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지워진 독립운동가의 이름 '나는 박열이다'
[도서] 지워진 독립운동가의 이름 '나는 박열이다'
  • 한국증권신문 기자
  • 승인 201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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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폭살을 꾀한 독립운동가 박열의 치열한 일대기

일왕과 그의 아들은 왜 죽어야 하는가? 일제의 법정이 묻고, 식민지 조선 청년이 답하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26, 도쿄 한복판에서 이상한 재판이 벌어졌다. 한 조선 청년이 조선의 임금 옷을 입고 피고석에 선 것이다. 청년의 죄목은 대역죄’. 일본의 왕과 왕세자를 폭살하려 했다는 혐의였다. 당시 일본에서 대역죄는 무조건 사형이었다. 하지만 대역죄로 피고석에 선 청년은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피고가 아니다. 나는 조선을 대표하여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피고에게 어쩐 일인지 판사며 간수들이 쩔쩔 맨다. 어찌된 일일까? 심지어 이 청년을 판사는 피고가 아니라 그대라고 높여 부른다.

나는 박열이다는 일본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기이했던 재판 풍경을 주문 세팅한 패기만만한 독립운동가 박열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다. 연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왕 부자를 폭살시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정에 서고 증거 없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남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8091일 동안 감옥살이를 한 뜨거운 심장의 혁명가, 그의 치열했던 삶과 피처럼 붉은 사랑 이야기를 당시 신문보도와 심문조서 등 자료를 토대로 담담하고 차분하게 복원해냈다.

 

무엇이 청년 혁명가로 하여금 23년의 감옥살이를 마다하지 않게 했는가

 

지은이가 보기에 박열(朴烈, 1902~1974)은 무엇보다도 도쿄의 재판정을 호령하던 당찬 독립운동가였다. 22년여의 길고 혹독한 감옥살이를 견뎌낸 의지의 혁명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진 불운한혁명가였다.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로 감형되어 일수로 8091, 연력으로 222개월하고도 하루 동안의 혹독한 일본 감옥생활을 견딘 운명의 승리자인 그는 왜 정작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지워졌는가? 그것은 우리 현대사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가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그는 지배권력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아나키스트였고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갔으며 24년 만에 전해진 소식이 부음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박열이다어느 잊힌 혁명가의 삶의 기록이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자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지은이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학생 몇 명에게 그의 이름을 댔다. 지적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를 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는 역사교육과 독립운동사 기술에 책임이 없지 않다. 경직된 반공 이데올로기의 교육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을 것이며, 비슷하게 경직된 지성 풍토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단지 아나키스트라는 이유로,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그는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진, 기피 인물이 되었다.”

 

일본 국민의 고혈을 갈취하는 존재, 일왕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런데 박열은 왜 일왕을 노렸는가? 사실 일왕을 폭살하려 했다며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히게 했던 박열 사건은 정작 폭탄 한 개도 계획서 한 장도 없는, 말하자면 증거 없는 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오로지 피고의 증언에 의해 죄가 성립되는 불안하고 이상한 재판에서 박열은 오히려 재판정을 전략적으로 사상 선전의 장으로 적극 활용한다.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의 법정에서 자신의 사상을 어필하고 조선의 독립 의지를 만방에 알리는 법정전투를 벌인 것이다.

황실을 무너뜨려서 조선 민족에게 혁명적이고 독립적인 열정을 자극하기 위해일왕 폭살을 꾀했다는 독립운동가 박열. 그의 이름이 몇 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에 귀환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토록 멋지게 싸운 독립운동가임에도 단지 정권의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저히 거부당하고 지워졌던 이름이 뒤늦게나마 돌아온 것이다. 그의 이름과 더불어 모든 지배권력을 부정하며 오로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싸운 그의 삶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또한 여전히 묵직하고 유효하다.

<저자 김삼웅/ 출판사 책뜨락/ 페이지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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