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조양호, ‘승승장구’ 조정호...엇갈린 형제 운명
‘사면초가’ 조양호, ‘승승장구’ 조정호...엇갈린 형제 운명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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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막장 가족경영’ 지고, 막내 ‘전문경영인’ 승리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22일 한진해운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다. 최근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간 한진해운은 거액의 용선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일부 연체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진해운의 벌크선인 한진패라딥 호는 용선료 연체 문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억류되기까지 했다. 한진그룹이 계열 분리를 한지 11년이 흐른 지금. 한진가 4형제의 경영 행보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단 평이다. 특히 장남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으로 리더십이 심판대에 오른 반면, 막내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이 사상 최대이익을 내면서 업계의 호평을 받았다. 이들 경영리더십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조양호 리더십 위기

영국의 해운산업 전문지인 로이드리스트는 한진해운이 캐나다 선주사인 시스팬에 1160만달러(138억원)어치의 용선료를 연체했다고 지난 24일 보도했다. 용선료 협상에 돌입했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당장 시스팬에 용선료의 30%를 주식으로 바꿔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다음날인 25일에는 한진해운의 벌크선 한 척이 용선료 연체 문제로 해외 선주로부터 압류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법정관리가 불가피한 상황. 모든 조건을 충족해 자율협약에 들어가도 경영정상화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 위기의 책임론에 직면해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에서도 물러났다.

그는 그동안 한진해운의 경영 효율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대한항공이 한진해운 정상화를 위해 투입한 자금만 1조 원에 이른다. 그러나 감당하기 힘든 부채에 2년 만에 백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투입된 대한항공 자금이 휴짓조각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한항공 주주들의 홧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에겐 네 명의 아들이 있다. 이들은 각각 분리돼 기업을 이끌고 있다. 장남 조양호 회장의 한진그룹, 차남 조남호 회장의 한진중공업, 셋째 고 조수호 회장의 한진해운, 막내 조정호 회장의 메리츠금융지주다.

넷째인 조정호 회장은 2004년 조중훈 회장 작고 후 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동양화재해상보험 등 금융 계열사를 따로 떼어내 2005년 독립했다. 조정호 회장은 1983년 대한항공에 입사, 구주지역본부에서 일하다 1989년 한일증권으로 옮겼다. 이후 한진그룹 내 금융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한진투자증권 전무를 지냈던 그는 1995년 동양화재해상보험에 나가 일한 후 2003년 한진투자증권에서 이름이 바뀐 메리츠증권 회장에 올랐다.

당시 형제 중 유일하게 생소한 금융회사를 맡았으나 현재만 놓고 본다면 그의 활약이 가장 뛰어나다. 메리츠금융 계열사 네 곳은 지난해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그룹 순이익 5000억원을 넘어섰다. 전년(2581억원)의 두 배가량으로 늘어난 규모로 4년 연속 사상 최대 순이익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그룹 자산도 49개월 만에 세 배 넘게 늘어났다. 20113월 메리츠화재에서 인적 분할된 메리츠금융지주는 출범 당시 116257억원이던 자산총액이 올해 1분기 기준 36조원을 넘어섰다.

그가 조양호 회장과 달랐던 점은 경영을 철저하게 전문 경영인에게 믿고 맡겼다는것이다.

조정호 믿고 맡긴경영

메리츠그룹은 최희문 메리츠증권 사장, 김용범 메리츠화재 사장,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사장, 권태길 메리츠캐피털 사장 등 4명의 전문 경영인이 이끌고 있다.

메리츠증권의 경우 업계에선 최희문 사장의 성과주의가 통했다고 입을 모은다. 2009년 메리츠증권 부사장으로 합류한 최 사장은 2010년 대표 자리에 올라 올해로 취임 6년째를 맞았다. 메리츠화재의 자회사에 불과했던 메리츠증권은 2010년 계열 분리되고 그를 만난 후 메리츠금융그룹 내 최고 계열사가 됐다.

최 사장은 직원이 번 수익의 절반을 성과급으로 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대신 유능한 경력직원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것도 최 사장만의 인력운용 전략이다. 부사장으로 임명됐을 때 조정호 회장에게 양질의 사람들이 와서 일하고 싶은 회사, 명성이 높은 회사를 만들자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조정호 회장은 이들 CEO에게 경영 전권을 일임했다. CEO들이 소신경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인재 영입에 계속해서 열중했다. 이는 메리츠금융그룹의 성장을 이끄는 자양분이 됐다.

반면 조양호 회장은 철저하게 가족경영을 고수하는 인물이다. 조양호 회장은 2007년 파이낸셜타임스(FT)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족경영을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미국의 CEO들이 외부의 단기 평가에 휘둘리기 쉬운 반면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경영이 가능하다면서 한국의 일부 애널리스트들도 미국의 분석가들처럼 단기 수익 관점에서 평가하려 한다. 가족 경영방식도 나름대로 장점을 갖고 있는 만큼 이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조양호 회장의 경영방식은 수년간 이어졌다. 결국 큰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실적이나 경영 스타일보다 땅콩 회항으로 더 이름을 알리게 됐다. 한 편의 막장 드라마와 다를 바 없었던 여러 가지 폭로전이 이어지면서 조양호 회장 위상도 바닥을 쳤다. 그의 막장 가족 경영은 사회적 공분을 샀다.

그리고 전문 경영인이 주도한 조정호 회장의 메리츠금융은 성장가도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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