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수협, '막장극' 치닫는 밥그릇 싸움
정부 vs 수협, '막장극' 치닫는 밥그릇 싸움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7.0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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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태 현 수협은행장

지난해 말 수협중앙회의 자회사로 분리된 수협은행이 차기 은행장 선임 문제로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지배구조 변경 후 첫 행장을 뽑는 과정에서 대주주인 수협중앙회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한 정부가 힘겨루기에 나선 것. 애초 수협은행은 지난달 9일 새로운 행장을 내정할 예정이었으나 인선과정이 한 달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행장 선임이 새 정부 과제로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수협은행장 선정 또 불발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협은행 은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는 오는 10일 차기 행장 선임을 위한 회의를 다시 연다.

지난달 5일 첫 공모와 24일 재공모 이후 이달 들어서만 두 차례 회의를 더 열었지만 행추위원 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현 이원태 행장의 임기는 오는 12일까지다. 이사회와 주주총회도 이날 열릴 예정이어서 적어도 10일까지는 선임을 완료해야 한다. 그러나 10일 회의에서도 새 행장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예상이 나온다.

정부와 수협중앙회가 수협은행의 지배구조를 놓고 격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협중앙회 신용사업 부문으로 운영해 온 수협은행은 지난해 12월부터 수협중앙회가 100% 지분을 갖는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로 54년 만에 분리됐다. 농협이 신용·경제사업을 분리해 농협은행을 독립시킨 것처럼 지배구조를 바꾼 것이다. 은행권에 도입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규제기준인 바젤대응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주주인 수협중앙회가 수협은행장 인사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수협은행에 공적자금 17000억원이 투입됐다. 2001년 국민 혈세가 수혈된 이후 수협은행장은 주로 정부 측인 예금보험공사 인사가 맡아왔다. 최근에는 모두 관료 출신이 행장 자리에 올랐다. 이주형 전 행장과 이원태 현 행장은 모두 기재부 출신으로 예금보험공사 부사장을 지낸 정부 측 인사다.

 

차기 정부에 공 넘길까

 

수협중앙회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도 정부가 갖고 있다. 공적자금 상환 의무도 수협중앙회 몫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행장 추천권을 쥔 행추위 구성도 복잡하다. 기재부 장관, 해수부 장관, 금융위원장이 추천하는 정부 측 인사가 3, 수협중앙회장이 추천하는 인사가 2명이다.

정부 쪽이 숫자는 많지만 내부 규정은 양쪽이 합의해야 행장을 뽑을 수 있게 돼 있다. 5명의 행추위원 가운데 4명이 동의해야 최종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정부 측 사외이사인 송재정 전 한국은행 감사, 임광희 전 해양수산부 본부장, 연태훈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은 이원태 현 행장의 연임을 주장하고 있다. 공적자금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세제와 금융 전문가인 정부 전직 공무원인 이른바 관피아가 비전문가인 수협중앙회 출신보다 낫다는 논리다.

하지만 수협중앙회 측도 강하게 맞서고 있다. 박영일 전 수협중앙회 경제사업 대표, 최판호 전 신한은행 지점장 등 수협중앙회가 추천한 사외이사 2명은 은행내 2인자인 강명일 상임감사를 밀고 있다. 이번만은 중앙회 출신에서 행장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부와 수협중앙회의 엇갈림 속에 수협은행은 신용사업 분리 첫 출발부터 행장 없이 표류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10일 회의에서도 은행장 선출이 무산되면 12일 임기가 끝나는 현 이원태 행장의 거취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현행 상법은 후임 은행장이 없을 경우 현 행장이 직위를 계속한다고 돼 있지만 수협은행 정관은 은행장의 임기가 만료되면 대행 체제로 운영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원태 현 행장이 상법 규정을 들어 직위를 지속하겠다고 나설 경우 수협중앙회 측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일부에서는 행추위가 차기 정부에 수협은행장 선정을 넘기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사외이사 등으로 구성된 추천기구를 통해 독립적인 절차에 따라 선임되고 있는 반면 수협은행 행추위 위원들은 정부와 수협중앙회의 눈치를 보면서 책임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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