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LP 레코드숍, 골목상권 침해 파문
현대카드 LP 레코드숍, 골목상권 침해 파문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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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혁 김밥레코드 대표가 SNS에 올린 '바이닐&플라스틱' 관련 시위 사진

현대카드가 서울에 새롭게 선보인 LP레코드 매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국의 소규모 레코드상들이 골목상권 침해를 주장하며 시위에 나섰다.

현대카드는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엘피 판매를 위주로 하는 레코드숍 바이닐&플라스틱을 열고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 이에 지난 24일 해당 건물 앞에서 서울시내의 레코드점 업주 20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날 업주들은 매출 급감과 시장 독과점 우려를 호소했다. 다음 달 3일에는 부산, 대구를 포함한 전국의 소매상들이 이곳에서 더 큰 규모의 시위를 열 계획이다.

논란이 커지자 현대카드는 매장 내 현대카드 할인율을 조정하고 다른 레코드숍의 판매 부스를 입점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다른 레코드점에서도 현대카드 M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파문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 지상 2층 규모로 세워진 바이닐&플라스틱은 희귀 엘피를 포함해 4000(9000여장)의 엘피를 보유하고 있다. 지상 1, 2층 총 600m²의 국내 최대 규모다. 클래식과 팝 중고 LP부터 최신 아이돌 앨범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갖추고 있다. 현대카드 소지자에 한해 20% 할인 판매도 한다.

이런 가운데 홍대 앞에서 LP 매장 김밥레코드를 운영하는 김영혁 대표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현대카드 바이닐&플라스틱, 개구리는 작은 돌에 맞아 죽을수도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김 대표는 금요일에 현대카드 바이닐 & 플라스틱 앞에서 작은 시위가 있었다. 작지만 큰 시위라고 볼 수도 있는 게 수도권에 있는 몇 안 되는 음반 매장들 다수가 참여했다. 이런 일은 21세기 이후 한국에서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매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업계 내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팩트는 시디 판매 매장이든, 중고 LP 판매하는 매장이든, 장르에 특화된 매장이든 간에 이 대형 매장이 생긴 이래로 매출이 모두 하향세에 접어 들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것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회현동 지하상가 매장들처럼 30-40년씩 이 일을 하면서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않던 매장의 운영자들까지 나선 데에는 더 복잡한 이유가 있다중고 레코드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이 된다. 현대카드 매장이 중고 레코드에 큰 관심을 갖고 관련 작업들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공격적으로 중고 매입을 했을 때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들이 많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전문.

금요일에 현대카드 바이닐 & 플라스틱 앞에서 작은 시위가 있었습니다. 작지만 큰 시위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 수도권에 있는 몇 안 되는 음반 매장들 다수가 참여를 했거든요. 사실 이런 일은 21세기 이후 한국에서 거의 처음 있는 일입니다. 김밥레코즈는 참여를 못했지만, 퇴근길에 그 곳에 다녀오신 분들을 잠시 만나 뵈었습니다. 금요일 밤에 길 건너 잔치집에 갈 계획이었는데, 마치 상가집에 다녀온 기분이 들어 그냥 귀가를 했고, 그리고 이 글을 씁니다.

이 매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업계 내에서도 조금씩 다르고, 미묘한 입장 차이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팩트는 시디를 주로 판매하는 매장이든, 중고 LP를 판매하는 매장이든, 장르에 특화되어 있는 매장이든 간에 이 대형 매장이 생긴 이래로 매출이 모두 하향세에 접어 들었다는 것입니다. 전해 들은 얘기지만 최근 매출이 (평소 대비) 20-30% 정도 떨어진 곳이 대부분이고, 일시적으로 반토막까지 난 곳들도 있다고 합니다. 불경기의 영향만은 아닐 겁니다. 남의 얘기하듯 말하고 있지만 동교동 매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일전에 관련 글에도 썼지만 한국의 음반 수요(특히 K-Pop을 제외한 나머지 수요)라는 것은 정말 한 줌에 불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큰 매장이 그 수요를 빨아 들이기 시작할 때 나머지는 존속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시장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속된 말로 오픈빨같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회현동 지하상가 매장들처럼 30-40년씩 이 일을 하면서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않던 매장의 운영자들까지 나선 데에는 더 많고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고 레코드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현대카드 매장이 중고 레코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금 이런 저런 작업들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공격적으로 중고 매입을 했을 때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최근 중국발 레코드 수요 때문에 가뜩이나 일본 내 중고 음반들 가격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레코드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면서 오로지 자금력만은 풍부한 기업이 이 곳에 들어와 레코드들을 사들이기 시작하면 더욱 더 가파른 상승 곡선이 생겨날 확률이 높습니다. 리이슈의 부재와 수요 대비 턱없이 모자란 공급,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업자들의 농간 때문에 아시아 팝음악 가운데 가장 높은 프리미엄을 자랑하는 한국의 가요 중고 레코드들은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대형 매장 하나 때문에 얼마나 영향이 있겠냐 싶겠지만, 공급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급작스레 생긴 수요는 가격을 단기적으로 끌어 올리고 결국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문화사업이고, 낙후된 산업의 파이를 키우고자 하는 일이라고 이 회사는 말하고 있지만, 그간 해왔던 문화사업들, 특히 음악에 관계된 사업들의 수명을 보면 그 의지는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TV 광고까지 하면서 야심차게 시작했고, 좋은 취지로 음악가들을 돕겠다며 시작했던 현대카드뮤직은 사람들의 관심을 생각만큼 얻지 못하자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회사와 회사 대표의 SNS 계정으로 요란하게 론칭을 했지만, 폐업 공지는 하청업체 명의로 진행이 되었었죠. 페스티벌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했으나 결국 헤드라이너들의 몸값만 바꾸고 2년만에 사라진 시티브레이크란 여름 페스티벌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여름 음악 페스티벌들이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물론, 많은 신생 페스티벌이 한국의 좁은 시장 규모를 생각하지 않고 무리해서 시작을 했으니 그것은 그저 예견된 종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두 개의 여름 페스티벌도 만약 대기업 자본이나 지자체의 백업이 없는 그저 개인에 의한 사업이었다면 그 무렵 함께 문을 닫아야 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의도는 어땠을 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론 시장의 물만 흐리고 사라졌다는 것이 이 축제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결국 이 사업도 정작 돈 쓰는 재미가 크지 않다면, 중고 앨범 가격들을 올려 놓고, 작은 매장 몇 개의 문을 닫게 한 이후에 현재 매장을 운영하는 하청업체 명의로 조용히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전례들을 보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라면 서울 뿐 아니라 지방에도 문화 창달을 위한 매장을 열 수도 있겠습니다만.

만약 레코드를 통해 문화사업을 하거나 사회에 공헌하고 싶었다면 더 나은 방법이 많았을 겁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생존 매장들과 협의를 해서 전국 레코드 매장 지도 같은 것을 만든 다음 현대카드로 결제하면 할인을 받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그것만으론 부족해 화려하고 널찍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녕 필요했다면 그런 공간을 만든 다음 괜찮은 레코드 매장들을 입점시켜서 레코드 마켓이나 레코드 편집샵의 형태로 운영을 하는 것도 가능했겠죠.

한국에는 없는 레코드 공장을 만들어 제작을 지원하거나, 음반에 관한 모든 권리(즉 인접권이나 저작권)100% 제작자 혹은 과거 제작자가 권리를 양도한 제3자에게 가 있어 현재 재발매가 쉽지 않은, 그래서 오리지널을 터무니 없는 가격을 주고 사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마스터링도 제대로 안 된 음원으로 만족해야 하는 국내 대중 음악의 중요한 자료들 - 예를 들어 신중현 사단의 거의 모든 레코드들 -의 권리를 권리자에게 사와서 음악가에 되돌려 주고 레코드로 리이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도 할 수 있었겠죠. 이런 일들이야 말로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문화 사업의 영역일 겁니다.

왜 굳이, 평생 레코드를 사 본 적도 없는 현대카드 직원들이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는 음반의 목록을 들고 해외 레코드 매장에 가서 레코드 쇼핑을 해와서 그걸 되파는 보따리 장사를 하는지도, 레코드 소매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회사가 굳이 다른 사업자 명의로 매장을 만드는 무리수를 쓴 다음 파격적인 (고객) 할인 조건을 내걸어 작은 매장들과 경쟁을 하려고 하는지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러프 트레이드처럼 해외에 존재하는 규모 있는 레코드 매장들도 대부분 그 사업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해 온 기업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특별하다기보단 굉장히 이상하고 기이한 케이스입니다.

레코드가 오래 전의 인기를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알던 많은 유명한 매장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뉴욕과 LA, 동경, 런던.. 많은 도시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실익이 많지 않은 사업이기 때문에 임대료가 조금 오르거나, 주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버티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우리보다 시장도 크고 소매점들의 환경이 낫다고 하는 해외 매장들이 그러하니 국내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매장들이 많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A4지 한 장 정도면 전국의 음반 매장을 모두 써 넣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음악에 대한 애정이나 애증으로 인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 곳에 대기업이 진출했으니 이런 분야에까지 관심을 가져주는 걸 고맙게 생각하면 될까요. 음악가와 음반사와 유통사들은 과연 훌륭한 파트너를 얻었을까요. 이 매장 때문에 잠시 덕을 보게 된 회사들도 있겠지만, 이 회사는 아마 조만간 "독점" 컨텐츠로 매장을 홍보하고 싶어할 겁니다. 이들이 원하는 성공의 레벨이란 아마도 업계의 수많은 패자들을 동반한 후에야 비로소 도달 가능할 것입니다.

73일 오후 6시에 전국에 있는 소매점들이 그 곳에 모인다고 합니다. 다 모여도 50명도 안 될 겁니다. 레코드는 생활필수품도, 레코드 소매업은 중소기업적합업종에 지정된 업종도 아니어서 아마 관할 부처도 관할 구청도 크게 신경을 안 쓸 것 같습니다. 이런 소수의 어려움보단 그저 자신들의 이력이나 경력에 다채로움을 더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이 회사도 아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게 뭔가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면 이 날 오셔도 좋겠습니다. 왜 평생 모임 같은 것도 안하던 이 분들이 왜 갑자기 피켓 같은 걸 만들어 와서 서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이 날 오셔서 직접 목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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