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맞은 위안부 합의, “해결은 미궁 속”
‘역풍’ 맞은 위안부 합의, “해결은 미궁 속”
  • 박기영 기자
  • 승인 2016.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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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엔에 팔린 한국 여성의 존엄
▲ 일본 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상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진정성 없는 사과 인정 못해”
-김무성 대표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는 것”, 합의 옹호

한일 정부가 지난 28일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청춘을 빼앗기고 평생을 절망과 상처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대가는 단돈 10억 엔. 이로서 우리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징인 소녀상을 이전하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만행을 지적할 수 없게 됐다. 지난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씨 기자회견으로 시작된 한일 위안부 문제가 24년 만에 처음으로 합의에 이른 것.

정계를 비롯한 곳곳에서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일본이 ‘법적 배상’이 아닌 ‘도의적 보상’을 들고 나온 만큼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될 수없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중국에서 95%의 설문 참여자가 “이 같은 조건으로는 합의 할 수 없다”고 답한 것이 국내에 보도되며 파장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100억 엔으로 “소녀상 이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2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만난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고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윤 장관이 낭독한 합의문은 총 3가지 항목으로 다음과 같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문제를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인정한다. ▲일본 정부가 한국 소녀상을 관련 단체와의 협의 하에 적절히 해결한다.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가 착실히 이행된다는 전제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

이번 합의로 일본이 합의한 내용을 잘 이행한다면 공식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종결짓겠다는 뜻이다. 윤 장관은 말미에 “근본 협의의 후속조치가 확실히 이행돼 피해자 분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이날 윤 장관의 발표에 앞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에 관여 하에 다수 위안부의 명예 상처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총리 대신으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갖고 상처 입은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사죄 표명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지금 문제 진지하게 임해 왔고 이에 기초해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다”고 설명했다. 예산 규모에 대해서는 “10억엔 정도 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총리’의 사과와 10억 엔의 기금으로 국제 사회에서 우리 정부의 비난과 일본 대사관 인근의 소녀상을 이전하기로 합의한 것. 하지만 일본이 법적인 책임을 외면하고 단순한 ‘도의적’입장을 고수한 것에 대해 세간에서는 큰 역풍이 불었다.

위안부 피해자 “말도 안된다”

위안부 피해자 중 몇 남지 않은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합의문이 발표된 날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할머니는 "일본은 자신들이 지어내서 사죄한다. `배상받기로 다 됐다`고 하는데 자기들 맘대로다. 우리는 거기에 합의한 적이 없다"며 사죄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아닌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며 "일본이 이렇게 위안부를 만든 데 대한 책임으로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하라고 할머니들이 외쳐온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본인이 입장을 밝히고 나서자 정부 입장은 난처해졌다. 윤장관은 합의문에서 ‘종결’을 선언해버린 것. 피해자 당사자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29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 설명을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대협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들어야 했다

중국·대만 “위안부 협상 다르게 할 것”

합의문이 발표되자 우리나라와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일관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국의 관영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29일부터 시작한 인터넷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만약 일본이 한국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 조건을 놓고 중국과 논의한다면 당신은 받아들이겠느냐'는 질문에 설문 2일 만에 1만 103명(95%)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환구시보는 해당 질문 아래에 "현재 일본과 한국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달성했다. 일본은 5천380만 위안(10억 엔)의 보상자금을 출연키로 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사과를 표시했다"는 보충 설명을 달아놨다.

한편 대만은 일본과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에 들어가기 앞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으로부터 관련 의견을 청취키로 했다. 대만중앙통신은 대만과 일본이 이달 초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교섭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지난 1일 보도했다. 린융러(林永樂) 대만 외교부장은 지난달 30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1월 초부터 일본과의 협상이 진행된다”며 “오는 6일부터 관련 TF회의가 열린다”고 말했다. 그는 TF를 통해 외교기관뿐 아니라 부녀지원기금회, 위안부 피해자 대표, 행정기관 내 성평등기구, 위생복리 기관 등의 의견도 종합적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린 부장은 대만이 줄곧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할 것을 주장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초보적인 합의에 도달했다”며 “일본 측은 한국과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할지를 우리 측에 설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만에는 현재 4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생존해 있으며 대만은 위안부를 주제로 한 박물관도 건립할 계획이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1일 신년사에서 대만 국적 위안부들에게 일본이 배상과 공식 사죄를 하라는 요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마 총통은 이날 “우리는 속도를 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대만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마 총통은 대만 정부가 일본에 피해자에게 오랫동안 기다려 온 정의와 존엄성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며 주일 대만대표부에 이 문제를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야당 문재인 대표 “합의는 무효”

국외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논란이 일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0일 "우리는 이 합의에 반대하며 국회의 동의가 없었으므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밝힌 것.

이어 문 대표는 "위안부 문제해결의 핵심인 일본정부의 법적책임 인정과 그에 기초한 사과와 배상이 빠진 합의는 '최종적' '불가역적'일 수 없다"며 "평생을 고통 속에 사신 피해자들을 빼고는 대통령이 아니라 누구도 최종과 불가역을 말할 자격이 없다. 가해자의 법적 책임을 묻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이해해달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소녀상 이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이 철거를 요구한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처사이며 그 부당한 요구에 끌려다닌 우리 정부도 부끄럽기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 플레이’ 의혹

국내 여론이 불 같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언론들이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이번 합의에 대해 ‘이면 계약’이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아사히(朝日)신문은 30일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소녀상 이전'이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하는 전제 조건이라는 것을 한국 정부가 외무장관 회담에 앞서 내부적으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가 할머니들과 정대협을 설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의적으로 결정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지난 29일에는 지지(時事)통신이 '한국 정부가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보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즉시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이런 행태 때문에 합의 자체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일본 측의 언행이 없기를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부도 진화에 나섰다. 일본 외무성은 이날 "이번 (한·일 간) 합의는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공표한 내용이 전부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녀상 이전이 일본 정부가 재단에 출연금을 내는 전제 조건이라는 일본 언론 내용을 강하게 부인한 것.

하지만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에 대한 국내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정부가 충분한 사전설명 없이 최종 타결을 선언한 데다 협상 과정도 투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 조기 타결을 위한 마무리 협의가 시작돼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지난 24일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시작으로 일본 언론이 제기해온 내용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 정부 설명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기문 유엔 총장 ‘역풍’ 맞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위안부 협상 타결에 대해 ‘공개지지’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느 나라 정부냐”고 절규하는 등 졸속합의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박 대통령 편을 든 것. 유엔이 ‘반 인륜적 범죄’라 못박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유엔 사무총장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찬성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 총장은 지난 1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양국이 이번에 24년간 어려운 현안으로 되어 있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에 이른 것을 축하한다”면서 “박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또 “한·일간 어려운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에 비추어, 국교 정상화 50주년의 해가 가기 전에 이번 협상이 타결된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반 총장은 “올해에 박 대통령의 리더십 아래 조국 대한민국이 더욱 크게 발전해나가기를 기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아파하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할머니들과 대한민국을 비롯한 피해국 국민들의 아픔과 상처를 헤집고 분노를 유발하는, 엉뚱한 ‘한일협상 지지 발언’, 온당치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UN 사무총장 직을 개인 능력으로 쟁취하셨나요? 대륙별로 돌아가며 차지하는 역할, ‘아시아’ 차례일 때 가장 아시아에서 UN에 기여가 많은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발목잡혀 약소국인 한국에 그 자리가 돌아올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까지 ‘시위 행렬’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을 비판하고 평화비 소녀상 이전을 반대하는 각종 시위가 잇따랐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등 청소년 단체 회원 30여명은 2일 오후 1시께 서울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우리나라에게 굴욕적이었다"고 말했다.

전국 중·고등학생으로 이뤄진 이들은 지난달 타결된 위안부 협상이 피해 할머니들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최종적·불가역적'이라는 표현으로 한국 정부는 더 이상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에 "위안부가 강제적이었음을 인정하고 사죄하라"면서 "피해 할머니들에게 법적 배상을 진행하면서 추모비·역사관을 설립하고 역사교육도 함께하라"고 요구했다.

오후 2시께 종로구 평화비 소녀상 자리에서는 지난달 31일 주한 일본대사관 입주 건물의 로비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던 대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과 정부를 비판했다.  들은 경찰이 연행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고 "경찰의 행태는 위안부 역사를 '없던 것'으로 치부하려는 폭력적인 한일 외교회담과 닮아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1시부터 같은 장소에서는 '위안부 협상 무효 예술행동'이 열려 시민운동가·문화예술인들이 노래·시 낭송·연극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상 결과를 풍자했다.

 '한일협상 폐지 촉구 토요시위'에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0) 할머니가 참석해 "아베 총리는 직접 기자들 앞에서 법적 배상을 약속하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면서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위안부 문제가 진정 해결되는 순간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 날인 31일에는 위안부 협상 타결 반대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30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이날 오후 12시께 서울 일본대사관 건물 로비에서 위안부 협상 무효를 주장하는 대학생들이 기습 시위를 벌인 것.

이에 서울 종로경찰서는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이 있는 건물 2층 로비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혐의로 대학생 30명을 건조물 침입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거해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대 최고로 잘된 합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2월31일 최근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결과에 대해 “그동안의 어떤 합의보다 잘된 합의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정부에서 돈을 낸다고 했기 때문에 이건 법적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역대 (일본) 총리보다 제일 확실하고 강한 어조로 사죄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일본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우린 그렇게 생각 안 한다"며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 말을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고, 모두가 다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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