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신작 창극 <적벽가>
국립창극단 신작 창극 <적벽가>
  • 박기영 기자
  • 승인 2015.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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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뒤흔든 세기의 전쟁, 창극으로 태어나다!

-한국 대표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송순섭의 만남
-삼국지의 영웅담 뒤편에 스러져간, 망자(亡者)들이 전하는 증언의 무대
-격조 높은 음악적 힘과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창극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빛내기 위한 세련된 무대 미장센

판소리 ‘적벽가’는 전통적으로 소리꾼의 기량을 드러내는 척도로 여겨져 왔다. 소리꾼을 만나면 먼저 ‘적벽가’를 할 줄 아는지 공손히 묻고, 못 부른다고 하면 바로 말을 낮추며 귀하게 대접하지 않았다는 오래된 에피소드에서 ‘적벽가’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이 2015‑2016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의 개막작으로 오는 9월 15일(화)부터 19일(토)까지 5일간 고난도의 판소리 ‘적벽가’로 만든 신작 창극 <적벽가>를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적벽가’는 호방하면서도 고음이 많고 풍부한 성량을 필요로 해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서도 가창의 난도가 가장 높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창극단도 창단 50년 남짓한 동안 ‘적벽가’를 창극으로 만든 것이 1985년과 2003년, 2009년 세 번뿐이다. 이를 2015년 9월 정통 판소리의 품격을 모던하게 펼쳐내는 대형 창극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것인데, 내놓는 작품마다 공연계 안팎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국립창극단의 또 다른 작품인 만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선 굵은 남성 영웅들의 이야기 ‘적벽가’를 새롭게 창극화하는 이는, 한국 1호 여성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이다. 이번 <적벽가>는 독특한 미장센과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으며 숱한 대작 오페라를 다수 매진시켜온 이소영 연출의 첫 창극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는 파격 속에 품격이 배어나는 그만의 미학으로 ‘이소영표 오페라’라는 수식어까지 만들어내며 우리나라 오페라계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가져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소영을 창극 무대로 불러온 가장 강력한 힘은 단연 판소리 ‘적벽가’였다. 이 연출은 판소리 ‘적벽가’는 그 자체만으로 완벽하다며, 소리가 지닌 격조 높은 음악적 힘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창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소리’를 중심에 두고 자신의 장기인 세련되고 현대적인 미장센을 소리의 아름다움을 위해 복무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또한 이 연출은 판소리 ‘적벽가’는 이 시대 우리가 곱씹어야하는 가치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그것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처참한 역사다. 그는 이 작품의 모든 등장인물을 적벽대전에서 스러져간 망자(亡者)로 놓고, 이 망자들로부터 다시 있어서는 안 될 핏빛 역사의 증언을 듣는 ‘증언의 무대’로 꾸밀 예정이다. 망자의 증언을 통해 이 시대 우리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창극 <적벽가>가 기대되는 이유는 또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의 예능보유자인 송순섭 명창(1936년생)이 여든의 나이로 이 작품의 작창 및 도창을 맡았기 때문이다. 송 명창은 정통 동편제 판소리 ‘적벽가’를 잇고 있는 대가로, 한자어가 가득한 사설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수십 년간 학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가장 잘 정리된 창본(唱本)을 제작해온 ‘적벽가’의 권위자다. 무엇보다 송 명창은 사설의 뜻을 소리꾼이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음의 장단을 지켜서 또렷한 발음과 발성으로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소리꾼이다. 배가된 창자들의 전달력에다가 ‘적벽가’의 사설을 해설해 놓은 자막까지 송출하며 창극 <적벽가>는 오늘날의 관객과 소통하려고 한다. 

이번 <적벽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음악 역시 기존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준비하고 있다. 소리의 결을 한껏 돋보이게 하기 위해 창자의 노랫가락을 따라가는 수성(隨聲) 반주가 아닌 실험적인 스타일의 음악이 실연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국악기와 양악기, 그리고 다양한 타악기를 조화시켜 선율을 배제한 전혀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것이다. 극 초반부에 등장하는 우주의 소리, 자연의 소리부터 시작해 적벽대전의 음악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무엇보다 이러한 음악적 시도가 한국 음악극인 창극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극 <적벽가>의 시각적인 측면도 주목할 만하다. 무대는 거대한 부채 구조물을 활용한 간결하고 상징적인 스타일이다. 부채 무대는 극 흐름에 따라 언덕이 되었다가 때로는 배가 되었다가 하는 등 자유자재로 변형되며 창극 <적벽가>의 다양한 시공간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한편 무대 바닥은 소리북을 상징하는데, 이는 소리꾼이 소리를 할 때 꼭 필요한 도구인 부채와 북을 활용한 무대 디자인이다. 무대 배경의 거대한 막에는 농담(濃淡)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수묵화가 영상으로 그려지며 격조 높은 미장센을 완성할 예정이다. 의상은 간결하면서도 상징성이 돋보이는 스타일로 제작, 구체성을 배제함으로써 <적벽가>의 이야기가 이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것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창극 <적벽가>에는 모두 66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적벽대전이라는 전쟁을 다루는 만큼 국립창극단의 모든 배우와 객원 단원은 물론 12명의 객원 무용수와 10여명의 아역도 등장한다. 도창인 송순섭 명창을 필두로, 유비 ․ 관우 ․ 장비 ․ 조조 ․ 조자룡 ․ 공명 등 『삼국지』 영웅들을 비롯해 이소영 연출이 이번 작품에서 귀히 여기는 군사, 백성(여성) 등을 국립창극단원에게 모두 맡겨 최고의 무대를 선보일 것이다.

한편 국립극장은 오는 9월부터 침체된 공연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공연티켓 1+1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정부 시책에 동참하기 위해 국립극장 자체적으로 ‘1+1 티켓’을 운영한다. <적벽가> VIP석(7만원) 또는 R석(5만원) 티켓을 정가 구매한 관객은 정가 티켓 1장당 1매를 무료 지원 받을 수 있으며, 1인 4장(정가구매권2+무료지원2)까지 가능하다. 각 회차별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예매를 서두르는 것이 좋으며, 국립극장 콜 센터(02-2280-4114~6)를 통해서만 예매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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