, 절도, 밀수, 마약, 재범 위험이 있는 전과자로 4주 교육 후 6개월 노역을 시켰다. C급은 폭력 사실이 경미하고 우발적, B급 중 정상이 참작된 자로 2주 순화교육을 받았다. 이들 B, C급에 해당되는 3만9786명이 삼청교육대의 주 대상이었다. D급 1만 7717명은 초범, 사안이 경미한 정상적인 학생 및 소년, 직업과 주소지가 일정해 개선 가능성이 뚜렷한 자로 훈방조치 되었다.


그러나 이는 서류상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일 뿐이며 실제로는 불시검문 시 신분증을 미지참 등의 이유로 B급으로 분류되어 삼청교육대로 보내지기도 했다. 전두환을 비방한 자는 가차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B급 10,016명은 이후 20여개 부대에 분산 수용되어 "근로봉사", 즉 노역에 동원됐다. 이 근로봉사는 훈련생들이 자원한 것으로 돼 있었으나, 실제로는 군인들의 강요에 자원서를 강제로 쓰고 착출된 것이다. 1988년 국회의 국방부 국정감사 발표에 의하면 삼청교육대 현장 사망자가 52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3백 97명, 정신장애 등 상해자 2천 6백 78명이 발생했다고 보고하였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삼청교육 피해보상계획'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보상계획을 수립하고 삼청교육대 입소 피해자 3,226명의 보상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어떠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 후 2002년 10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삼청교육대에 대한 조사결과,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삼청교육이 위법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마침내 2003년 제16대 국회에서 「삼청교육대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며, 2004년부터 제정돼 국방부 산하에 관련 위원회를 설치하고 다시 보상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까다로운 보상 규정으로 인해 39,000여 명의 피해자 중 신청자는 4,600여 명에 불과했고, 보상금액도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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