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경희 작가, '가족'으로 '소통‘ 풀어내
[인터뷰] 박경희 작가, '가족'으로 '소통‘ 풀어내
  • 박기영 기자
  • 승인 2015.11.1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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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박경희, 올 가을 두 편의 희곡, 무대에 올려
▲ 박경희 작가

- 방송 작가 데뷔 직후 7년 간 홍콩행, 새 도전
- 활발한 작품 활동, 섬세하고 노골적인 심리 묘사 ‘백미’

설특집극 <기다리는 빛>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던 박경희 작가가 돌아왔다. 그녀는 오랜 공백을 거쳐 <이것이 인생이다>으로 복귀한 바 있다. 그리고 희곡작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 한 때 방송작가로 대표적 ‘유망주’로 꼽히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던 그녀가 ‘방송’이 아닌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그리는 희곡은 섬세하고 직설적이다.

이미 <달님과 손뼉치기>, <롤렉스 금장>, <세 여자의 파티>, <독도는 우리 땅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어린왕자> 등 수많은 희곡작품을 통해 자신의 색채가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는 최근에 ‘제3회 한국여성극작가전’에 참가해 나혜석·김명순 작가들과 함께 <트라이앵글>과 극단 민예의 정기공연인 소리극 <부럼>, 두 편을 무대에 올렸다. 그녀가 그려낸 가족의 모습은 음울하고 비극적이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은 지극히 희극적이다. 이에 대해 박 작가는“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기만적 희생에 대해 시침 뚝 떼고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작가와의 일문일답.

- 첫 작품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곧바로 공백기가 길었다.

▲ 단막극 <신설>이 당선되고 곧바로 남편의 발령지인 홍콩으로 떠났다. 1990년에 가서 1996년도에 왔으니까 7년 정도 외국 생활을 했다. 어린 아들과 딸을 비롯한 가족에게 정말 좋은 기회였다. 당시엔 젊었고 방송작가협회 공모에 <우리들의 노래>도 당선되어 주목을 받았던 터라 ‘경험까지 풍부해지면’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홍콩 생활의 경험이 작품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7년의 공백은 생각보다 크더라.

방송에서는 작가도 연예인과 똑같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을 실감했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방송작가로서 잘 나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워낙 긍정적이라 이내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글쓰기에 매진했다.

- 작가로서 공백기가 어떤 의미였나?

▲ 돌아오니 첫 작품을 발표할 때와 방송환경 등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내 자리가 언제까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보다 더 잘 쓰고 더 훌륭한 작가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또 오랜 외국생활은 ‘한국 정서를 잃었다’는 편견이 되기도 했다. 일례로 귀국하고 쓴 대본 중 한 여자가 찜질방을 싫어해서 뜨거운 김을 피해 “앗, 뜨거!”하면서 나오는 장면을 그렸는데, ‘찜질방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의 행동이 한국적이지 않다’고 평하더라.

실제로 난 그다지 찜질방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차로 생각하기에 충분한 부분까지도 외국생활의 잔재로 평가받았다. 오히려 ‘작가 박경희’는 홍콩에서 보낸 시간을 건너뛰어 ‘7년 전의 한국적 감성’을 그대로 갖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특집드라마를 기획해서 썼는데 내용이 좋았는지 3부작으로 바꾸자고 하더라. 하지만 늘리는 것보다 특집극답게 단막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잘 써지지 않았다. 결국 작가가 교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게 다 ‘한국을 떠났다 왔기 때문’이라는 자괴감에 슬럼프가 왔다. 그 후 <이것이 인생이다>를 집필하면서 회복했다.

- 희곡을 쓰게 된 이유?

▲ 다들 알다시피 도시에서부터 시골까지 남녀노소가 두루 시청하는 매체의 특성상 방송작가는 표현에 제약이 따른다. 요즘 케이블방송의 장르물의 경우엔 그나마 나아진 분위기지만 공중파는 아직도 여전하다.
무대 위에서 영상 없이 배우의 행동만으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희곡은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꼭 쓰고 싶은 내용이 떠오르면 희곡으로 써 놓곤 했다.

이번에 공연한 <트라이앵글>은 ‘부모를 망치로 살해한 아들’의 뉴스를 보자마자 10여 년 전에 써놓았던 작품이다.

희곡 뿐 아니라 상업영화 두어 편, 관영화도 여러 편 집필했다. 손발이 오글거리게 하는 한 작품만 빼놓고 비교적 만족하는 편이다. 10대 후반에 동화를 써서 상금을 받았으니 소설을 제외하고는 전부 집필해 본 셈인가?

▲ 제3회 한국여성극작가전 포스터

-어떤 작품을 쓰고 싶나?

▲ 인간의 심층적인 심리를 적나라하게 표현해내는 작품이다. 그 중에서 ‘가족’을 소재로 한 ‘소통’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싶다. 또,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망 속에 숨겨진 감정들을 집요하게 캐내고 '까발릴' 것이다.

<트라이앵글>에서는 ‘자식을 위해 내 전부를 희생하고 있다’는 부모의 말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소리극 <부럼>에서는 ‘돈 앞에서 가족도 없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려고 했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가족이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있는가를 연작으로 쓰고 있는 중이다.

나의 경우, 홍콩생활은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기회였지만 작가로서의 난 그렇지 않았다. 글은 쓰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작가로서 썩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자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증이 엄습했다. 아이들이 짐짝처럼 귀찮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내 감정은 모른 채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외치며 내 품에 달려들었다. 두 팔로 다 안을 수 없을 정도로 커버린 아이들을 끌어안는데 왠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 난 엄마야... 빼도 박도 못하게 엄마인 거야. 희생이라니, 가당치도 않아.”

그때 이후로 난 아이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매주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갖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고 애썼다. 성인이 된 지금도 자주 그런 시간을 갖는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하는 대화 속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 희곡과 영화나 TV드라마의 차이점은 뭔가?

▲ 인물의 행동을 글로 표현하는 극이라는 것은 같지만, 무대와 영상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영화나 TV드라마는 영상언어 예술이다. 작은 손짓이나 눈빛으로 심리를 표현하고자 할 때, 영상은 그 부분만을 클로즈업해서 크게 보여줌으로써 심리묘사가 가능하다. 그것을 통해 극중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클로즈업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배우의 움직임과 대사로 그 심리를 표현하게 된다. 그때 필요한 것이 ‘사이’라는 지문이다. 크고 작은 행동 뒤에 기다리고 절제하는 여백의 시공간을 통해 긴장감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그런 긴장감을 확인하기 위해 대본을 쓸 때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볼 때가 많다. 

▲ 박경희 작가의 <부럼>

-<트라이앵글>과 <부럼>은 어떤 작품인가?

▲ <트라이앵글>의 원래 제목은 <모기보다 못한>이었다. 작품 안에 화목한 모기가족이 나온다. 아빠모기는 항상 외출할 때마다 자기의 음식을 남겨두지 말라고 한다. 살아 돌아오면 배부르게 먹고 오는 것이고 아니면 단매에 죽기 때문이다. 아빠모기가 돌아오지 않자, 그 아들의 아들, 아들의 아들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아빠모기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인간은 소통의 단절로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부럼>은 외국으로 떠나게 된 아들내외와 손주들에게 매 주 오면 돈을 주겠다는 엄마의 파격 제안으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돈이 많이 있다는 엄마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인 자식들은 그 돈의 출처가 궁금하고, 그 큰 돈을 누가 관리하느냐로 한바탕 소동을 피운다. 엄마의 상황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위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이 두 작품을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추고 싶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 모두의 민낯을 드러내고 싶었다. 내용은 무겁지만 우리 주변에 산재해있는 희극적 상황으로 봐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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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갸야ㅑ 2022-12-07 12:00:06
박경ㅇ희 작가님 사랑해요

게갸야ㅑ 2022-12-07 11:59:49
박경ㅇ희 작가님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