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과거'를 펼쳐 현재를 보다...김훈의 '공터에서'
[도서] '과거'를 펼쳐 현재를 보다...김훈의 '공터에서'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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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세상을 응시하는 '깊은 눈'...지난 소설들 화제

격변과 혼돈의 시대다. 나라 안팎이 정치·경제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판국에 들어섰다. 많은 이들이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한마디로 막막한 시점에 표류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역사'에 현재를 담는 작가, 김훈에게 시선이 쏠린다. 대한민국 대표적 문장가이자 시대를 관통하는 김훈의 지난 소설들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먼저 2007년 발간된 그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은 현재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당시 청의 공격을 피해 임금과 조정이 남한산성에 숨어들고 이후 고립무원의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소설의 배경이 다시 화제가 되는 것은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던 병자호란 시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여전히 안갯속인 대한민국의 현 상황과 겹친다는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김훈 작가가 지난 2,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이 큰 여운을 남기고 있다. 소설 공터에서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그렸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하는 작가, 김훈의 공터에서

 

소설 제목에서 공터는 주택과 주택 사이의 버려진 땅을 의미한다. 역사적 구조물이나 시대가 안착될 만한 건물이 들어서 있지 않은 곳을 말하는 것. 올해 한국 나이로 칠순을 맞은 작가는 저와 아버지와 제가 살아온 시대를 공터로 봤다돌이켜 보면 70년 동안 가건물 위에서 살아왔다고 느낀다. 그런 비애감과 연결되는 제목이 공터에서’”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소설은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마씨(馬氏)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베트남, 미크로네시아 등에서 격동의 시대를 견딘 등장인물들. 작가는 그들의 파편화된 일생을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책에는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전후의 피폐한 상황 속에서 맺어진 남녀의 애증과 갈등, 군부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기에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운명,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 세상을 떠도는 어지러운 말들을 막겠다는 언론통폐합,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담았다.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들이 마씨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 펼쳐지는 것이다.

광야를 달려야 할 말이 고삐에 걸려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있다. 이 운명의 고삐에 삶이 얽매인 이들이 오늘도 비참하고 비애로운 인생을 살다 간다. 이제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처절하게 되묻는다.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이 존재하는가?”라고.

장편소설 공터에서는 두렵지만 달아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지,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할 작은 거점이 어딘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저자 김훈/ 출판사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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