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에서 有를 창조한 우리시대의 거인 ‘정주영’ 부활하다
無에서 有를 창조한 우리시대의 거인 ‘정주영’ 부활하다
  • 손부호 기자
  • 승인 2015.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다시 부활하기를 바라는 기업인설문 65% 학생 정주영 지목
- 빈곤 시달리던 한국 세계 11위 경제 이끈 위대한 기업가 극찬

정주영의 신화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 영화시장을 들썩였던 국제시장이후 기성세대는 물론 2~30대 젊은 층들이 정주영 명예회장의 리더십에 열광하고 있다. 성공과 그의 철학, 그리고 불굴의 도전정신과 꿈 등은 취업 전쟁에서 지친 청년들과 조기퇴직으로 재취업 전선에서 방황하는 장년들에게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정주영의 어록과 에피소드를 보다 친숙한 언어로 재해석했다. 또한 사진 한 장만으로 정주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진귀한 사진을 대거 수록했다. 게다가 에피소드 말미에 필자의 넓고 옅은 지식을 보너스로 채워 넣음으로써 바쁜 현대인들의 이해의 폭을 넓혔다. 정주영 회장의 도전, 신용, 긍정, 창의(Creativity), 이타의 5가지 대표적 리더십을 일부 소개한다.

도전(Challenge)

나는 평생을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살아왔어

내가 믿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져오는 무한한 가능성과 우리 민족이 가진 무한한 저력뿐이다. 나는 평생을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살아왔다. 모든 것은 나에게 맡겨라. 겁이 나거든 집에 가서 누워 기다려라.”

정주영은 직접 나서서 새 진용을 짜 중동 진출을 진두 지휘한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국가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93천만 불짜리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공사를 수주함으로써 국가가 외환 위기로부터 탈출하는 전환점을 만들어 준다. 선수금 2억 불 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외환 보유고가 건국 후 최고를 기록했을 정도다.

신용(Credibility)

남의 것을 헐값에 가지려 하지 마.”

정주영은 그 업종이 좋으면 새로이 창업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남의 것을 헐값으로 인수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 특히나 1980년 신군부 시절 자식처럼 키워온 현대양행을 억울하게 빼앗긴 아픔이 있었기에 남이 소중하게 키워온 기업을 송두리째 흡수 합병하는 것에 원초적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긍정(Candoism)

해보기나 했어

1966년 미국 포드 자동차가 우리나라 진출을 타진한다. 포드는 당시 건설회사인 현대를 거절한다. 이에 정주영은 미국에 있는 동생 정인영에게 포드와 접촉할 것을 명한다.

이때 정인영이 그런 일이 하루아침에 당장 되겠느냐, 포드 측이 만나주기나 하겠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 비추자, 정주영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해보기나 했어?” 정주영의 트레이드마크 어록인 해봤어?’가 빛을 보는 순간이다.

해봤어?’는 다른 말로 가봤어?’, ‘먹어봤어?’, ‘입어봤어?’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해보지도 않고, 현장에 가 보지도 않고 탁상공론으로 결론을 내리고 지레 겁먹지 말라는 주문이다.

창의(Creativity)

인간의 창의성과 능력은 무한하다

현대건설이 태국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행할 때 비가 많이 와 모래와 자갈이 젖어 건조기로 말린 후 사용했으나 쉽게 마르지 않았다.

이 때 정주영은 비싼 기름을 때면서 건조기에 말릴 것이 아니라 자갈을 직접 철판 위에 올려놓고 밑에서 불을 때 말려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실제로 자갈을 철판 위에 올려놓고 구우니 건조 속도가 한층 빨랐고 기름값도 절약됐다. 정주영의 간단한 아이디어로 생산성이 약 두세 배 높아져 무리없이 공기 내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상식과 통념을 무시하라

정주영이 롯데 신격호 회장과 라운이 약속이 있던 날 눈이 많이 내려 라운드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신 회장은 약속이 취소될 것이라 여겼으나 정주영은 빨갛게 칠한 골프공을 상자가득 담아온다.

눈이 쌓여 있으면 눈이 쌓여 있으면 라운드가 불가능하다는, 골프공은 흰색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쉽게 뛰어 넘었다.

▲ 폭설이 내려 라운드를 포기하려 했던 롯데 신격호 회장에게 빨갛게 칠한 공을 선물하며 추억에 남는 라운드를 하게 해준 정주영

이타(Commitment)

정성을 다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주영은 스위스 바덴바덴으로 향한다. IOC위원들은 한국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오지 정도로 알고 있었다.

정주영은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행동을 개시한다. IOC위원들은 대부분 총회 참석시 부부가 함께 오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간파한 정주영은 IOC위원 부인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매일 정성이 담긴 장미 꽃바구니를 선물했다.

이를 계기로 IOC위원들은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총회에 소개된 홍보영상을 통해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한국의 모습에 감동한다. 결국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